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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지식인의 사회
죽은 지식인의 사회
  • 편집자
  • 승인 2009.06.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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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담론을 주도하는 지식인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90%에 육박하고 석·박사들이 넘쳐나지만, 우리 사회의 고민과 대안을 담은 지적 담론들은 점차 실종되고 있다. 그 대신, 성과급을 위한 끼워맞추기식 학술 연구와 기업 및 정부 정책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프로젝트 용역이 지적 담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대량 실업과 사회적 아노미 등의 원인이 고용시장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자본과 권력의 탐욕 탓이라고 분석하는 것은 결코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문제는 지식인의 관점이다. 자율성을 갖는 지식인과 그러지 못한 지식인의 차이가 바로 관점의 차이다.

일찍이 지식인의 역할에 회의적이었던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사회계급으로부터 독립된 자율 집단으로서의 지식인이라는 관념은 허구라고 했다. 그의 관점을 따르자면, 지식인은 문필가, 과학자, 성직자 등 전통적인 직업 지식인과 특수한 사회계급의 두뇌이자 조직자로서 유기적 지식인으로 나뉜다. 그람시의 분류로 볼 때,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은 어느 쪽일까? 당연히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은 더 이상 지식 전달자나 사회계급의 두뇌로서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이 조합한 ‘지식경제’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지식을 생산·유포·소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현재 지식인들의 위상은 그 본질적 의미만큼이나 추락했다. 고대시대와 중세시대, 계몽주의적인 근현대시대 등 어느 시대에나 지식인들은 나름의 학식과 양식을 갖고서 혼돈스러운 현실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해왔다.

지식인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권력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특권 계층에 속해 있지만, 이 계층 내에서는 중앙권력과 늘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주변적 존재이다. 장 폴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지식인은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에 관여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학문적 명성을 “인간의 이름으로 사회와 기존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미셸 푸코, 피에르 부르디외, 에드워드 사이드, 노엄 촘스키 같은 유명한 학자뿐 아니라 이름이 덜 알려진 수많은 지식인들이 상이한 양식에 따라 바로 이 길을 걸었다.

지식인들은 사회의 불의를 외면할 수도, 폴 니장이 칭하듯 사회의 ‘경비견’(Chien de garde)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물론, 지식인들의 변신은 솔직한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 변신은 또한 위장술을 부리기도 한다. 이때 지식인들은 여전히 참여적 지식인의 모습을 취한다. 그들은 이런저런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문제는 생각보다 “더욱 복잡하다”고 덧붙이면서 저항의 급진적인 형태를 나무란다. 그들은 이렇게 ‘개혁’ 이론가로서, 자신이 그토록 저항했던 권력의 도구가 될 것을 자처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최근 공교롭게도 유럽과 우리 사회에 동시에 불거진 지식인 논쟁의 본질과 의미를 되짚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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