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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공화전선은 가능할까?
'한국판' 공화전선은 가능할까?
  • 성일권
  • 승인 2015.04.0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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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우경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지난 3월말, 지방도의원을 뽑는 2차 결선투표에서 마린 르펜이 당수인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다수의 도의원을 배출하며 선전하자, 프랑스의 정치권은 FN에 맞서는 이른바 ‘공화전선’ 연대를 부르짖었다. 전체 도의회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고 있던 집권 사회당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유권자들이 외면하면서 참패를 기록했다. 프랑스의 사회당 정부는 최근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축소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등 전통적인 우파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는 극우 정당이 급부상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4월호 르디플로에서 필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글은 정치학자 조엘 공뱅이 쓴 ‘공화전선이라는 신화’다. 프랑스 혁명의 성과인 공화주의 수호를 목표로 내세우는 공화전선 구성이 역사적 전통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특히 국민전선이 꿈틀대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제기되었다는 것. 1989년 3개 지역 보궐선거에서 사회당 후보들이 모두 1차 투표에서 탈락하고 국민전선 후보들이 결선에 진출하자, 사회당 후보들은 지지자들에게 우파에게 투표를 해서 극우세력을 저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호소는 공화전선의 의의를 확인하는 계기를 남겼다. 그러나 공화전선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좌파는 파시즘에 맞서고 우파와의 상호성을 희망하며 공화전선 구성을 옹호하면서도, 우파가 극우와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고 또한 우파가 과연 보답을 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공화전선에 회의적이다. 우파의 경우, 중도세력은 극우파에 대한 거부라는 좌파와 공통되는 기본적인 가치를 내세워 공화전선을 찬성하는 반면, ‘강성’우파는 좌파에게 투표하고 나아가 좌파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한다면 극우로 돌아서, 결국에는 국민전선에 유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논란의 향방이 어떻든 간에 프랑스 정치권이 국민전선의 발호에 맞서 공화주의적 가치에 대해 모처럼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오는 16일이면, 세월호 침몰 1주년이 된다. 그동안에 많은 이들의 머릿속을 내내 맴돈 의문은 아마도 ‘도대체, 국가가 뭐냐’일까 싶다. 어린 생명을 차디찬 암흑의 심연에서 죽어가게 해놓고, 1년이 다되도록 진상규명도 사후처리도 하지 않은 정부의 태도는 도무지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집권여당과 정부는 우경화로 급선회하며, 일베와 서북청년단 같은 극우 세력의 숙주를 자처하고 있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밝힘으로써 국가의 주권이 전체국민에게 있는 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공화국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국가를 통치함을 의미한다. 4·29 재·보궐 선거에서 ‘한국판’ 공화전선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쳐본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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