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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장 vs 문학의 장
경제학의 장 vs 문학의 장
  • 성일권
  • 승인 2015.07.02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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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기가 가중되면서 국내 언론은 신바람이 난 듯, 저마다 학자연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다. 국내 언론들이 진단하는 레퍼토리는 거의 비슷하다. 그리스인들이 상환 능력 없이 돈을 마구쓴 게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재벌과 전경련이 후원하는 한 경제신문의 주필은 그리스 사태를 한탄하면서 “이런 일은 머지않아 닥칠 한국의미래이기도 하다”며 “노무현 정부 이후 벌써 10년 이상을 놀고먹는 나라 만들기에 온 국민이 몰입해온 한국에도 슬픈 민주주의의 종말이 다가온다”고 지적한다. 물론, 거대 신문사의 주필이라는 의 지적수준과 현실인식이 이 정도로 얄팍하고 천박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언론의 평균적인 수준이 딱 그 정도이기때문이다. 문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공간에서 이런 질 낮은 글들이 마치 정론인양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참고로, 필자는그 누구의 지지자도 아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 7월호의 시각과 진단은 국내 언론과 확연히 차이가난다.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매몰된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이 어떻게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아래 ‘도덕’을 배반했고, 또 그들의 탐욕이 어떻게 지금의 그리스와 스페인 위기를 악화시켰는지, 종국에는 이런 위기에서조차 그들의 탐욕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르디플로>는 진지하게 분석했다. 이제, 신고전주의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이 금과옥조로 내세운 ‘자유무역’의 환상은 깨진 마당에 우리는 무엇을 왜두려워해야 하나? 더 나아가면, 이미 실패로 점철된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왜 여전히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야 하는가? 늘 그렇듯이, <르 디플로>의 화법은 예의 진중하고 탐구적이지만, 그 진단과 해법은 명쾌하다. 이제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현란하게 동원한 ‘자유무역’ 마법에서 깨어나야한다는 것이다. 파워게임에선 대학과 제도권에서 밀려났지만, 비주류 경제학이 부단히도 주류의 근간이라 할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왜곡과 오류를 파헤치고 그 망상을 걷어내야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주장대로, 헤게모니적 설득력을 전파하는 ‘유기적 지식인’이 비주류 경제학 분야에
서도 많이 포진하여 왕성하게 활동할 때, ‘자유무역’ 마법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실, 신고전주의의 신화를 지워야하는 것은경제학만이 아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문학일진대, 한국 문학의 탈정치·탈리얼리티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경제학과 문학의 성격은 뚜렷이 다르고 그 경계선이 분명하지만, 우리의 문학은 마치 고요한 성곽의 공주와 왕자 같은 모습이다. 요즘, 표절 논란을 겪고 있는 신모 작가의 경우, 리얼리티보다는 아름다운 글을 중시하는 미문주의자여서 스스로 필사한 남의 멋진 글을 본인도 자기 것으로 내면화했다는 지적(김누리 교수)에 동의한다. 문학의 본령은 아름다움만을 갈구하는 미문주의나, 내적 고요함을 추구하는 내면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한 문장이더라도 현실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있는 것이리라(이는 순전히 필자의 견해이며,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국내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지들은 막강한 자본과 네트워크를 내세워 지적인 헤게모니를 발휘하며 문학의 장을 좌지우지하는 문화권력으로 통한다. 문학이 순수의 성에 갇혀 현실의 냉혹함과 그 불편한 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때, 노동자문학이니 청년문학이니, 잉여문학이니, B급 문학이니 하는 탈주류문학이 생겨난다. 그런 점에서 <르 디플로>가 금번에 출간한 <나쁜 장르의 B급 문화>는 고전과 순수로 포장된 주류 헤게모를 극복하기 위한 지침서라 할 만 하다. 언젠가 헤게모니의 주체가 바뀌어, 그들이 영원한 주류가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가 그저 놀고먹기만 한 게 아니라, 주류권력에 도전할 역량을 쌓아왔다는 사실을…
 
 
7월호 주요 내용
 
Focus 초점
필립 데캉 l 긴축 vs 절제 
에블린 피에예 l 철학자 미셸 옹프레의 위험한 사상 
마리렌 파투 마티스 l 인간이 항상 전쟁을 한 것은 아니다
질 발바스트르 l 모든 것이 교육 탓일까?

Special 1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독선
로라 랭 l 학계를 점령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
질 로티옹 l 도덕에 반하는 경제학의 궤변
로리 월러치 l ‘자유무역’이라는 깨진 환상

Special 2 지금 유럽은?
코스타스 라파비타스 l 어떻게 그리스를 구할 것인가
가브리엘 콜레티스 외 l 그리스 채무는 투자로 전환되어야
세실리아 발데즈 l 스페인을 옥죄는 '프랑코 망령'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l “그람시의 '진지전'이 우리의 전략”

Mondial 지구촌
딩이판 l 속도 붙은 위안화 국제화
조르단 푸유 l 명품 외국산 우유 사들이는 중국 자본
장 아르노 데랑스 외 l 서구와 러시아의 새로운 전쟁터 ‘발칸’
크리스텔 제랑 l 텍사스 주택 마당에 석유가 나온다는데…
알랑 포플라르 외 l 파나마에 파나마 국민은 없다
다니엘 베르트랑 l 말리, 분열의 위험
피에르 베네티 l 부룬디 공화국, 또 다른 위기의 시작
아나 오타세비크 l 코소보에 파견된 유럽임무단의 몰락
장-피에르 슈벤느망 l 시험대에 오른 우크라이나의 위기
자크 드니 l 과들루프, 설탕공장과 노예제도의 기억

Coree 한반도
최훈 l 동물원 속 새끼낙타의 푸념
김서영 l 한국 사회의 증상 읽기 10회: 무관심
정희진 l 군사주의에 갇힌 메르스

Culture 문화
세바스티앙 라파크 l 방랑의 왕, 파나이트 이스트라티!
김지연 l 지드래곤과 현대미술 아직 견고한 그들 각자의 세계
다비드 가르시아 l 부패로 물든 FIFA 지휘부
성일권 l 왜 B급 문화인가?
아르망도 알렉시스 l 요리에도 윤리가 있을까
장 자크 비르제 l 경계를 허무는 음악인 스콧 워커
아니 라크루아 리 l 나치 부역의 은밀한 재현
비르지니 뷔에노 l 인터넷 중독의 정신병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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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권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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