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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새로운 얼굴들> 왜 극우가 문제인가?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 왜 극우가 문제인가?
  • 성일권
  • 승인 2015.08.3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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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평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9조’가 2014년 노벨평화상의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지만, 아쉽게도 최종심에서 탈락했다. ‘일본 헌법9조’는 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가 공표한 수상 예측 리스트에서 줄곧 1위에 올랐었다. 세계평화주의자들이 ‘일본 헌법9조’의 수상을 기대한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극우 노선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담고 있었다. 헌법 9조 개정을 공약으로 내건 아베가 집권 뒤에 ‘전쟁도 가능하다’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은 ‘헌법9조 노벨평화상 수상운동’을 전개했다. 총리 관전 앞의 반대 시위에선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 빗대 아베의 얼굴에 콧수염을 붙인 사진이 내걸리기도 했다. 만일에 ‘일본 헌법9조’가 수상자로 예측대로 결정됐다면, 아베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시상식에 참석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을 것이다.

헌법 9조에는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뿐 아니라 지난달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성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아베는 줄곧 “일본이 국가적으로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근거없는 중상모략이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왜곡했다.

아베 정권은 역사 왜곡과 침략전쟁 및 범죄의 부정에 그치지 않고 극우세력의 혐한(嫌韓)을 노골적으로 부추긴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이같은 일본의 극우행태를 비난하지만, 이 두 세력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최근 급부상한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를 보면 마치 시계를 60여년 전 이승만 정부 시절로 되돌려놓은 듯하다. 이들은 서울광장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용 노란리본을 철거하려 한 것은 물론 “안두희씨가 김일성의 꼭두각시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는 망언까지 퍼부었다. 또 다른 극우세력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회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는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태연스레 ‘폭식행사’를 벌였다.
양심적 지식인들과 시민단체에서 이같은 극우세력의 일탈을 지적하면, 오히려 ‘종북’ 딱지를 붙이는 기이한 풍조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정부의 각종 정책이 극우성향을 띠면서 현실정치 역시 회색풍의 모노톤으로 바뀌고 있다. 반세기 우리 정치사를 뒤돌아보면, 1990년대까지의 권력투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자본 세력 대 민주화를 요구하는 노동·학생 세력이 대척점을 이뤘다. 이후 제도적 민주화와 여야 간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진보세력의 여러 갈래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정치에 합류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의회 진출에도 성공했다. 사회주의 이념 노선을 고수한 이른바 ‘과학적 사회변혁운동’ 그룹도 합법 정당(민주노동당)을 만들어 국회에 들어왔다. 노무현 집권 때는 이른바 386세대로 불리는 ‘신진 정치세력’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로 인해 정치권력 내부의 투쟁과 잡음은 상대적으로 더 격렬하고 냉혹해졌지만, 국민의 처지에서 보면 정치는 한결 더 국민의 삶 쪽에 가까이 다가왔다. ‘종북주의자’ 이석기의 의회 진출은 1990년대 들어 본격화된 이념적 학생운동 출신들의 마지막 정계 이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4·19혁명 이후 혁신그룹의 사회주의적 성향, 1970년대 민주화운동권의 자유주의적 경향, 386세대의 통일 또는 노동 지상주의적 경향 등이 차례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386 속엔 민족해방(NL) 계열도 있고, 민중민주(PD) 계열도 있다. 주사파도 있다. 주사는 당시에도 시대착오란 소리를 들었지만, 문제는 주사가 유입될 수 있던 1980년대 정치 자체가 더 시대착오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의 군사권력에 의지한 ‘빨갱이론’은 저급한 극우 매카시즘의 아류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 현실정치를 이나마 발전시켜온 것은 매카시즘이 아니라, 진보와 변혁의 정치가 아니었던가? 또한 우리에겐 진보·보수의 치열한 상호감시 체계가 있고, ‘전가의 보도’인 국가보안법도 있지 않은가?
극우세력의 발호에 때맞춰, 국가 권력이 합법적 공간에서 법의 규율 아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는 이들을 억지로 가로막고 빨갱이 딱지를 붙여 다시 지하로 내몬다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아베의 일본과 다를 게 없다!
위험수위에 다다른 국내정치의 우경화에 대한 심각한 우려에서 기획된 이 책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이 발행하는 격월간지 <마니에르 드 부아(Manière de voir)> 134호의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Nouveaux visages des extrêmes droites)>(2014년4~5월호)를 기본 텍스트로 삼았으며, 이 주제와 관련한 한국 학자들의 글을 추가하여 문맥의 상관성을 살리려 했다.
저명한 외국 필진 26명과 국내 필진 9명의 글, 총 35편을 담은 이 책은 국제사회에서의 극우정치의 기원과 전략, 귀환 및 확산을 진단하고, 한국 극우정치의 현실과 과제를 짚어본다.
1부 ‘출발은 증오였다!’ 에서는 각 국가들에서 발호하는 극우 발발의 원인을 살펴본다.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를 비롯해, 노르웨이, 이스라엘, 그리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국가,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극우세력의 증오 범죄를 분석한다.
2부 ‘극우는 무엇을 노리는가?’에서는 극렬 민족주의와 근본주의적 종교가 결합된 형태의 극우 세력의 일탈을 살펴본다.
3부 ‘극우가 귀환했다!’에선 현실정치에서 극우세력의 화려한 귀환을, 4부 ‘문화를 파고드는 극우’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스며드는 극우적 행태를 각각 분석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숭미와 과거 회귀적인 친일 사상, 그리고 기독교 근본주의에 포획된 한국 극우정치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내용의 구성면에서 정교한 통일성을 견지하는 대신에 필자들의 깊은 통찰력과 참신한 시각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필자 각자의 개성적인 문체를 최대한 존중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연속 기획으로 발행하는 <마니에르 드 부아>시리즈는 앞서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과 <나쁜 장르의 B급 문화>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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