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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태양은 다시 뜬다
그래도 태양은 다시 뜬다
  • 성일권
  • 승인 2015.12.01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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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풍경>, 2004-파트리샤 아리지스

 

2015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많이 등장한 신조어들을 음미해보면, 우리 사회 청년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절절하게 묻어납니다. 설혹 과장된 측면이 다소 있을지라도, 이 신조어들은 그 어느 명사의 주의, 주장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함의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N포세대와 헬조선에 특히 공감합니다. 취업난, 물가상승 등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취업은 물론 연애, 결혼, 출산 등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청년들에게 지옥 그 자체일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며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하고 기업총수들이 저마다 거금을 투척하는 것은, 그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긴 하지만 헬조선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지하는 처사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1년 이상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며 투병중인 이건희 회장까지 거액을 기부했으니 말입니다.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청년수당)사업’과 성남시의 ‘청년배당’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돼야 합니다.  청년수당은 미취업자나 졸업예정자 가운데 중위소득 60% 이하인 19~29세 청년 3천 명에게 월 50만원씩의 청년활동지원비를 최장 6개월까지 지원한다는 것이고, 청년배당은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19~24세의 모든 청년에게 연 100만원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들을 ‘포퓰리즘 복지사업’이라고 규정하고, 지방교부금 감액등 패널티를 부과해서라도 무분별한 무상복지사업을 막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참담한 현실과 암담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서울시와 성남시의 지원책은 오히려 미미한 수준입니다. 서울시와 성남시가 내년 예산안에 관련 사업비로 각각 책정한 금액은 90억 원과 113억 원입니다. 중앙정부의 여러 부처가 중복적으로 펼치고 있는 실효성 없는 청년실업대책의 규모가 연간 1조 7천억 원임을 볼 때, 참으로 소박한 금액입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 열띤 경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을 가장 절망의 늪에 빠뜨리는 것은 소위 ‘금수저들’의 횡포일 것입니다. 그들이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자체가 탓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타고난 시간과 금전적 여유를 바탕으로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인턴 경력, 사회봉사 등 온갖 스펙을 독점합니다. 심지어 파워풀한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쉽게 꿈의 직장이나 신의 직장에 안착합니다. 금수저들의 인위적인 스펙들이 인적자본이니, 문화자본이니, 또한 상징자본이니, 사회자본이니 하는 그럴듯한 말로 곧잘 포장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흙수저들’이 감히 넘겨볼 수 없는 그들만의 ‘자본들’입니다. 자본이라곤 물적 자본 밖에 없었던 시절에 살았던 마르크스가 요즘처럼 다양한 유형의 자본들을 바라보면, 과연 <자본론>을 어떻게 수정할지 궁금해집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은 내년에도 우리 청년들의 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늘 함께하며, 그들의 꿈과 고뇌, 실패와 좌절을 공감하면서 정의와 진실을 구현하는  젊은 매체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1차 세계대전 후, 방황하는 로스트 제네레이션에게 헌사한 첫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에서 “태양은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는 만큼 다시 뜰 것”이라고 말했듯이, 저 역시 우리 청년들에게 “그래도 태양은 다시 뜨니, 실망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2015년이 저무는 시점에 <르 디플로> 임직원은 두 손 모아 독자님 가정에 안녕과 축복을 기원하며, 지난 한 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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