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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무능한 가부장
국가와 무능한 가부장
  • 안영춘|국제편집장
  • 승인 2009.12.0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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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르 디플로’ 읽기]

신자유주의에 대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비판은 그동안 국가의 ‘공적 책임 방기’로 모아져왔습니다. 공화주의적 근대국가는 위임 권력입니다. 국민으로부터 그 힘이 나오기에 국가의 권력 행위 또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당위론은 신자유주의가 휩쓰는 지금, 철 지난 유행가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국가는 팔짱만 끼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 잠정적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르 디플로> 12월호는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국가는 과연 깨끗이 손 털고 뒷방 노인으로 물러앉았는가? <르 디플로>가 통찰한 오늘날의 국가는 전혀 다릅니다. 밖에서 뺨 맞고 집안에서 소리 지르는 ‘무능한 가부장’과 닮아 있습니다. 이 가부장은 가족 구성원의 연대와 부조를 앞장서 깨뜨리며, 각자 제 살길을 찾아가라고 을러댑니다. 집요한 감시와 통제가 뒤따릅니다. ‘방임주의’를 부르짖는 ‘병영국가’. 이 형용모순의 실체를 해부했습니다.

‘방임주의 병영국가’가 국가주의의 변이(變移)라면, 그런 국가가 부르짖는 ‘다문화주의’는 무엇일까? <르 디플로> 한국판은 이 물음의 탄착점을 들여다봤습니다. 다문화 사회 정부 광고와 ‘미누’에 대한 폭력적 추방이 공존하는 나라.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포섭’과 ‘배제’의 모순을 되풀이하는 국가 동원 체제의 프로파간다, 새마을운동의 21세기 버전이라는 통찰을 던집니다. 그럼에도 이주자의 주체화와 차이의 공존을 향한 희망을 꿈꿉니다.

프랑스에서는 ‘문화 다양성’ 마케팅으로 독보적 아성을 구축해온 대형서점 ‘프낙’이 경영 위기에 빠졌다고 합니다. <르 디플로>는 프낙의 ‘문화 다양성’이 정작 ‘무늬만 다양성’이었고, 그것이 바로 경영 위기의 뿌리라고 꼬집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의 창(窓)’을 자부하는 <르 디플로>는 어떨까요? 상징에 스스로 취하거나 그 상징으로 독자를 현혹하지 않겠습니다. 긴장의 끈을 더욱 바짝 조이겠습니다.

독자들의 자생적인 읽기 모임이 몇 달 새 넓게 퍼지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지난호에 이어 두 번째 ‘독자 에세이’도 지면에 실을 수 있었습니다. 독자의 활발한 토론과 피드백은 <르 디플로>에 앞길을 지시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저희의 영원한 길잡이가 되어주십시오.

글·안영춘 국제편집장 editor1@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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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춘|국제편집장
안영춘|국제편집장 editor1@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