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호 구매하기
비리재단은 현재 진행 중
비리재단은 현재 진행 중
  • 최형순
  • 승인 2016.04.15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형순 ㅣ 취업준비생

 

저는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인구 20만의 지방 소도시를 벗어나 1,000만 인구가 밀집한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 입학할 때 부모님께서는 너무도 기뻐하셨습니다. 수능 수험생 시절, 대학생 친구들의 학생증을 빌려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곤 하면서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요. 그런 제가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에 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교내 오리엔테이션날, 세상을 다 가진듯한 행복이 밀려왔습니다.

학과 과방에서 밤새 술을 먹다 지쳐 잠들 정도로 신나게 놀았습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것 마저 행복할 정도였습니다. 동아리 가입은 기본이고, 새내기새로배움터, 학과MT 등 행사란 행사는 무엇이든 다 참가하다보니 완전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듯 했습니다. 선배, 동기들과 민주광장에서, 자유광장에서, 학생회관 옥상에서,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남산에서, 여의도공원에서, 한강에서 날이면 날마다 세상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고, 삶을 배웠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암기위주의 지식이 '지구별'쯤 된다면, 교과서 밖, 그들의 세상살이와 그에 따른 지혜들은 '태양계'정도라고 칭해야 할 정도로 방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비리 재단에 대해 알게 되다

 

그렇게 신나기만 하던 3월의 어느 날, 선배들과 신입생들이 무척이나 조용하게 보낸 날이 있었습니다. '학교는 내 집, 학생은 내 가족'이라는 세계관이 정립될 무렵, 우리 집 같은 '학교'에서 우리 가족 같은 선배 한 분의 '학내 추모제'를 지낸 날입니다. 들어오기만 하면 다 끝날 것 같았던, 19년 동안 내 삶의 목표였던 우리 학교의 반 세기 이상의 역사가 무조건 밝고 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사학(사립대학) 건설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기관으로서 출발한 우리 학교지만 총장과 이사진을 가족끼리 구성하고 교사채용, 입학부정, 성적조작 등의 부정부패를 저질렀으며 그에 따른 검은 돈들을 흥청망청 소비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등록금을 본인의 사적 재산인 양 사용한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총장 부인의 전용 자동차와 수행기사에 드는 비용을 대학 재정으로 충당하기도 했다니 참 어이가 없지요. 마땅히 교육에 투자되어야 할 등록금을 비리 재단이 축적하고, 유용했음에도 그에 대한 정의의 심판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내 집회를 통해 더욱 많은 학생들에게 사실을 밝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경찰과 검찰 등에 수도없이 비리를 고발하고, 정의를 밝혀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학교 측의 회유와 조롱뿐이었다고 합니다. 고요속의 외침이 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아가 학생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투쟁인 200여 일 간의 '수업거부'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학교 측의 압박도 강도가 점점 강해졌습니다. 총학생회 임원들에 대한 납치와 그에 따른 회유가 있었습니다. 운동부 학생들을 사주하여, 대자보를 뜯고 여학생을 희롱했습니다. 이사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을 찾아가 무기로 위협하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비리 재단의 횡포에 맞서 싸우던 학생들을 또 다른 학생들이 막아서고, 그 결과 학생간의 폭력행위가 빗발치기까지 했습니다. 바로 그 과정에서 한 선배는 각목에 맞아 후유증으로 사망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이 80, 90년대에 비일비재 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까요.

매년 3월 열리는 학내 추모제와 추모 참배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비리 재단을 벌하고, 민주적인 사립대학을 건설하자는 고인의 뜻을 지켜나가고자 다짐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가 봅니다.

 

사학비리는 어떻게 확산될 수 있던 것일까?

 

1995년, 학교의 설립 목적과 학교의 특성에 따라 학교 설립 기준을 다양화한다는 취지로 문민정부는 '대학설립준칙주의'를 포함한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증여세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본력을 갖춘 기업들 중, 교육 재단을 만들고 싶어하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대학들은 사학비리로 인해 최근 재정난과 정원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대학폐쇄 명령을 받은 대학마저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2013년을 기점으로 폐지되었지만, 대학을 사유물로 인식해 경영상의 비리를 일삼게끔 길을 터준 교육부의 그릇된 탁상행정은,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사학의 공공성 제고를 표방하며 '사립학교법'을 마련했지만, 사학이 운영난을 겪으며 교원을 대량 해고하고 장학금을 축소하자 1년도 안 돼 사학 정비를 포기했다. 그 후 사학권력은 족벌체제 경영을 구축했고, 민주화시대인 1980,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사학비리는 다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웬만한 사립대 치고 사학비리 문제 등으로 몸살을 앓지 않은 학교가 없었을 정도였다. 여기다 어느 정도 여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허용하는 대학설립준칙주의를 1997년 도입하면서 부실 사학 설립을 부추겼다.(1)

 

2005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사학의 부패/비리 척결과 공공성을 강화하며 사학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해' 당시 여당이 개방형 이사제와 공익 감사제를 골자로 하는 사학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고 통과시켰습니다. 학교설립자 중심의 사립재단 이사회 구성으로 인해 자율적 사립학교 운영이라는 교육감독제도를 악용, 독단적이고 부정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더라도 법적인 제재장치는 없었습니다. 개방형 이사제는, 사학재단 이사회에 학교설립자 가족 이외에 교사, 학부모 또는 대학평의원회 등 학교구성원이 추천하는 이사를 일정 비율 포함시키는 제도이며, 이를 통해 독단적 재단 운영이 어렵게 되도록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공익감사제는 사립학교의 운용을 감시하는 감사를 족벌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선입했었지만 개정 사학법에서는 학교 구성원의 추천을 받는 사람이 감사에 임하게끔 하는 제도로써 부조리를 사라지게 하고 투명한 학교 운영을 가능토록 하는 제도입니다. 사립대학에는 '대학평의원회'를 설치하여 대학의 발전계획, 학칙 개정, 교육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도록 하고 예산안을 자문하는 기구의 역할도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그 구성원이 교직원과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까지 포함되어있는 보다 민주적인 회의체계라고 평가됩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사학법 원천무효를 주장했고, 거리에 나와 장외투쟁을 주도했습니다. 보수 미디어의 지원사격과 민생법안처리의 지지부진함이 겹쳐 결국 사학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유재산권(경영권) 침해이며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원리를 부정한다.'는 논리 하에 뜯어 고쳐졌습니다. 이것이 2007년 사립학교법 개악입니다. 2007년 사립학교법 개악의 핵심은 족벌사학, 사학재벌, 종신교장의 학교 사유화 허용과 부패사학에 대한 면죄부가 됩니다.

사학 부정부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던 친인척 족벌운영을 규제하고자 마련한 이사장 친인척의 학교장 임명 금지를 다시 허용했습니다. 이로써 이사장은 아버지가, 학장은 어머니가, 교무처장은 아들에 행정실장 딸, 교수 며느리 등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족벌운영이 다시 합법화 되었습니다. 임시이사 임기를 부활시켜 부패사학 복귀의 길을 마련했으며, 이사와 학교장의 위법 방조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등 부패사학에 면죄부를 주기까지 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종전이사’(학교법인의 경우 구 사립학교법상의 임시이사가 선임되기 전에 적법하게 선임되었다가 퇴임한 최후의 정식이사-대법원 판결문)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의 사학비리 재단 세력들은 쫓겨난 학교에 다시금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개악된 사학법은 사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차단함으로써 교육 민주화를 극단적으로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현재에도 진행형인 사학 비리와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상지대

‘사학비리의 백화점’이라 불리우는 김문기 전 이사장은, 정입학·편입학 금품수수, 비정상적 강사 채용에 항의하는 학생들에 대한 북한찬양세력으로의 용공조작, 학교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공금횡령, 총학생회 간부 매수, 학생들에 대한 무차별적 고소/고발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대표적인 인물.

하지만, 2014년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총장에 선임되었고 2015년 현재 상지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 학생들에게 무분별한 징계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총학생회는 학생총회를 통해 수업거부를 의결하는 등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

수원대

이인수 총장은, 2013년 10월에 점검 결과, 법인운영/직원 인사/예산·회계/시설 비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에서 33건에 이르는 비리 사실이 밝혀짐. 세부적 내용으론, 감사원·교육부 감사 결과, 기부금 50억 원 사돈회사인 TV조선에 투자, 총장 아들 미국편입학용 학적서류 허위발급, 적립금 예치은행에서 총장 개인 사업용으로 500여억 원 편법대출 의혹, 수원과학대 신텍스 건물, 총장 개인사업체 불법 지원 의혹이 제기,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이인수 총장 국감 증인 채택을 무산시킨 것과 관련해 김 의원의 딸이 수원대 교수로 뇌물성 특채됐다는 의혹제기

하지만, 이인수 총장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채택을 새누리당이 3년 동안이나 거부, 또는 방해하고 있어 국정감사에 채택되지 못하고 있음

 

개정에 개정을 거치며 누더기가 되어버린 사학법으로 인해, 앞선 두 대학뿐만 아니라 경기대, 세종대, 동덕여대, 성신여대 등에서 사학비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근 ‘충암고등학교 급식비리’를 통해 비리재단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뜨거워지고 있지만 사학에서 바른 소리 했다가 부당하게 해직된 교수 역시 속출하고 있으며, 학생에 대한 고발마저 자행되고 있습니다. 대학본부와 이사회의 거대 권력 앞에 학내 구성원들의 권리는 짓밟히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대학 내의 민주주의는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학생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학교 운영을 견제, 감시하는 자치기구인 '총학생회' 선거에 학교당국이 개입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학교 차원의 경제적, 행정적 지원을 미끼로 공약을 제안하면서 선거 출마를 권유한 것입니다. 처음 알려진 양심선언 대자보에 이어 학교 측의 반박 대자보가 붙으며 논란은 심화되었고, 결국 총학생회 선거는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중앙대에서는 이사회가 대학 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인문사회계열 비인기 전공학과를 폐지하도록 일방적으로 학칙을 개정하기도 했고, 이에 무려 53명의 학생들이 가처분 신청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대만은 교육 부패를 저질렀던 자는 다시 학교로 복귀가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학은 가족과 그 측근들이 이사진을 장악해 주요 보직들을 나눠먹고 있습니다. 한 명이 비리로 인해 학교 밖으로 퇴출되더라도, 나머지 보직의 측근들이 다시금 이사회 회의라는 명목으로 복귀를 시켜줍니다. 도무지 교육적이지 않은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만 몇십 년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육은 국가의 기본책무입니다. 교육과 학교가 공적인 것임에도 여전히 대학은 사학비리와 독단적 운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대학운영에 교수·학생·교직원 등을 비롯한 동문과 대학발전논의에 도움되는 인사들이 학교운영에 심의·자문하도록 하는 대학평의원회가 있다 해도 구성원의 규정도 정확하지 않고 의결권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사학비리를 막고 대학 안에서의 비민주적 운영과정을 개선해가기 위해서는 대학구성원들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대학평의원회를 개선해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제대로 사립대학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지도 않고 대학의 문제에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황당한 건 2012~2014년 교육부 퇴직 뒤 재취업한 공무원 21명은 대학총장을 비롯한 대학 내 주요 교직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2) 이들을 모셔간 대학은 이전보다 정부 지원금을 훨씬 많이 타냈다는 정황까지 포착됐습니다. 이쯤되니 '교피아(교육부+마피아)'란 수식어가 합당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사립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고여 있는 윗물의 비리부터 척결'해야겠습니다. 지금 현재에도 수많은 시민단체들과 교육자들이 함께 비리사학의 퇴출과 교육의 공공성 보장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이야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 한 분 한 분의 관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 한민송, 2015, ‘성균관대·중앙대,‘화려한 외모’얻었지만‘, <오마이뉴스>

(2) 정진후, 정의당 국회의원-2014 보고서 ‘교피아 : 퇴직후 재취업자 100% 교육관련기관으로’

 

글·최형순

2007년 청운의 꿈을 가지고 상경해 그 누구보다 뜨겁게 대학생활을 했으며, 현재 취업준비을 하고 있다.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 입문서>에서 발췌된 것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본지에 게재됨을 밝힙니다.

 

 

 

[관련 기사]

 

 

격렬히 바꾸고 싶다고? 그럼 이 책을!

 

양리리 ㅣ서대문도서관친구들 대표

세상에는 바꾸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집도, 차도, 직업도 심지어 어쩔 때는 나까지도 바꾸고 싶다. 사용하는 언어도 촌스러운 우리말보다 멋진 영어로 바꾸고 싶고, 가장 바꾸고 싶은 인생 또한 한 방이기에 오늘도 로또 복권 가게 앞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줄을 선다. 그토록 바꾸고 싶은 것은 많은데 왜 이리 바꿀 수 있는 것은 드문 것일까? 바뀌지 않는 것들 투성이일까?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가장 바꾸고 싶어 한 이들은 흙을 금으로 바꾸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던 중세의 연금술사들일 것이다. 아, 이전까지는 세상이 바뀐 후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왔네!” 하며 살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있다. 이렇게 세상이 바뀔 것이다.” 하고 황당한 청사진을 보여준 칼 마르크스라는 인물이 그 뒤를 이을지 모른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 했던 선조들이 꽤 많았다. 물론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러나 아는가? 바로 그 허황된 연금술이 근대 화학을 잉태했고, 황당한 마르크스의 주장이 자본주의의 병폐를 끊임없이 수정하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봉준의 세상을 바꾸고자 한 꿈은 실패했지만 그로부터 조선의 근대 개혁이 시작되었고, 답답한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고자 몸을 던져 싸운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거름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싹을 피웠다.

그렇다. 바꾸고자 하는 꿈만으로는 부족했다. 세상은 바꾸고 싶은 꿈만으로는 결코 바뀌지 않았다. 세상을 바꾼 것은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진 이들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철저히 공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왜 바꾸어야 하는지, 그런데도 왜 바뀌지 않는지, 바꾸기 위해서 노력한 이들은 왜 실패했는지, 그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공부하지 않고, 그저 “지금까지도 바꾸고 싶었지만 더욱 격렬히 바꾸고 싶다.”라는 망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아, 그런 망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도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다.

이른바 흙수저를 금수저로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은 복권방 앞에 길게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공고한 세상의 신분질서를 바꾸기 위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나서야 한다는 사실, 청년실업률을 더 낮은 수치로 바꾸기 위해서는 써 먹지도 못할 내 스펙을 끊임없이 바꾸는 게 아니라 재벌-언론-정치-대학-신분으로 순환되는 사회의 체제를 먼저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라는 참 재미없는 제목의 책은 우리 삶을 온통 바꾸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로 가득하다. 바꾸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부로 가득하다. ‘핵노잼’한 제목을 확 깨주는 것은‘핵꿀잼’한 내용이다. 왜 ‘핵꿈잼’이냐고? 촌스러운 우리말로 쓰인 내용을 읽는 순간 갑자기 답답한 내 마음이, 삶이 시원한 사이다 세례를 받기 때문이다. 아! 사이다 세례만큼 시원한‘핵꿀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이 글을 쓴 이들은 유명 작가도 아니고, 박학다식한 교수님들도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당하고 저기서 치여 이제는 단칸방 한구석으로 밀려난 청춘들이다.

다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앞서 깨달았다는 사실뿐이다. 공부해야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흙수저로는 밥 한 숟갈 뜰 수 없지만 금수저 또한 밥 먹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젊은이가 함께 모여 스테인리스 수저로 밥을 먹는 세상을 꿈꾸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2016년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몽상가는 연금술사도 아니고 마르크스도 아니며 전봉준도 아닌, <바꿈청년네트워크>이다. 이 책을 지은이들 말이다.

우리 삶의 길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줄 길을 앞서 개척해준 청년들에게 건~배!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받아보시고, 동시에 모든 PDF와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PDF와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최형순
최형순 change2020@change2020.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