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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파괴된 天倫, 그래도 꿋꿋이 버티는 노인들…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해”
욕망에 파괴된 天倫, 그래도 꿋꿋이 버티는 노인들…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해”
  • 윤상민
  • 승인 2016.05.31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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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춘할망」과 「오베라는 남자」, 영화가 가슴을 적실 때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대한민국의 5월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재산을 차지하려 부모를 계획적으로 살인한 남매 사건부터 여성혐오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까지. 경쟁만이 생존의 유일한 길인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오늘 한국의 모습에서 세대, 남녀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기만 한다. 끊임없이 오해되고 과잉 확대, 재생산되는 논란들을 직면하기도, 그저 바라보기마저도 힘든 참혹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여기 두 편의 영화, 「계춘할망」(창 감독, 한국)과 「오베라는 남자」(하네스 홀름 감독, 스웨덴)가 그 답을 알려주는 듯하다.

 

먼저 할머니와 손녀의 절절한 사랑을 그린「계춘할망」을 살펴보자. 플롯은 단순하다. 뭍으로 떠나버린 엄마 대신 해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손녀딸. 서로에게 자기의 편이 되어 주며 할망 계춘(윤여정 분)과 손녀딸 혜지(김고은 분)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스크린을 쨍한 노란빛으로 수놓는 유채꽃밭이나 희뿌연 안개가 걸친 제주 오름들의 신비로운 풍광, 아름다운 사려니 숲과 풍차 해안도로 장면들은 덤이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북적이는 시장에서 계춘이 손녀딸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물질을 할 때면 은빛으로 반짝이던 제주의 바다물결도, 손녀와 함께 걷던 흙먼지 날리던 마을길도 그 빛과 향기를 잃었다. 계춘에게 제주도는 행복한 삶의 공간이 아닌, 돌아올 기약 없는 손녀를 기다리는 감옥 아닌 감옥이 됐다. 그렇게 계춘은 스스로를 유배한다.

「계춘할망」은 창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2007년 러브홀릭의 뮤직비디오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일상을 담았던 그는 더 늦기 전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애초부터 윤여정과 김고은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던 창 감독. 마침내 해녀 할머니와 손녀의 옷을 입고 완성된 시나리오에 배우들이 움직였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누군가 진심으로 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는 윤여정과 스무 살 때부터 할머니와 살고 있기에 더 시나리오에 공감했다는 김고은 간의 상호감정은 영화 내내 이들이 친혈육처럼 느껴지게 할 정도다.

계춘은 잃어버린 손녀가 돌아오는 순간 죄책감으로 자신을 유폐했던 고립에서 빠져나온다. 12년 전 손녀를 잃어버렸던 바로 그 시점에 멈춰있었던 그녀의 시간은 손녀의 귀환과 동시에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혹 손녀가 돌아올까 수리도 않아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집도 고치고 수세식 변기에 익숙한 손녀를 위해 ‘푸세식’ 화장실의 똥돼지도 치워버린다. 적막했던 집은 드나드는 이웃들의 소리로 시끌벅적해진다. 모든 일이 해결된 것 같은데, 영화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드리운다. 할머니바라기였던 손녀 혜지는 왜 그토록 돌아오고 싶던 집에 왔는데도 불편해할까. 왜 살갑던 혜지는 할머니를 서먹하게 대할까. 그리고 밝혀지는 혜지의 정체. 할머니의 손녀찾기로 단순해질 뻔 했던 영화의 플롯이 일순간 확장되는 반전의 순간이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이혼으로 깨져버린 가정이 아이에게 얼마나 위태로운 공간일 수 있는지, 폭력적인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도태되는지, 돈에 대한 욕망이 天倫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가쁜 호흡으로 보여준다.

 

마침내 해녀 할머니와 손녀라는 옷을 입고 완성된 시나리오에 배우들이 움직였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누군가 진심으로 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는 윤여정과 

  스무 살 때부터 할머니와 살고 있기에 더 시나리오에 공감했다는 김고은 간의

  상호감정은 영화 내내 이들이 친혈육처럼 느껴지게 할 정도다.

 

그렇다면「오베라는 남자」는 어떤가. 이 영화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900만 인구 규모의 스웨덴에서 70만 부가 판매돼 무명작가였던 배크만은 일약 스타가 됐다. 독일,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등 유럽에서도 100만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캐나다에서는 ‘올해의 책’TOP 3에 오르기까지 했다.

역시나 플롯은 단순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한 오베(롤프 라스가드, 필립 버그 분). 6개월 전,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아내 소냐(이다 엥볼 분)까지 세상을 떠난 터라 이제 세상은 그에게 무의미하다. 아내 말고는 세상 모든 사람을 멍청이라고 생각하는 할아버지 오베.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은 아내를 따라가는 것 뿐.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오베가 계획을 실행할 순간, 앞집으로 이사 온 이란 가족 으로 인해 그의 자살 시도는 실패한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자살 시도 시점에 절묘하게도 자꾸만 이웃들이 개입한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앞집 남자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고 아버지에게서 쫓겨난 소년 때문에 오베의 계획은 자꾸만 미뤄진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운명의 손이 개입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한 고집불통 노인의 고군분투 자살기인 셈이다.
 
영화는 오베가 자살에 실패하는 시점마다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해 그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로 돌아가는 영민함을 보인다. 여기서 정현종 시인의「방문객」한 구절.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오베라는 남자」는 이 시구를 매우 잘 이해하고 실천한 영화다. 칸트처럼 스스로 만든 규칙 안에서만 살기에 이웃들에게는 괴팍한 노인네로만 보였던 오베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아니 왜 이렇게 ‘보이는’사람이 됐는지 영화는 조금씩 공을 들여 차근차근 설명한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이른 죽음, 차 밖에 모르던 아버지에게서 부성애를 느끼게 된 사건, 어엿한 아들이 되기 위한 과정들, 행복한 순간에 찾아온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여기에 화재로 집까지 잃어 천애고아가 되며 숨 쉬어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청년 시절. 운명 같은 아내와의 만남으로 오베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지만 질투의 신은 오베의 삶에 또 한 번 개입한다. 잔인한 방식으로. 그렇다. 삶은 늘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 차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 인생은 과거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지만 전향적이 아니라면 살아갈 수 없기에.
 
 
하지만 「오베라는 남자」역시 이 아이러니한 사건을 통해 단순했던 서사구조를 확장시킨다. 가족, 집, 직장을 모두 잃었던 남자가 한 여자를 통해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닥친 사고로 이 부부는 아이를 잃는다. 그리고 남자는 불구가 된 부인의 재취업을 위해 학교, 공공기관 심지어 국가를 상대로 장애인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물론, 응답은 없다. 공허한 메아리 같은 싸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변화를 거부하는 사회 앞에 지쳐 포기하려는 오베에게 평생의 사랑 소냐는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해”라며 다독인다. 그날 밤 오베는 학교 현관에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경사로를 만들고 이는 학교 당국과 관계자 모두를 감동시킨다. 결국 장애를 가진 소냐는 재취업에 성공한다. 그리고 문제아로 가득한 특수학급의 학생들을 불과 1년 만에 『햄릿』을 낭독하게 변화시키는 참스승이 된다. 혈육은 없으나 소냐를 엄마처럼 따르는 자식이 수십 명이 생긴 셈이다.
 
내러티브 구조를 가진 대다수의 영화들은 그 장르를 불문하고 성장영화의 형식을 띤다. 「계춘할망」과「오베라는 남자」역시 이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오베라는 남자」가 죽음을 삶의 목표로 설정했던 노인이 죽음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노인 성장기’ 속에서 집단 사회와 개인의 화해를 보여줬다면, 「계춘할망」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붙이가 아닌 손녀를 보듬음으로써 세대를 뛰어넘는 화해를 그려내고자 했다. 또한 「오베라는 남자」에서는 이란계 이민 가족과 이웃이 화해의 매개자 역할을 하며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성장하는 개인’을 강조했다면, 「계춘할망」에서는 모진 세월의 흐름을 이겨낸, 아니 버텨낸 한 노인이 자본으로 부서진 어린 세대를 끌어안음으로써 ‘단절된 세대를 복원하는 노인’의 지혜와 연륜을 포착해냈다.
 
젊은 세대들에게 괴팍한 노인네 취급을 받게 했던 오베의 규칙들은 그의 사후 마을 공동체의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 된다. 내어 주고도 더 내어 줄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모성애의 극한을 보여주는 계춘의 태도는 어둠 속에 살던 청소년을 빛으로 끌어낸다. 그래서 오베가 다시 소냐를 만나는 마지막 장면과 계춘이 다시 혜지를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마치 거울처럼 아름답게 공명한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다가 결국에는 눈물, 콧물 쏙 빼놓는 오베 할아버지와 계춘 할망. 코를 훌쩍이며 극장을 나서는데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 앙다문 채 오가는 남녀노소 행인들이 눈에 띤다. 아,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오베와 계춘이 있었던가. 퉁퉁 부어버린 눈 덕분에 조금은 순해 보이는 눈매로 그리고 뭔가 뻐근한 심장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소통의 시작이다. 변화는 가슴에서부터 시작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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