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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권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인권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
  • 박지인/미추홀외국어고등학교 정지형/바람저널리스트
  • 승인 2016.07.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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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라고 하면 고기는 안 먹고 채소만 먹는 사람을 가리킨다. 왜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할까. 단지 싫어해서일 수도 있고 도살장에서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이 잔인해서일 수도 있다. 이 글의 저자는 채식주의자가 된 다른 이유를 말한다. 도살장에서 일한 뒤 정신병을 얻은 환자와 대화를 나눈 이후 채식주의자의 길로 들어섰다. 도살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동물의 머리를 자르고 줍고 치우는 일을 하면서 정신이 피폐해진다. 관련 내용을 영국의 비영리 시민 언론 단체 오픈데모크라시(openDemocracy)가 지난 2월 15일에 보도했다.

17살 때만 해도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채식주의자는 우선순위를 잘못 두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인간보다 동물을 더 걱정할 수 있을까. 윤리적이기보다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들로 보였다.

그 후 18살이 되었을 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동물보호에 대한 논쟁은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사실 동물의 생명을 걱정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면이 있었다. 환경을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 끌어 오르는 자신감은 대재앙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했다.

도축업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고 고기를 그만 먹겠다고 결심했다.

17살이었을 당시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을 한 적이 있다. 근무 시간은 3시간이었지만 45분이면 일을 다 마칠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는 다른 직원과 만나서 치킨과 다과를 즐기곤 했다. 관리자는 퇴근 시간 기록을 위해 제시간에 들어오는 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꿈의 직장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18번째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정신병동으로 부서를 옮겼다. 안전문 4개를 지나면 있는 새로운 곳에서 식탁을 닦는 일을 했다. 몇 분 후 한 환자가 다가왔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그는 단단한 체격에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있었다. 개인 공간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는지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져 있었다. 흘깃 보기로 손톱은 다 물어 뜯겨 있었고 주변 피부는 마르고 염증이 있었다. 이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찌를 거야.”라고 말했다. 순간 그대로 얼었다. 이어 그는 “널 찌르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거야.”라고 말했다. 다행히 칼을 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위안은 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얼굴을 손에 파묻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죄송해요. 죄송해요.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걸레를 들고 병동의 다른 끝으로 갔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목을 조르려고 위협하며 얼굴색이 분홍색에서 빨간색 그리고 파란색이 될 때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선 아까처럼 후회하는 듯한 모습으로 용서를 구했다.

남은 몇 주 동안 말썽피우는 이 남자는 협박과 사과가 이어지는 일상을 반복했다. 다른 청소부처럼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근무 마지막 쯤 그가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협박하지 않았다. 치료가 바뀌어서 그런지 의식이 또렷해 보였다. 그와 축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의 이름은 제즈(Jez)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신과 입원 치료 명령을 받기 전에는 도축장에서 일했다고 했다. 마대를 들고 다니며 동물들의 머리를 주워 담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제즈의 일상적인 협박적 폭력과 과거 종사했던 직업의 폭력성에 대해 의아함이 들었다. 사람을 죽이려 드는 모습과 죄책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쇠약한 모습은 도축장에서 훼손된 동물의 사체를 치웠던 경험 때문에 악화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의 모습은 비전형적인 것은 아니다. 소설가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는 1905년에 도축장 노동자가 일을 그만둔 후 자주 폭행에 연루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동물의 머리를 내리치는 사람은 그것에 습관이 들린 것처럼 보였고 친구를 상대로 같은 행위를 하는 것 같았다.

‘싱클레어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은 일 자체에 원인이 있다기 보다 도살장의 특징인 젊은 남성의 인구통계학적 요인, 도살장에서 주로 고용하려는 이민자 인구, 새로이 유입된 이주민이 도축장이 있는 마을에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불안정, 일반적인 실업의 영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와 같은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에서 실시된 한 연구는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도살장이나 철강, 주물, 트레일러 제조회사가 많이 있는 581개 신도시에서의 범죄율을 비교했다. 청년, 빈곤, 국내외 이주민, 실업, 인구밀도가 통제된 채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는 도살장이 있는 마을에서 ‘싱클레어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폭력과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경우는 도축장이 많은 신흥도시에서 더욱 많았다. 강간 혐의로 체포된 경우는 도살장이 많은 곳에서 166% 많았다.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2012년에 브라질에서 진행된 한 연구는 직장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양계장 바닥 청소 노동자, 도살장 관리직, 대학생 세 집단으로 나눠 비교했다. 불안의 수준에서 대학생이 관리직보다 10% 높았으며 청소 노동자는 관리직보다 70% 높게 나타났다. 우울증과 관련해서 대학생은 관리직보다 1.7% 높게 나타난 반면 청소 노동자는 관리직보다 67% 높게 나타났다.

7도에 이르는 낮은 온도, 내장에서 나온 이물질로 뒤덮인 바닥, 배설물의 악취, 손으로 새를 잡을 때 얼굴과 몸에 튀는 피, 반복적 노동, 심한 소음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특이한 결과는 아니다.

영국에서 ‘유기적’이고 ‘인간적인’ 구조를 갖춘 도살장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관찰을 했다. 폭력에 무감각해진 노동자가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동물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내리치고, 얼굴을 담뱃불로 지지고, 무딘 칼로 목을 마구 패서 자르고, 사체를 던지고, 도살하면서 웃고 욕하는 모습이 찍혔다. 이들은 도살장에서 일하기 전부터 도덕적으로 부패했던 것일까. 아니면 하루에 8시간동안 동물을 죽이면 받는 재정적 보상이 그들의 행동을 비뚤어지게 만든 것일까.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 85%의 사람이 음식을 위해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기를 구매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이 생계를 위해 동물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고기를 원하는 마음과 도살하길 원하지 않는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은 잔인한 작업을 멀리 떨어진 도살장에 위탁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우리는 도살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인간다운 삶의 필요성을 잊어버리거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그들에게 하도록 맡겨놓고 그들을 경멸하는 좋지 않은 현실을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부라쿠민은 수백 년 동안 천민으로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적으로 부라쿠민은 신분을 알리는 복장을 착용해야 했고 오늘날까지도 차별은 이어지고 있다. 구글 어스가 부라쿠마 마을을 봉건 시대 지도에 포함시키려고 했을 때 일본 공중의 거센 항의가 있었다.

일본에서 소를 도살하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와규 소고기를 만든 사람이 부라쿠민 사람이었다. 그들은 하는 일 때문에 목숨의 위협도 받기도 했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천한 사람에게 천한 일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갈망과 혐오 사이의 충돌로 형성되는 태도는 만족을 위해 매춘부를 찾지만 일이 끝난 후에는 창녀로 경멸하는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18살 때 병원 일을 그만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와 독립했다. 난생 처음으로 식사를 위해 많은 양의 음식을 스스로 구입했다. 단순한 선택을 넘어 무엇을 먹는지는 책임감의 문제가 됐다.

첫 장보기에서 소시지 한 팩을 집었다. 예쁘게 포장된 녹색 겉면에는 평화로운 초원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에서 세심하게 짜인 상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포장은 음식에 담겨있는 인건비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디자인돼 있었다. 슬픈 미소가 나왔다. 소시지를 선반에 내려놓고 걸어 나왔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관리다. 그러나 도축업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17살에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https://www.opendemocracy.net/transformation/andy-west/i-stopped-eating-animals-because-of-human-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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