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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밥그릇 속 무서운 정치경제학
어린이 밥그릇 속 무서운 정치경제학
  • 강남훈|한신대 교수·경제학
  • 승인 2010.01.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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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교육 패권주의] 경기도 초등학생 무상 급식 논란

교육청 무상 급식 추진에 도청·도의회 제동 걸어
보수 정치세력, 교육 볼모로 사사건건 딴죽 걸기

2009년 12월 21일, 경기도의회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올린 무상 급식 예산안 중 초등학교 5·6학년 무상 급식 예산 394억 원을 삭감하고,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자녀와 함께 무상 급식을 받을 수 있는 차상위계층 기준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소득의 130%에서 150%로 변경해(월 가구소득 200만 원 이하 정도) 365억 원을 증액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법적으로 교육감의 동의 없이 예산을 신설하거나 증액할 수 없는 도의회가 일방적으로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29일 이같은 예산안 처리가 지방자치법 제127조 3항의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 없이 지출 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용 항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조항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의를 요청했다.
 
진보 교육감-한나라당 대결

▲ 김홍도의 <평생도> 중 장원급제 행차 모습.
이처럼 무상 급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에 대해 흔히들 “도교육청의 학생들에게 눈치 보지 않고 밥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겠다는 주장과, 도와 도의회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자는 주장이 상충된 결과”(<조선일보> 2009년 12월 21일)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단순한 해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먼저 대립의 주체를 도의회와 도교육청이라고 부르는 것은 혼란을 줄 수 있다. 현재 경기도의회는 대부분이 한나라당 도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도의회와 도교육청의 대립은 한나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도의회와 김상곤 교육감이 통솔하는 도교육청의 대립, 쉽게 말해서 한나라당과 김상곤의 대립이다.

다음으로 도의회는 도교육청과 무상 급식 실시 방법의 차이로만 대립한 것이 아니다. 도의회는 원래 무상 급식 자체에 반대했다. “전체 학생에게 무상 급식을 실시하는 것은 의타심만 기르고 교육상 좋지 않다.” “올해 500억 원이나 증액해 초·중·고교생의 무료 급식을 확대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 아닙니까?” “무상 급식과 아침 급식으로 인해 교육 여건 개선과 교육 활성화 예산을 줄인다면 하나를 얻고 열을 잃는 격이 아닌가? 즉 교육과정 운영의 내실화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교육의 본질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고 생각한다.”(경기도의회 속기록) “학교는 무료 급식소가 아니다.” “훌륭한 선생님 모시기, 과학기자재 구입하기 등에 예산을 합리적으로 배분해 써야 하는데 온통 무료 급식해서 밥 먹이고 치우자고 한다.”(김문수 경기도지사, 2009년 12월 초)

그러나 초등학교 전체 무상 급식은 경상남도, 경기도 성남·과천시에서 먼저 시작한 정책이다. 이들 모두 단체장이 한나라당 소속이고, 지방의회에서 한나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원래 무상 급식에 반대해온 것이 아니라, 경기도 한나라당만 무상 급식을 반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은 어떤 지역에서는 무상 급식을 앞장서서 실시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결사반대하는 모순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좋은 정책도 내 것 아니면 “노”
어쨌든 최종적으로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은 무상 급식에 찬성하는 듯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무상 급식 예산, 삭감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늘렸습니다. 무상 급식 예산 삭감이 아니고 오히려 90억 원이 증액됐습니다. 자꾸 무상 급식 삭감됐다고 허위 선전을 하고 있는데, 그거 완전히 허위입니다.”(김문수 경기도지사, 2009년 12월 28일)

이와 같이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은 처음에는 무상 급식에 반대하다가 나중에는 무상 급식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처음에는 내용에 대해, 지금은 방법에 대해 반대하는 셈이다. 말하자면 도의회의 유일하게 일관된 입장은, 내용이든 방법이든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이다. 남이 하면 포퓰리즘이고 교육 훼손이지만 자기가 하면 친서민이고 학생 복지 증가라는 식이다. 이러한 대립에는 어떤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올바른가보다는 어떤 정당이 주도하는가를 더 중요시하는 정치적 패권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도의회는 과연 김문수 지사 말대로 무상 급식 예산을 90억 원 증액한 것일까? 교육청이 제출한 무상 급식 예산안은 원래 교육청 예산 1870억 원과 지자체 대응투자 810억 원을 합해서 2680억 원이었는데, 도의회에서 의결한 예산은 교육청 예산 1960억 원뿐이다. 교육청 예산만으로 보면 90억 원이 증액되었지만, 무상 급식 예산 전체로 보면 720억 원이 삭감된 것이다. 교육청은 교육청 예산과 지자체 예산을 합해서 무상 급식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도의회는 교육청 예산을 조금 늘리면서 지자체 예산을 모두 없애버린 꼴이다. 도의회는 처음에는 무상 급식을 하면 귀중한 교육 예산이 훼손된다고 주장하다가, 이제는 지자체 돈은 쓰지 말고 교육 예산만 써서 무상 급식을 하라는 태도로 바뀐 것이다. 결국 무상 급식 대상 학생 수로 보면 64만4140명에서 42만8033명으로 21만6107명만큼 감소하게 되었다. 도의회는 무상 급식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축소한 것이다.
 
돈 들여 ‘눈칫밥’ 강요하는 경기도
기초생활수급자 소득의 130% 이하인 학생들은 2009년부터 이미 무상 급식을 받고 있다. 쟁점이 되는 것은 130%에서 150% 사이의 학생들이다. 도의회는 이 학생들로부터 가난하다는 증명서를 받아서 무상 급식을 해주라는 것이다. 이 정도 소득의 사람들 중에서 누가 더 가난한지를 판단하는 작업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소득뿐만 아니라 자택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를 살펴봐야 하고, 형제자매나 조부모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지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사를 잘못하면 가난하면서도 혜택을 보지 못하는 불공평한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이런 행정 비용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학생들의 수치심, 낙인 효과, 왕따 현상 등이다. 소득이 아주 낮은 학생은 공짜밥을 먹는 데 따르는 수치심도 그나마 작을지 모른다. 130%에서 150%의 학생들이 느끼는 수치심이 더 클 수 있다. 그리고 한 반에 한두 명만 대상자일 때에는 왕따 현상이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10~20% 학생들이 대상자가 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집단 사이 왕따 현상이 새롭게 발생할 수 있고, 패거리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한나라당 도의회는 이런 문제에 신경을 안 쓴다. 가난한 학생들은 “눈칫밥이라도 먹어야 할 것 아닙니까?”(김문수 경기도지사, 12월 28일). 그런데 130%에서 150%의 학생들은 지금까지 힘들지만 자기 돈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왜 이런 학생들에게 귀한 예산을 써가면서 눈칫밥을 먹이려고 하는 것일까?

“5·6학년 무상 급식이냐, 200만 원 이하 무상 급식이냐”라는 대립 속에는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숨어 있다. 그것은 무상 급식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 것인가의 차이다. 초등학교 5·6학년에게 무상 급식을 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앞으로 초등학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 급식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라도 ‘올해는 5·6학년까지지만 내년에는 3·4학년까지 확대되겠구나’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월소득 200만 원 이하 학생에게 무상 급식을 시행하는 것은 그 이상은 무상 급식을 시행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행정 비용뿐만 아니라 차별적인 무상 급식으로 인한 수치심과 저항감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무상 급식을 가난한 학생들에게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과 전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의 대립으로 귀결된다. 가난하면 수치심을 느끼면서 밥을 먹고, 부자들은 (자기 돈 내고) 당당하게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경제적 패권주의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상 급식엔 소득 재분배 효과도
모든 패권주의에는 경제적 이득이 숨어 있다. 무상 급식 논쟁에 무슨 경제적 이득이 숨어 있을까? 우리나라 모든 학생에게 무상 급식을 하려면 3조 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위해서는 4대강 같은 다른 예산을 줄이지 않는 한 세금 3조 원을 새로 걷을 수밖에 없다. 이때 세금은 누가 내게 될까?

안현효 교수(대구대 사회교육과)는 최근 무상 급식과 관련한 중간보고서를 경기도교육청에 제출했다. 1년에 학생 1인당 40만 원씩 무상 급식을 제공할 때 무상 급식으로 인한 혜택과 무상 급식 때문에 더 내야 하는 세금의 크기를 소득 10분위별로 추정한 것이다(표 참조).

보고서를 보면, 모든 계층에게 급식비 40만 원을 지급하려면 소득 1분위의 사람은 세금 1776원을 더 내야 하지만 소득 10분위의 사람은 188만 원을 더 내야 한다. 그리고 무상 급식을 실시하면 소득 7분위 사람까지는, 즉 인구의 70%에 해당하는 사람들까지는 추가 세금이 40만 원을 밑돌아 혜택을 보게 된다. 이것은 많지는 않지만, 교육비 부담을 상당히 줄여줄 수 있는 크기다. 이와 같이 무상 급식은 저소득층에게 수치심을 없애줄 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는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이다. 결국 “부자들에게는 무상 급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김문수 지사와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의 말 속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지 말자”는 경제적 이해가 걸려 있는 것이다.

무상 급식 이외에도 경기도교육청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패권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경기도청 내에 교육국을 신설(1)한 것이나, 김상곤 교육감 임기가 끝날 때까지 내내 행정감사를 하겠다는 것은 교육을 정치에 종속시키려는 패권주의다.(2)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대립 속에는 연령별·세대별, 그리고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의 패권주의가 자리잡고 있다.(3) 혁신학교를 확대하려는 김상곤 교육감과 자사고를 확대하려는 교육과학기술부 사이의 대립에는 돈이 있는 사람에게만 좋은 교육을 시키려는 교육적·문화적 패권주의가 들어 있다. 경기도교육청 무상 급식을 둘러싼 대립에는 이렇게 많은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글•강남훈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 주요 저서로는 <정보혁명의 정치경제학>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 등이 있다.

<각주>
(1) 경기도는 “교육 자치 침해”라는 경기도교육청과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9년 11월 2일 도청 안에 교육국을 신설했다. 도교육청은 대법원에 교육국 관련 조례의 무효를 주장하는 기관소송을 냈다.
(2) 경기도의회는 12월 30일, 김상곤 교육감의 정치 중립성 위반 행위와 교육국 설치 반대 활동, 시국선언 교사 징계 거부 행위에 대해 본격적인 사무조사 활동을 벌이겠다며 ‘경기도교육감의 경기 교육 파탄에 관한 행정사무조사 계획서 승인안’을 의결했다.
(3) 경기도교육청은 12월 17일 학생들의 사생활과 양심, 자기결정권 등을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안을 발표했다. 이 조례는 도의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경기도와 도의회는 도교육청의 조례안을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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