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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균|서울대 교수·정치학
  • 승인 2010.01.06 14: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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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교육 패권주의] 서울대 법인화

“세계 10위권 진입”은 1%만을 위한 허구 논리
대학·학문 자율성 잃고 고등교육 황폐화 불보듯


최근 국무회의는 ‘서울대 법인화’를 위한 정부안을 확정하고, 이 안을 국회에 회부했다. 그런데 서울대가 법인화된다면,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이 법인화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서울대 법인화는 사실상 현재와 같은 국립대학 체계의 전면적 붕괴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 김홍도의 <평생도> 중 과거시험장 모습.
정부안이 알려지자 언론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서울대가 모종의 ‘빅딜’을 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을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특혜 시비 문제로 치환되는 현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특혜 여부는 법인화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문제다. 법인화 추진의 본래적 목표는 ‘고등교육의 시장화’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본질은 고등교육의 시장화가 과연 올바른 대학교육 정책이 될 수 있는지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우리나라는 전체 대학 중 국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도 안 될 정도로 사립대학 비중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고등교육 체계를 갖고 있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 대학 재정 중 정부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78%인 데 비해, 지난해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 재정 약 20조원 가운데 정부 지원은 23%에 불과할 정도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법인화할 경우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공공적 책임을 한층 더 방기하라는 주문과 마찬가지다. 법인화 여부와 상관없이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수준을 현재보다 더 줄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문제는 고등교육을 위한 재정 확충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정부가 그 확충을 위한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립대도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체제로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국립대 법인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을 목표로 내세우는 서울대 역시 정부의 획기적 재정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율성의 확보와 이를 통한 더 많은 재정 확보 등을 명분으로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 지원은 손떼고 수렴청정
법인화된다면 서울대는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이라는, 자신이 내세우는 목표의 달성에 요구되는 재정을 과연 확보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그러려면 궁극적으로 대학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는 길 이외에는 없다. 서울대의 재정 중 기성회비 징수와 정부나 기업의 연구 프로젝트 수주 및 발전기금 모금 등을 통한 재정 충당액이 국고 지원액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서울대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마당에 등록금의 대폭적 인상 이외에 재정을 확충할 길이 없다. 물론 법인화되면 자체 수익 사업을 통한 돈벌이가 허용된다. 그러나 기업이 아닌 대학이 자체 수익 사업으로 돈을 벌려고 해도 대체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주식에 투자해 막대한 손해를 본 카이스트의 사례가 보여주다시피, 돈을 벌기는커녕 투자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법인화의 효과는 오히려 수익 사업 등을 통해 실제로는 돈을 잘 벌지 못할지라도 대학으로 하여금 시장주의적 방식을 통한 재정 확충에 목을 매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다. 이런 경우 돈벌이에 도움을 주는 학문은 존중받고, 그렇지 못한 학문은 천대받거나 돈벌이에 도움을 주는 학문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사립대학이 생존을 위해 이미 응용학문 중심 대학이 되고 있는 사정에 비춰 국립대라도 기초학문 중심 대학이 되어야 하지만, 법인화는 지금의 국립대마저 돈벌이에 도움을 주는 응용학문 중심 대학으로 한층 더 급속하게 재편시키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 당국은 법인화가 되더라도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는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 같은 경쟁 위주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공언은 지킬 수 없는 공약에 불과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등록금 인상은 대학을 더 한층 부유층 자제들을 위한 대학으로 만들 것이다. 이로 인해 가난한 집안의 자제들이 고등교육에서 갈수록 더 많이 배제되고, 고등교육 이수가 권력과 부의 획득을 위한 수단이 되는 사회가 얼마나 건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세계 10위권 대학’ 운운하는 것은 미국적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에는 ‘세계 100위권 대학’에 속하는 대학이 한 곳도 없지만, 이들 대학의 학문 발전과 인류 사회에의 기여도는 ‘세계 100위권’에 든 대학들보다 결코 낮지 않다. 사실 그런 기준을 목표로 내세울수록 연구와 교육의 시장화와 학문의 미국화 및 미국 학문에의 종속성 등이 한층 심화된다. 다른 한편 국립대가 법인화되면 정부는 개별 대학의 경영을 평가해 예산을 차등 지원하게 된다. 서울대가 지방 국립대보다 유리한 점은 바로 이 점과 관계된다. 그러나 대학 서열 체계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우리 사회에서 대학에 대한 차등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대학 서열 체계를 더 공고화하고 지방대학을 황폐화하는 기제가 된다.

법인화 찬성론자들은 법인화가 대학 자율성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점을 법인화 추진의 주요 명분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법인화가 된다 할지라도 교과부의 감독과 통제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이 점은 법인화 법안이 서울대 총장이 4년 단위로 교과부 장관과 협의해 대학 운영 성과목표를 설정하고 매 사업연도 개시 전에 그 성과목표를 반영한 연도별 대학 운영 계획을 수립·공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 교과부 장관이 대학 운영 성과목표에 따른 실적을 매년 평가·공표하고 그 결과를 행정 및 재정 지원에 반영한다고 규정하는 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법인화 법안은 ‘이사장 1인을 포함한 7인 이상 15인 이하의 이사로 구성되는 이사회’를 서울대의 운영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회는 심의·의결 기구이긴 하지만 대학 구성원의 여러 부분을 대변하는 선출평의원들이 참여하는 평의원회와는 다른, 재단법인 이사회에 준하는 기구다.

이런 이사회가 서울대의 실질적 주인 노릇을 하면, 서울대 운영은 교과부가 서울대를 감독·통제하는 데서 나아가 이사회가 대학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이중적’ 통제·지배 체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외부 인사를 2분의 1 이상 포함하고, 교과부 차관과 기획재정부 차관이 당연직 이사로 들어오며, 이사 선임이 교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어 이사회는 대학 운영과 대학 구성원을 관리하기 위한 ‘대학 내부의 외부 기관’ 내지 ‘대학 내에서 정부를 대변하는 기구’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는 이사회 지배체제의 도입이 대학 자율성의 제고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철저한 기만임을 가리킨다. 이런 주장은 일제가 조선인을 통치하려 설립한 ‘총독부’를 조선인들 자신의 통치기구라고 우기는 것만큼이나 거짓말이다. 정부안이 규정하는 이사회 체제에서는 오히려 대학 운영에 대한 외부, 특히 교과부와 정부의 발언권이 이전보다 더욱 커지고, 서울대가 이전보다 더 많은 정부의 통제하에 놓이게 된다. 

애초의 서울대안은 이사회에 내부 인사를 더 많이 참여시키는 ‘내부자 지배형’이었다. 하지만 정부안에서 규정하는 이사회는 ‘외부자 지배형’ 이사회다. 그 명분은 외부자 지배형 이사회가 사회적 요구를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회적 요구란 대체 어떤 것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기업과 시장의 논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기업과 시장의 논리에 대학이 침식당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외부자 지배형 이사회의 도입은 기업과 시장 논리로부터의 대학 자율성을 한층 더 질식시키는 기제가 된다.
 
교육 식민화가 길인가
나아가 대학 구성원 전체의 대의기구와는 거리가 먼 이사회가 대학을 지배하는 것은 그것이 내부자 지배형이든 외부자 지배형이든 그 자체로서 대학 민주주의의 후퇴를 강제하게 된다. 게다가 정부안은 직접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는 총장직선제를 폐기하고, 총장을 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이사회가 선임해 교과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총장간선제 도입을 명문화하고 있다. 법인화가 되더라도 총장추천위원회가 아니라 직선을 통해 총장 후보를 이사회에 추천할 수 있는데도 간선제를 도입하는 것은 대학 민주주의를 한층 더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총장직선제는 그간 대학 자율성 확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했다. 정부 지배를 받는 이사회가 선임하는 총장이 대학 자율성을 더 잘 지킨다는 것은 기대 난망이다. 이사회 지배체제에서 총장은 ‘CEO형’ 총장이 될 수밖에 없지만, 간선제 총장은 더 한층 ‘CEO형’ 총장의 성격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법인화 법안은 평의원회를 심의기구로 인정하는 것 외에 대학 운영에 대학 구성원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 장치도 도입하지 않았다. 지금도 대학 민주주의가 내외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법인화는 그나마 남은 대학 민주주의의 씨앗들조차 짓밟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법인화 법안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이사회 제도를 도입한다고 할지라도 지켜야 할 ‘협치’(協治), ‘공치’(共治)의 이념을 실현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인화 법안은 대학 자율성을 지금보다 더 훼손할 뿐 아니라 대학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후퇴시키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정부의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이사회라는 비민주적 기구로의 권한 이임을 대학 자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는,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서울대가 법인화에 앞장서는 것은 대학을 더 한층 부유층 자제를 위한 대학으로 만들고 학문과 교육을 상품화·시장화하며 지방대학을 황폐화하는 대가를 치를지라도 자신을 미국적 기준에서 세계 일류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서울대가 스스로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울대는 오늘날 자기만의 증식을 추구하는 암세포가 신체를 죽임으로써 자신도 결국 죽어야 하는 것같이 서울대 특권의식과 이기주의에 눈멀어 자신을 장기적으로 지성의 무덤으로 만들고 사회를 황폐화하는 길로 나아가려 한다.

한국 사회가 시장경제 체제에 기반을 둔 사회이긴 하지만, 사회적 관계 전체를 시장적 관계로 재편하거나 시장적 관계에 종속시키면 사회의 파괴와 황폐화가 초래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시장적 관계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해서도 시장화·상품화의 파괴적 효과를 상쇄하는 비시장 영역의 창출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데, 바로 그런 비시장적 영역 중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학문과 교육이다. 법인화의 길이 아니라, 대학과 학문의 균형 발전과 학문과 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가장 일차적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을 것이다.

글•김세균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진보평론> 편집위원장, 사회진보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현재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 민주주의와 노동자 민중정치>(1997), <유럽의 제노포비아-세계화시대의 인종갈등>(공저·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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