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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대학, ‘주식회사’ 한국대학들
무늬만 대학, ‘주식회사’ 한국대학들
  • 윤상민
  • 승인 2016.09.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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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If)이라는 가정법은 상시적인 현실적 개연성을 늘 전제로 삼는다. 1994년 여름 이후 가장 뜨거웠던 올 여름, 학생들의 성난 시위로 인해 간신히 무산된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대학가 어느 미용실에는 이대 ‘웰니스’ 전공 학위가 걸려있을 것이고, 석사, 어쩌면 박사 미용사가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을 것이다. 또 어느 피부관리실에서는 아모레퍼시픽 공동산학연구에 참여한 박사 원장이 손님들의 피부에 크림을 바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생업을 위해 미용학원이나 직업훈련학교, 초급대학을 나와 미용실이나 피부관리실 등을 운영하는 이들이 볼 때, 얼마나 난감한 상황일까? 우리도 4년제 대학을 나와 석·박사학위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러다가는, 대부분 가정들이 소유한 승용차의 수리나 반려동물들의 미용도 ‘박사’학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맡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특정학과나 직업, 학위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교육부의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이 이처럼 전문대학의 영역을 4년제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학부 개설에 이어 머지않아 석·박사 과정이 설치될 것이 자명하다. 
 
이미 국내의 대다수 대학들이 수익성 좋은 학위 장사에 눈을 돌리고 있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묵묵히 연구실 불을 밝히며 연구에 매진하는 교수들을 만나는 것은, 머나먼 추억 속 이야기가 돼버렸다. 교수들은 연구능력이나 강의 실력보다는 이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유치 등 ‘사업능력’, 또는 정부나 기업들로부터의 연구용역 수주 능력 등을 통해 인정받는다. 재정난을 이유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기초학문의 학과들이 통폐합되고, 이 과정에서 교·강사들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암담한 현실이 대학마다 이어지고 있다. 차라리, 어설픈 대학보다는 취업사관학교나 공무원사관학교를 표방한 몇몇 대학들의 솔직함을 높이 사고 싶다! 
 
‘이화여대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이하 평단사업)’ 신청에서 취소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자본이 어떻게 대학을 잠식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총체적이고도 세밀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대학에서 총장의 능력은 정부재정지원사업을 얼마나 따내느냐와 직결된다. 교육부의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대학들은 기업으로 눈을 돌리는데, 이런 대학들에서는 학문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두산그룹이 재단이 된 중앙대의 경우, 인문학 관련학과가 대거 통폐합되고 경영학과 학생수만 늘었다. 삼성그룹이 재단인 성균관대에서는 기업관련 학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숙명여대는 한 걸음 더 나갔다. 프랑스 요리전문학교 ‘르꼬르동 블루’를 아예 학위과정으로 가져왔다. 2년제 전문학사학위에 교양 과정을 넣어 ‘르꼬르동블루 외식경영’ 전공을 만든 것이다. 기초학문연구라는 본령(本領)을 잊어버린 대학의 모습을 목도하며 참담함을 느낄 새도 없이, 대학들은 앞다퉈 기업에 러브콜을 보낸다. 그렇게 대학에서 대기업 연수원을 방불케 하는 삼성관, 포스코관이 생겨나고, 호텔이 경영하는 식당, 마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가히 ‘한국 대학의 주식회사화’라고 부를 만하다.
 
이대 사태로 돌아가 보자. 문제가 되고 있는 평단사업은 ‘선취업 후진학’제도를 발전시켜, 원하는 시기에 언제든지 학업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 하에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대학재정지원사업이다. 주관부처는 교육부(장관 이준식)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원장 기영화)이다. 교육부는 2015년 5월 ‘평생교육단과대학’ 개편방안을 발표했고, 12월 기본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예산은 300억 원,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대학을 선정했다. 서면 및 발표 평가를 통해 지난 6월 6개 대학(대구대, 명지대, 부경대, 서울과기대, 인하대, 제주대)이 우선 선정됐다. 이후 동국대, 이화여대, 창원대, 한밭대가 추가 선정돼 10개 대학이 각각 연 30억 원의 국고를 지원받는다. 선정대학은 평생학습자를 전담하는 단과대학을 신설해야 한다.
 
이화여대의 평단사업이 공론화된 가장 큰 이유는, 후발 선정된 과정이 그야말로 졸속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두 달 만에 공고-심사- 선정이 모두 이뤄졌다. 신설학과의 정체성도 모호하다. 이대는 미디어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뉴미디어산업 전공’과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산업 전공’ 등을 세부 전공으로 한 ‘미래라이프 대학’을 신설할 예정이었다. 인하대의 경우, 메카트로닉스학과, IT융합학과, 헬스디자인학과, 서비스산업경영학과, 금융세무재테크학과 등 5개 학과가, 동국대에는 치안과학융합학과, 케어복지학과, IT융합공학과(계약학과) 등 3개 학과가 신설된다. 
 
이미 대학 내에 있는 학과와 차별성이 모호하다는 지적과 더불어 전문대 혹은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소화해야하는 커리큘럼이란 목소리도 크다. 인원감축을 당한 대학이 학위장사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학생수를 충원한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내 대학들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목메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2023년까지 대입정원 16만 명을 줄여야한다는 논리에 따른 정원 감축과 몇 년째 등록금 동결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적립금 넘치는데도 끝없는 욕심

 
▲ 서울의 한 사립대에 세워진 삼성관
하지만 이대의 경우, 교내적립금 보유액이 8천억 원에 달한다. 국내 대학에서도 재정자립도가 튼튼하기로 상위권에 속하는 대학이다. 평단사업으로 이대가 받을 수 있는 재정은 연 30억에 불과하다. ‘부자대학’ 이대가, 왜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의 재정지원사업에 안달하는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이대 관계자는 ‘ECC’ 건축으로 인해 이미 대학재정이 많이 소요됐고, 최근 마곡부지 병원 건립비용이 6천억, 아현동 기숙사 신축비용이 2천억 가량이 소요되는 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정원 감축까지 되니, 지원금액이 적더라도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대 사태에 졸업생을 비롯해 교수들까지 가세한데는 이대가 당초 표방한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의 방향성이 평단사업을 통해 정체성의 혼돈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사립대교수회연합회 이사장 박순준 동의대 교수(사학과)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대는 이공계열 인원을 늘리는 프라임 사업과, 인문학을 강화하는 코어 사업을 동시에 따냈다. 교육부가 자기모순적 정책을 펼친 것에 대한 비판도 없이, 이대는 평단사업까지 참여함으로써 정부재정지원사업 3관왕을 석권했다. 재정은 확보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이대는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인지, 교육중심대학인지, 그도 아니면 전문기술교육대학인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IMF 관리체제에서 출발한 대학구조개혁은, 대학의 통폐합 및 인원감축을 통한 대학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춰왔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정부의 대학 국고지원사업은 문민정부 5·31교육개혁안(1)으로 획기적으로 전환됐으며, 그 기조는 2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대학정원 감축 압박은 역대 정부 중 최강 수준에 이르렀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과)는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한 대학 체질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 대학구조개혁 평가사업이 교육계의 최대쟁점이 되는 이유는, 사업의 추진 목적과 방식,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과연 고등교육체제가 올바른 방향성을 가진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20년 넘게 재정을 무기로 대학들을 옥죄어온 교육부.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교육부를 해체하자”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쳤다. 매일 자살하는 중고생들의 문제를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는 이유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기득권에 안주한 교육부 관료들, 즉 ‘교피아’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있었다. 
 
<교육부의 대국민 사기극>(2006, 책갈피 刊)의 저자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과)는 “특정대 출신이 교육부 관료직을 독점함으로써 교피아가 탄생했다. 박정희 정권부터 학생운동 때문에 교육부장관이 자주 교체됐다. 관료들이 교육부장관을 장악하는 현실 속에서 교육정책기조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수 없다. 관료집단이 고등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재정지원사업으로 대학의 방향성까지 흔드는 것은 정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이 당선자의 입장 표명에 교계는 물론, 학생들까지 반으로 갈라져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이참에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적인 교육부를 해체하자는 입장과, 아무리 그렇다고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마저 사라지면 후폭풍은 누가 감당하냐는 ‘교육부 존치론’적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오랜 단골의제다. 교육정책의 독립성, 중립성, 자주성을 보장하는 국가교육위원회라는 합의제 행정기관을 설립해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교육부는 국가교육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정도로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주장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와 더불어 정원 조정을 위한 평가와 명령권을 교육부 장관에게 독점적으로 귀속시켜 교육부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준 것, 폐지되는 대학 잔여재산을 학교법인 설립자(이사장 등) 또는 특수관계자가 챙겨가는 것도 대학구조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지적받는 부분이다. 대학구조개혁에 앞서 국립대학법, 사립대학법 제정도 시급하다. 정원감축비중이 높은 지방대와 최우수등급의 수도권대 간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다시 이대 사태다. 학생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ECC 건축과정, 프라임 사업, 코어 사업에서도 학생 의견은 없었다. 목소리를 낼 유일한 제도적 방법은 평의원회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소수였던 그들의 의견은 무시됐다. 학생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본관을 점거하고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했다. 돌아온 것은 1,600명의 경찰투입이었다. 결국 이대 사태는 공론화됐고, 최경희 총장의 평단사업 취소 발언 이후에도 학생들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더 이상 이런 총장단을 좌시할 수 없다는 학생들의 마음이 모였다. 지난 8월 26일 이대 학위수여식에서 최 총장의 축사 도중에 학생들은 “총장 퇴진! 해방 이화!”를 외쳤다. 교수들도 나섰다. 이대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혜숙)에 따르면 총장 사퇴에 찬성 서명을 한 교수가 191명(8월 27일 기준)에 달한다. “대학의 주인은 과연 학생이 맞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한국대학학회장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문학과)는 학생의 학교운영참여와 관련해 독재적으로 통치할 수 없는 대학의 기본적 성격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성을 가진 교수진,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대학본부, 학교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총장단, 대학재정의 60%이상을 부담하는 학생의 대화구조가 잘 이뤄져야 거버넌스가 바로 선다. 이대에서는 이게 무너졌기 때문에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점거할 수밖에 없었다.” 
 
재정지원사업을 통한 교육부의 20년 넘은 대학 주식회사화가 이대 사태를 통해 공론화됐다. 독단적 대학 운영으로 예산을 낭비하면서도 돈 되는 사업만 좇는 사립대학들, 국립대학법조차 없는 국공립대, 기초학문 연구자는 제1의 평가지표인 취업률에 기댄 비정규직 교·강사로 대체되는 현실, 밥그릇 지키느라 후배 강사와 제자를 외면하며 행정업무에 연구할 시간과 정력을 쏟는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 그리고 국가장학금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세계 최고 수준인 등록금, 학교재정의 60% 이상을 부담하고도 학교운영 참여는커녕 교양과목마저 축소됨으로써 인문학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학생들, 그리고 교육위원회의 부재까지 대한민국의 건전한 고등교육체제 수립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이대 사태로 촉발된 학생들의 분노가 무늬뿐인 대학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도화선이 될 수 있을까.  


글·윤상민 cinemonde@ilemonde.com
프랑스 프로방스대에서 영화이론으로 석사를 했다. SBS에서 불어통역을 했고 교수신문에서 학술담당기자로 글을 썼다. 현재 본지에서 학술 및 영화 관련 글을 쓰고 있다. 공저로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 40>(휴머니스트, 2016)이 있다.

(1) 문민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는 ‘5·31교육개혁안’을 통해 그동안 평등의 원리에 기초해 비교적 균등하게 배분했던 재정을 대학·계열·학부 간 자유경쟁을 통해 선별적·차등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자유로운 연구와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 시장논리 그리고 정부의 간섭이 ‘대학재정지원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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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윤상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