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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통합은 흡수가 아니라 공존이다
진정한 통합은 흡수가 아니라 공존이다
  • 이연숙|회사원
  • 승인 2010.01.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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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12월호 ‘다문화 특집’을 읽고

몇 년 전 거리에 나붙은 현수막을 통해 ‘알선업체를 통한 배우자 수입’으로 보이는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매매혼이라는 부자유스러운 혼인을 용감하게 진행하는 양쪽 당사자의 절박함에 대한 연민과 함께 떠오른 생각이 이들이 생산해내는 2세가 자라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신분계층이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자발적 이민으로 다민족 국가가 형성돼온 외국의 사례와는 달리, 현재 대한민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은 주로 젊은 여성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지위가 낮은 남성과 결혼해 유입되는 획일화된 패턴을 보인다. 이렇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타 문화권의 여성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불리한 출발점에서 혼혈 2세를 낳고 기르게 된다. 결혼을 추진한 당사자들은 자의적 선택에 따라 합법적인 결혼을 완성함으로써 각자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한국 사회의 배타성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런 결혼을 통해 파생된 2세는 선택의 여지 없이 한민족이라는 단일민족의 신화와 함께 배타성이 깊게 뿌리내린 이 땅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으며 그들의 부모보다 장기간 생존해야 한다. 이것이 다문화주의 논의에서 단기간 취업 등을 통해 입국·체류하는 외국인보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결혼을 통해 국적을 취득한 계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2008년을 기준으로 12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증가할 결혼 이민자 사이에서 태어난 2세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정체성을 찾아갈지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고민한 경험이 없다. 가까운 과거인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베트남전을 겪으며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혼혈 2세들이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며 적응하지 못하고 배제당한 부정적 사례를 단편적으로 기억할 뿐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한민족의 부계 혈통을 이어받고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 태어나 수적으로도 미래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뚜렷한 인구 비중을 차지할 다문화 가정의 2세가 성장하며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불평등과 불합리성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도 가까운 미래에 이민으로 이루어진 서구 국가들에서 경험한 다양한 사회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의 배타성에 대한 각성과 시각의 수정을 통해 무의식 중에 각인된 단일민족의 신화를 폐기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토양을 준비해, 차이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시각을 일반화함으로써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난 2세가 한국 사회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인 노력이 시급하다.

이 땅에 언제부터 민족의 유입이나 유출이 끊기고 단일민족의 서식지로 신화화돼왔는지 그 시기와 기간을 유추해보면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비전문적인 역사적 지식을 근거로 추정해보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서기 700년 무렵을 시점으로, 그 후 현재 2000년대 초까지 한반도 거주민의 민족적 구성이 단기간 변화한 사건은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 전 방영된 TV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국가의 대업으로 제시했던 ‘삼한일통’이 성공한 후, 한반도의 중심부에 타 민족이 대규모로 유입되는 뚜렷한 사건 없이 지배 왕조의 변화에 따라 고려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변화돼왔으니, 한민족이 한정된 집단 내에서 구성원을 재생산하며 지내온 세월이 1300년 이상이라 보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닐 듯싶다.) 이렇게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하게 형성되어 굳어져온 한민족의 공동체 의식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온 이들이 의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타 민족의 정착과 혼입을 거부하는 강력한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한민족은 낯선 것을 받아들여 한국화하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한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낯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최근 한민족이 기피하는 특정 직종의 단순노동력과 모자라는 배우자를 수급하기 위해 언어가 다른 타 민족을 자발적으로 이 땅에 들여놓으면서 갑자기 접하게 된 타 민족의 낯선 언어, 사고방식, 생활양식의 차이를 다문화라고 서둘러 규정하고 다문화주의라는 테두리로 가두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도 남의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민족성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민족적 배타성이 서둘러 낯선 것을 한국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법의 목적에서 ‘다문화 가족 구성원이 안정적인 가족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들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 통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그들의 한국화를 도와 가정을 안정화함으로써, 즉 낯선 것을 낯익은 것으로 바꾸는 과정을 도와 신속히 해결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지극히 단순화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이주한 배우자가 한국화되어 얌전한 국민이 될 수 있게 돕는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예산을 배분할 근거를 만들어, 문제가 터진 뒤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단기적이고 방어적인 시도로 보인다. 이마저 이후 운영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최소한 표면적인 법률 제정의 취지마저 무색해지는 과정을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문화에 대한 논의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성화돼 무의식적으로 단일의식을 강요하는 답답한 한국 사회에 열린 시각을 가지려는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제 대한민국에 단일민족의 신화가 깨지고 다문화가 정착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에 정착한 모든 이들의 선전을 바라며.

 




<부산·경남 읽기 모임> 바닷가에 모여 세계를 읽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독자에게 보낸 전자우편을 받고 부산·경남 지역에서 각자 색다른 동기와 직업을 가진 몇몇 분들이 용감하게 낯선 모임에 뛰어들었습니다. 타고난 방랑벽에 따라 관심이 가는 분야를 찾아다니다 부산·경남 모임의 구성원이 된 제가 모임의 다른 분들에 대해 매우 주관적인 묘사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냥 프랑스가 좋아서 <르 디플로>를 정기구독하는데 혼자서는 안 읽게 되니까 모임에서 함께 읽으려고, 독서 모임에 중독되어서, 또는 좀더 나은 세계를 위해 철학적 고민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서로 다른 이유만큼이나 다른 시각과 견해를 가진 분들이 모임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부산·경남 모임은 고정된 장소 없이 해운대나 부산대 캠퍼스 근처의 장소를 정해 월 2회 둘째·넷째 주 목요일 저녁에 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시간을 잊고 이어지는, 주제가 있는 토론의 가볍지 않은 즐거움과 솔직한 대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은 저희 모임 게시판(http://monde.zetyx.net/)을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저희 모임은 모든 분들께 열려 있습니다.

미래와 역사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표현된 말로 만들어지고 변화해가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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