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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공모
적과의 공모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6.10.3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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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남기고 간 경제적 극약처방들에 프랑스가 지지를 보내는 동안, 오히려 영국은 등을 돌리고 만 것이다. 지난 10월 5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보수당 당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그녀는 연설을 통해 부유층의 특권으로 부패한 사회를 규탄했고, 노동계층을 변호했으며, 국가의 역할은 “개인, 공동체, 시장이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근로자의 권리”를 수차례 언급했고, “문명사회에 거주하기 위해 우리가 내야 할 비용”인 세금에 대해 찬사를 보냈으며, 교육과 보건 등의 공공서비스를 칭찬할 뿐 아니라, 주거 및 교통 분야에 대한 공공지출의 확대를 예고했다. 비록 아직은 연설일 뿐이었으나, 이토록 갑작스러운 정책적 방향전환에 ‘철의 여인’ 대처 전 총리를 따르던 이들은 강한 반감을 보였다. 그 중 일부는 이를 가르켜 “반자유주의적 반혁명”이라고 규탄할 정도였다.(1)
 
 다행히도, 대처 전 총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바다 건너의 이웃나라 프랑스를 정치적 피난처로 얻게 됐다. 프랑스 우파가 온갖 신자유주의적 수단들을 공동의 정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우파는 내년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으로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벌써부터 자신들의 승리를 점치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보수진영에선 정년퇴직연령을 2~3년 늦추고, 급여인상 없이 주당 근로시간을 4시간 연장하며, 부유세는 삭감하는 한편 저소득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가가치세는 인상하고, 실업급여를 인하하며, 공무원 정원을 30~60만 명 가량 축소시킨다고 공언한다. 심지어 여론조사가 정치토론의 역할을 하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조사 결과 앞서 열거한 내용 중 세 가지 사항에 대해 수많은 반대표가 쏟아졌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2)
 
 그러나 가장 놀랄만한 소식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영국 보수파조차 단념한 대처리즘의 숙청작업에 맞서 단결하기는커녕, 일부 프랑스 좌파 유권자들은 다수의 언론매체를 통해 이번 달 열리는 공화당 경선에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모습을 보여줬다. 공화당 경선에서 당선될 우파 후보자가 이후 정책을 시행하게 될 때 괜히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2년에도 신자유주의 반대파가 니콜라 사르코지의 연임을 막기 위해 경선에서부터 프랑수아 올랑드를 지지하는 ‘전략적 투표’를 선택한 바 있다. 그 결과가 어땠는가. 좌파 정당의 올랑드 대통령은 자신이 밀어낸 전임 우파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오히려 확립했으며,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이 프랑스 제1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공화당 경선에서 또 한 번 니콜라 사르코지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사르코지 정부 당시의 장관이자 마침 30년 전 프랑스 우파를 자유주의로 전환시킨 장본인인 알랭 쥐페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3) 이제 (프랑스 좌파 유권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힘을 비축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 돼버리고 만 것일까.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어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ㅇ
 
 
(1) Nicolas Baverez, ‘Le virage antilibéral de Theresa May’(테리사 메이의 반자유주의 선회), <Le Figaro>, 2016.10.17
(2) 주 35시간 노동제 철폐 반대 56%, 정년퇴직연령 연장 반대 64%, 부유세 삭감 반대 67% (IFOP-Atlantico조사, 2016.5.23)
(3) ‘프랑스 우파는 자유주의화 됐다 Et la droite française devint libérale’, François Deno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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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알리미
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