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앙드레 고르(1923~2007)는 사상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탐내지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깨닫겠다는 욕심을 가지지도 않았다.그는 자신을 ‘수공업자’라는 소박한 의미의 ‘브리콜뢰르(Bricoleur)’나,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고르는 1958년에 출간된 냉정한 자기고백서 <배신자>(1)에서 자신을 ‘가증스러운 지식인’이라고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되도록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고, 주변에는 단어와 개념으로 된 장막을 쳐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세상과의 싸움은 잠잠해졌으나, 그는 일찍이 한 발 물러섰다.많은 필명을 사용했고 더 유명한 사상가들의 그늘에 머물렀으며, 말보다는 글을 선호했다.(2) 그리고 시끌벅적한 파리를 미련 없이 떠나, 소박하고 조용한 오브(Aube)지방의 마을로 갔다.하지만 빌리 지아니나치가 고르의 전기(3)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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