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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야 할 것과 사라져선 안 될 것들
사라져야 할 것과 사라져선 안 될 것들
  • 성일권
  • 승인 2010.02.0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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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르 디플로' 읽기]

 <르 디플로> 2월호의 1면을 막 넘기신 독자분들은 몹시도 당황하셨을 줄 압니다. ‘주식시장을 폐장하라니!’ 특히 주식투자로 ‘재미’를 보시는 분들께서는 프레데리크 로르동의 주장에 코웃음을 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 밝은 독자분이라면, 로르동은 2008년 10월호 <르 디플로> 1면에 ‘월가가 사회주의로 회귀하다’라는 예리한 기사를 게재해 신자유주의의 지상천국인 미 금융시장이 공적자금에 손을 벌린 행태를 비판한 필자라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뉴욕 월가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금융위기의 여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네요. 분명한 것은 주식시장이 더 이상 기업에 자금을 조달해주는 곳이 아니며, 더욱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벤처기업의 구원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로지 주식시장에서 한몫 잡겠다는 탐욕만 만연해 있습니다.

 경제 엘리트들이 주식시장에서 짧은 시간에 벌어들이는 큰돈은 창조적 경영에서 비롯된 만큼 정당한 것이라는 환상이 퍼져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선 이런 환상이 주류 신문에 의해 가공되고 확산되고 있지요. 예를 들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 신문사는 2008년 11월 25일자 기사에서 탈법적인, 그러나 성공적인 주식 상속의 ‘전범’을 보인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을 ‘창조적 경영인 1위’로 소개했습니다. 그런 까닭일까요? 이 신문은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 무려 22건의 삼성전자 광고를 실었다고 합니다(<미디어 오늘> 2월 3일자). 대개 여름철이면 광고거리가 없어 감면하는 게 인쇄매체의 현실인데 말입니다.
 비록 프랑스 경제학자의 난해한 글이지만, 금전적 성공의 기준을 뒤바꾸어 노동의 가치를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우리 증시가 딱 그 모습인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르 디플로>가 지난 1998년 자본 세계화의 폐해를 막기 위해 투기자본에 대한 과세, 즉 토빈세를 주창하고, ‘투기자본에 대한 국제과세연대’(ATTAC)의 창립을 주도했듯이 이번에도 증시제도의 횡포를 제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물론 주식시장의 파행 말고도, <르 디플로> 지면에는 지구촌에서 사라져야 할 것들이 등장합니다. 유엔의 이름 아래 이라크와 아프간 전장에서 청부 살인업자들을 전쟁터에 투입하는 강대국의 작태, 국가 정체성의 미명 아래 ‘다름’을 배척하는 코트디부아르와 우즈베키스탄의 반문명적 행태, 매판자본과 권력이 뒤틀어놓은 아프리카의 유사민주주의, 권력의 폭력에 짓눌린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 온두라스 민초들의 고달픈 삶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르 디플로>는 자본과 권력의 폭력과 만행을 증오하면서도, 사라져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소 이례적으로 1면에 현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인 자크 루보가 강조한 시의 소중함을 게재한 것을 비롯해, 제9의 예술인 만화와 문화유산, 인쇄매체와 인문학의 귀중한 가치들을 담았습니다. 또 한 가지, 이번호에서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보수화하는 마당에 진정한 진보와 좌파의 가치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찾고자 했습니다. 프랑스 좌파 싱크탱크의 가능성과 한계, 미국 좌파의 어제와 현재, 그리고 한국 진보 좌파의 현주소와 과제를 진단한 글은 독자분들에게 또 다른 성찰과 논쟁의 매개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글· 성일권 
한국판  발행인 sungilkwon@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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