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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재 디자인한 르 코르뷔지에의 과대망상
파리를 재 디자인한 르 코르뷔지에의 과대망상
  • 올리비에 바랑시 | 건축가
  • 승인 2017.02.0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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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중심가의 리모델링을 위한 프로젝트 ‘플랑 브와쟁’의 모형>, 1922~1925

2016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은 현대건축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곧 출간될 한 저서에 의하면, 과대 망상가이며 자생적 파시스트, 때로는 표절자이기도 한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아파트 크기를 줄이고 도시 중심지를 밀어버리기를 꿈꿨던 외골수 도시 계획가였다. 결국 그의 도시 계획안은 파리에 적용되지 못했다. 

 
‘부아쟁 계획(plan Voisin)’은 1925년에 파리장식예술박람회 <에스프리 누보>관에서 소개됐다. 이 계획은 투시도 형태로 60㎡ 크기의 벽면에 전시됐다. 당시 시트로엥과 푸조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에 대한 지원을 정중히 거절했지만, 고급 자동차 및 항공기 제작자였던 가브리엘 부아쟁은 고속도로가 관통하는 도시 설계도에 관심을 갖고 재정지원을 했다. 이에 르 코르뷔지에는 그가 3년에 걸쳐 구상한 ‘300만 거주자를 위한 도시 계획’을 파리에 적용시키는 설계도를 제작해, 80㎡의 벽면에 전시했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파리 부아쟁 계획은 새로운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창안했다. 바로 업무 구역과 거주 구역이다. 업무 구역은 파리에서 특히 노후화되고 비위생적인 지역인 라레퓌블리크 광장부터 루브르 거리까지, 그리고 파리 레스트역부터 리볼리 거리까지의 240헥타르에 달하는 부지 위에 세워진다. 거주 구역은 피라미드거리에서 샹제리제 원형 교차로까지, 그리고 생라자르 역에서 리볼리 거리까지가 해당된다. 오늘날 사무실로 즐비한 중산층 주거지로 둘러싸인 구역이 상당 부분 파괴돼야 한다.”(1)
 
르 코르뷔지에는 기념비적인 공간배치를 생각했는데, 그것은 공항에서 바로 타는 기차역의 구상이었다. 이 계획안에서 중심축은 동서방향으로 이어진다. “통행량이 많은 폭 120m의 주요 간선도로이며, 자동차 전용도로를 갖추고 있고 교차로가 없는 일방통행을 위해 고가도로로 설치된다.” 예상 밖으로, “부아쟁 계획에 포함된 예전 구역의 지나친 인구 고밀도는 줄어들지 않고 4배로 늘었다.” 인구밀도는 1헥타르 당 3,500명에 달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마레’지구와 ‘아르쉬브’거리, ‘탕플’거리 등이 철거될 수도 있지만, 오래된 교회들은 보존된다”고 말했다. (“1943년에 나치당이 마르세유의 오래된 파니에 구역을 초토화시켰을 당시, 빈민가는 무참히 파괴됐지만 역사적 건축물은 보전됐다.”)
 
그는 기념비적인 건축물(2)을 제외하고 폐허가 된 이 거대한 부지 위에 높이가 200m(3)에 달하는 십자(+)모양의 사무용 고층건물을 배치했다. 이 건물들은 형식주의 및 대칭적 구조로 세바스토폴 대로의 양쪽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그는 녹지 공간의 중심에 높이가 대략 50m인 톱니모양의 주거단지를 세웠는데, 이 지역의 인구밀도는 헥타르 당 1,000명에 달했다. 르 코르뷔지에식 도시는 동심원적 구조가 아니라 선형구조이다. 공동생활의 완전한 관료화를 찬양하는 이 계획은 르 코르뷔지에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부아쟁 계획은 그의 차후 도시계획 연구의 기반이 됐다. 르 코르뷔지에는 1931년 1월부터 1934년 12월까지 월간잡지 기사를 통해, 이후에는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 기계문명시설을 위한 도시계획론의 기초>라는 책을 통해 그의 계획안을 발전시켰다. 345장으로 된 이 책은 르 코르뷔지에 작품의 핵심으로, ‘아르쉬텍튀르 도주르뒤’이라는 출판사에서 저자 부담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 책을 ‘프랑스 당국’에 바친다, 파리, 1933년 5월.” 르 코르뷔지에는 이 책을 통해 계획경제주의 및 전체주의 사상을 펼칠 수 있었고, 미래의 도시를 형식화했다.(4) ‘행동의 초대’라는 제목의 1장에서, 그는 우선 “세상은 병들었으나, 반면에 러시아, 이탈리아는 새로운 체제를 정립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체제는 전체주의 체제이다. 그런데 프랑스에 대해서는 “붕괴가 임박했다”고 말했다. <1934년 2월 6일 파리(5): 위생의 부활>이라는 제목이 붙은 한 장의 바리케이드 사진을 보고, 르 코르뷔지에는 (파시즘) 혁명의 첫 단계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통제경제(6)와 그로 인한 필연적 귀결, 위에서 강요한 ‘규율’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 ‘프롤레타리아의 소멸’과 ‘공공의 안녕을 위해 토지를 개혁’해 ‘계급 없는 도시’를 창조하길 바랐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소비에트 연방의 자유로운 땅은 자유로운 계획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지만, 사유재산의 폐지는 “기계문명 구조의 토대와 개인의 자유 보장”이 함께 병존해야 한다. 어떻게? “현대인의 집(그리고 도시), 즉  규율을 훌륭하게 준수하는 장치는 (오늘날 파괴된) 개인의 자유를 가져와 개개인에게 되돌아갈 것이다.”  
 
한편, 여가활동은 ‘24시간 주기’, 즉 하루 일과에 포함돼야 한다. 기계화로 인해 노동시간이 단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운동을 좋아해 운동을 하나의 ‘가치’라고 주장했다. “운동은 흥미를 끄는 다양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우선 경쟁, 시합, 경기이다. 또한 운동은 체력 및 결단력, 유연성, 순발력을 키워주며, 개인이나 팀으로도 할 수 있다. 자유롭게 허가된 종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운동은 일상이어야 하며, 집 주변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코르뷔지에의 학설은 논증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슬로건을 밀어붙이는 쪽에 가깝다. “프랑스 당국이여! 프로그램을 짜고, 검토하고, 실행하라. 질서의 축복을 널리 퍼뜨려라.” 마지막으로, “질서에 따라, 즐거운 노동과 조화로운 운동을 회복시켜라. 행복이 올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반향을 일으킨 <계획안: 독재자>장에서 언급한다. “‘빛나는 도시’ 속 계획안은 현대식 설비개발에 적용한 혁신기술을 융합했다. 철근 콘크리트 사용뿐만 아니라 규격화된 조립식 건물 자재의 ‘건식’공법, 대기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들의 봉기를 지휘해 스페인 내전을 일으켰던) 호세 산후르호 장군의 사진 옆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은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여름, 숨 막히는 공기는 판단을 흐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을 힘들게 하며, 하원과 의회를 녹초로 만든다. 여기저기 손해다.” 이런 현대기술은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킨 스페인에서의) 고속도로의 건설을 쉽게 하고,(7) “층수 제한을 피해 220m 높이의 십자 모양 마천루 건설과 빌딩의 옥상에서 에어택시의 이착륙을 가능하게 한다”는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계속한다. “언제나 톱니모양인 빌딩은 ‘세포(주거 단위)’로 구성되며, 녹지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빌딩의 파사드(건물의 정면)는 자연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 주거단지의 “높이는 50미터(18층 높이)가 적당하다.”
그러나 이렇게 끝없이 펼쳐지는 ‘빛나는 도시’는 그 자체로 소름끼친다. 후에 건축가 앙리 르페브르는 이를 두고 “죽은 공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8) 한편, ‘빛나는 도시’는 수량(‘도시’ 인구밀도와 건설규모, 집의 면적)으로 표시되고, 르 코르뷔지에의 조수들이 제작한 도면을 통해 자세히 표현됐다. 그 덕분에 도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계획안이 터무니없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파리 플랑 브와쟁, V2원형 섹터 C15>, 2007 - 알랭 뷔블렉스
르 코르뷔지에는 거주민을 2,700명(약 540가구)으로 예상한 주거단지에 주차장을 설계했다. 그러면 540여개의 주차 공간을 마련했어야 한다. 하지만 콘크리트 면적이 녹지면적을 과도하게 침범하는 것을 예방하려면, 주차공간이 6분의 1로 줄어든다. 또한 주민들은 ‘보안창살로 둘러싸인’ 녹지 공간을 가로질러 통행하는데, 보안창살은 도면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르 코르뷔지에는 “400×400m는 보행로인데, 원하는 만큼 넓고, 안락하며, 빛으로 둘러싸인 지하통로와 연결된다. 이 보행로는 바로 공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속도로를 건너가기 위한 지하도를 30m로 기술했으나, 그의 단면도에는 지하도가 2배 이상 길다. 마지막으로, 가스통 바르데 덕분에 “르 코르뷔지에가 (톱니모양 빌딩의) 그늘을 6월 21일 정오에 그렸고, 이 눈속임 때문에 많은 이들이 빌딩 그늘로 인해 50m의 벽 아래에 넓게 퍼지게 될 낮은 기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9)”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드문드문,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고속도로의 우아한 자태: 속도감 있지만 (콘크리트와 맞댄 인도고무나무 사이로) 고요하게 달리는 자동차가 마음을 끈다.” 고속 운전을 좋아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한 평생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피아트(Fiat)공장 지붕 위의 트랙에서 운전한 기억을 회상했다. 그는 14마력의 부아쟁 세단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일 드 프랑스에 있는 그의 작품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종종 내보였다. 광고지에 이 차를 실어, <에스프리 누보>와 계획안을 지원하는 부아쟁에 보답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빛나는 도시’ 건물의 내부구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건물의 내부설비도 건축학적으로 설계가 가능하다. 면적 문제와 세대 수, 거주자의 특성(생활방식), 차단, 방위, (도시계획)지형조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 건축가는 표준 통계에 맞춰 생물학적인 분류를 규격화할 수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이미 우려스럽다. 그는 거주민 1인당 필요한 최소한의 면적을 규격화했다. 그러나 아파트는 모두 방이 하나로 크기가 동일하며, 수용인원은 2명 혹은 4명이다. 심지어 이 단칸 아파트의 부엌 크기는 아이가 4명인 가족이나 7명인 가족이나 비슷했다. 
 
‘빛나는 도시’ 계획안에서의 파사드는 장식 없이 전면유리로 밀폐돼 있다. 파사드는 환경을 조절해 ‘정확한 호흡’을 하도록 설계됐다. (그는 설계의 실패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파리 구세군회관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혹한을 겪는 소련의 소비자협동조합 본부인 센트로소유즈 건물 설계에서도 동일한 파사드를 고집했다.) 이 파사드에 발코니가 없는 이유는 아마도 미관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집은 세워져 있는 기하학적 각기둥”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학설을 다소 구체적인 여러 계획안에 적용했다. 스위스 제네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알제리 알제, 러시아 모스크바, 벨기에 알베르,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웨덴 스톡홀름, 느무르(현 알제리 가자우에트), 피아체(사르트의 마을로 이곳에 살고 있는 한 광신도는 르 코르뷔지에를 위한 ‘빛나는 농장’을 고안하기도 했다) 등이다. 그러나 그는 파리 계획안의 경우, 파리가 완전히 탈바꿈된 것처럼 묘사한다. “파리가 스스로 ‘빛나는 도시’로 변모한다. 파리는 본질적인 생물학적 기능을 되찾는다. 파리는 살아남는다.”
 
1951년에 로베르 말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이 일평생 1922년에 만든 원칙에 충실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3백만 거주자를 위한 현대 도시’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하고 있다. 완전히 조직적이고 근본적인 연구로서, 연구의 기초는 오늘날까지도 현대도시계획과 모든 도시에 적용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의 역사적 중심지를 철거하기를 바랐지만, 파리를 싫어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17년 간 야곱거리에서 살았으며, 그는 롤랑 가로스 경기장과 파르크 데 프랭스 사이에 있는 난제세르 에 코리 거리에 직접 지은 건물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친한 친구인 프랑수아 피에르푀와 피에르 윈터에게 이곳에서 자신과 함께 살자고 설득했는데, ‘입지가 가장 좋은’ 자리(위쪽 두 층)는 자기 자신을 위해 마련해놓았다. 운명의 장난일까, 레만 호숫가에 살고 있는 그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르 코르뷔지에는 열 차단율이 낮은 콘크리트 아래 숨 막히는 여름 열기와 평평한 지붕으로 인한 불쾌감(오늘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을 겪어야 했다. 
 
마침내,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 계획안: 1956-1922년>을 출간했다. 연대를 역순으로 구성한 이 책은 무산돼버린 다수의 파리 도시 계획안을 목록에 담았다. 그는 여느 때처럼 책의 페이지 레이아웃과 낱장 표지를 직접 제작했으며, 제목은 그가 위생에 관한 담론에서 언급했던 ‘푸른 도시’를 참고해 단색으로 된 녹색 배경에 흰색 글자로 제목을 넣어 인쇄했다. 화가로서의 세계관을 담아 구상한 푸른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공원에서 운동을 한다. 그는 “푸른 도시는 우리가 자동차를 점검(주유 및 윤활유 넣기, 장치 검사, 점검, 보수)하는 차고가 된다(10)”고 말했다.  
 
 
글·올리비에 바랑시 
이 글은 2017년 1월 16일 발간된 <현대식 공간의 재앙.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및 영향>(아곤느 출판사, 마르세유)에서 발췌한 것이다.
 
번역·김세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르 코르뷔지에, <도시계획>, <에스프리 누보(L'Esprit nouveau)>의 총서, 크레스 출판사, 파리, 1924년.
(2) 거대한 폐허 속에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건축물이 두 채가 남아있었는데, 바로 포르트 생 데니스와 생 마르탱과 루이 14세와 콜베르의 오마쥬였다. 
(3) 이해를 돕자면, 몽파르나스 타워가 56층, 높이 210m이다. 
(4) 그는 1936년에 “<빛나는 도시>가 노벨위원회의 주의를 끌 수 있었다”고 저술했다. 이하 생략.  
(5) 당시 극우파의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되면서 파시스트 조직이 권력에 오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으나, 이 사건으로 좌파 연합이 유리해졌다.  
(6) <빛나는 도시>는 그가 모스크바를 처음 여행했을 당시에 가졌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7) 스페인 장군으로 1923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으나, 1930년 공화파에 의해 역전 당했다. 
(8) 앙리 르페브르, <도시에 대한 권리>, 에코노미카, 파리, 2011(초판: 1971년).
(9) 가스통 바르데, <그늘진 도시: 완전한 파괴, 새로운 도시계획건설>, LCB, 파리, 1946년.
(10) 르 코르뷔지에, <프레시지옹: 건축학과 도시계획의 현 상황에 관한 상세한 설명>, 크레스, <에스프리 누보>의 총서,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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