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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가 어쨌다고?
부르카가 어쨌다고?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0.04.09 15:5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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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알리미 칼럼]

 프랑스인들은 스위스에 교회 첨탑이 몇 개 있는지(4개), 프랑스에 부르카를 입고 다니는 여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367명)(1) 따위에 대해서는 잘 알아도 중앙은행의 ‘기술적’인 결정으로 인해 20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에 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18개월 전 프랑스 정부는 은행 구제 과정에서 자본 참여를 한 후 나중에 지분을 되팔았더라면 꽤 괜찮은 이익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는 대신 지나치게 후한 조건으로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 구제자금으로 은행 주주들이 얻은 200억 유로에 달하는 이익은 작년 프랑스 국가의료보험 적자(220억 유로)와 맞먹는 액수다. 또한 지난 한 해 퇴직 공무원 2명에 대해 1명만 신규 고용함으로써 달성한 재정긴축 액수와 비슷하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하다는 핑계로 중요한 주제에 대해 함구한 채 여론의 관심을 부차적 문제로 돌리는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국민전선(FN)이 지방선거에서 선전하고 유럽의 극우파가 득세하는 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사르코지는 이번엔 ‘연금 개혁’에 나설 것이다. 연금 문제는 사회적·경제적 파장이 상당한 만큼, 프랑스 정부는 이번에도 ‘부르카 논쟁’ 따위를 부추겨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고 애쓸 게 뻔하다.
 이러한 여론 호도에 대항하기 위해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 끌려들어가 반계몽주의적 상징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거나, 부르카 착용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건 불필요하다. 그러나 교회와 가부장제, 도덕적 기강 따위를 운운하던 우파가 느닷없이 정교분리와 페미니즘, 사상의 자유를 부르짖는 웃지 못할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이슬람교는 우리에게 또 한 번 기적을 행하는 셈이다!
 1988년 조지 부시 1세는 탁월한 여론 동원을 통해 로널드 레이건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는 범법행위로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당시 1년에 1~7차례 정도의 사례가 보고됐다). 연방의원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얻어낸 그의 제안은 90% 이상 찬성으로 입법화에 성공했지만 나중에 최고법원에서 최소 판결을 받게 된다. 같은 시기, 미국 경제 역사상 최대 금융 스캔들이 발생한다. 연방의회에 의해 규제 완화 혜택을 본 저축대부조합에서 엄청난 사기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자금 중 일부는 몇몇 의원의 선거자금으로 사용되었다. 규제 완화가 초래하는 위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지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제 사안이 복잡한 건 둘째로 치더라도 사람들은 성조기 지키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다.
 미국의 납세자들은 이 스캔들로 인해 5천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프랑스에서도 곧 ‘부르카’ 뒤에 숨은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대가로 얼마를 물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각주>
(1) 이 이상하리만치 구체적인 숫자의 출처는 프랑스 국내중앙정보국(DCRI)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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