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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닮으려는 MB, 딱하다”
“사르코지 닮으려는 MB, 딱하다”
  • 대담·성일권/발행인, 정리·안영춘/편집장
  • 승인 2010.04.0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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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베르나르 카상 초대 아탁 의장

 “프랑스 집권 우파의 참패는 원칙이나 철학이 없이 집권을 위해서라면 극우정책이나 ‘미친 정책’도 서슴지 않는 사르코지 정권에 대한 유권자의 뒤늦은 깨달음이자 냉엄한 심판이다.”
 범지구적 반세계화 운동을 주도하는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아탁)의 초대 의장과 세계사회포럼(WSF)의 지도위원장을 지낸 베르나르 카상은 지난달 치러진 프랑스 지방선거 결과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관련해 “한국의 대통령이 이런 몰가치적 사르코지와 닮은꼴을 주장한다는 건 참으로 딱한 노릇”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히틀러나 무솔리니 정권 같은 파시즘 체제는 아니지만, 독단적이고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띤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비판받을 논거는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전 편집위원장인 베르나르 카상은 <르 디플로> 본사에서 한국판 일행과 만나 이렇게 밝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국적과 민족의 차이를 넘어서, 전세계 의식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며 한국 <르 디플로> 독자에게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연대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 베르나르 카상
  지난 3월 15일, 프랑스 파리 13구 스테팽 피숑가 1번지의 고졸한 건물에 자리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본사 건물. 한국판 일행은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이 주재한 월례 편집회의를 참관한 뒤 한평생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항거한 이론가이자 실천운동가 베르나르 카상(Bernard Cassen)(73)을 만났다. <르 디플로> 편집위원 겸 파리8대학 교수 재직 시절,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아탁)의 초대 의장과 세계사회포럼(WSF)의 지도위원장을 맡아 실천적 사회운동가의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 그는 각종 직위에서 공식 은퇴했지만 아직도 ‘명예’라는 수식어를 지닌 직함으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다.
<르 디플로> 건물의 별실에 자리한 자신의 고즈넉한 집필실로 한국판 일행을 안내한 카상은 “이곳이 ‘투쟁의 기억’이라는 뜻을 지닌 ‘메무아르 드 뤼트’(Mémoire des Luttes)라는 반세계화 담론조직의 사무국”이라며 “모임 회원들은 대부분 <르 디플로>의 은퇴자들이나 옛 필자들로 구성됐다”고 소개했다. (이들 원로의 값진 경륜과 성찰이 <르 디플로> 제작에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브뤼노 롱바르 경영이사는 밝혔다.) 인터뷰는 자유로운 대담 형식으로 했다.
 
“지방선거, 미친 사르코지 심판”
- 프랑스 지방선거가 집권 우파의 완패, 좌파의 압승으로 끝났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사르코지 정권에 현혹된 프랑스 유권자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고 볼 수 있다. 사르코지 정권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극우 정책이든 인종차별 정책이든 간에 몰가치적·몰이념적 정책을 마구 추진했다. 여기에는 어떤 원칙이나 철학 같은 것도 없고, 오로지 탐욕과 집권욕밖에 없다. ‘데마고그’(선동자)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는 미쳤다! 대개 현대사회에서는 실용주의라는 이름 아래 데마고그들이 현혹적 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국민의 삶이 고단하고 피폐해진다.”
- 좌파는 다음 대선에서 집권할 수 있을까?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좌파 세력이 집권의 꿈을 다시 가질 만하다. 특히 대통령 선거 패배 뒤 유럽의회 선거에서 연이어 참패해 깊은 시름에 빠진 사회당은 좌파연합 세력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꿈꾸는 것은 자유이다. 세계화의 폭력에 희생되는 시민의 아픔을 보듬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이들의 연대를 끌어내야 좌파 집권의 꿈이 실현될 것이다. 아울러 좌파 정당 간의 상호 협력도 중요한 요인이다.”
-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종종 사르코지 대통령과 ‘닮은꼴’이라고 주장해왔다. 탈이념적 중도실용주의가 공통분모라는 거다. 과연 사르코지는 한국 대통령이 ‘닮은꼴’이라고 말할 정도로 롤모델이 될 만한가?
“사르코지의 사생활도 실망스럽고 뒤죽박죽 정책도 그러한데, 과연 한국의 대통령이 뭘 닮아보겠다고 그러는지 의아하다. 프랑스 국민이 이번 선거에서 그를 외면하지 않았는가?
- 아탁과 세계사회포럼의 지구적 반세계화 투쟁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바람은 거세져만 간다. 어떤 점에서 신자유주의가 위험한가?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현 단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경제와 사회보다는 금융이 우선시되는 금융 헤게모니라 요약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상징은 정치인도 산업자본가도 아닌, 투자자이다. 외환투기를 비롯해, 공채 및 다양한 파생상품 투기가 금융 시스템을 지배하고, 이러한 금융 시스템이 경제와 사회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 기업은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수익률이 충분히 높지 않기 때문에 문을 닫게 된다. 또한 ‘인적 요소’는 최고 수익 달성을 위한 단순한 변수로 취급되므로, 사회적·환경적 비용도 무시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반인간적 시스템이며, 사회와 환경을 자기파괴로 이끄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이라 볼 수 있다.”


- 그렇다면 지금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지구의 생존과 인간, 사회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며, 경제와 금융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돼야 한다. 즉, 정부와 시민의 공조 아래 금융투기를 억제하고 금융시장 과열을 막아야 한다. 이는 곧 지난 30여  년간의 흐름을 되돌려야 함을 뜻하며, 가장 큰 난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와 내 동료가 활동을 중단할 수 없다. (웃음) 지난번 우리는 세계경제포럼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범지구적으로 벌였고, 그 결과 어느 정도 긍정적 성과를 거두었다. 세계경제포럼은 과거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성장 같은 의제를 다루기까지 했다.”
- 당신은 다양한 사회투쟁의 길을 걸어왔다. 그 동기가 무엇인가? 솔직히 지식인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부정과 불의 앞에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늘 고심한 것이 개인 및 공동체 간의 정의와 평등 실현이다. 조직 활동이나 개인적 활동도 이러한 내 양심의 소리에 따른 결과라 볼 수 있다. 사실 지식인은 침묵하는 것이 아니며,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대중매체가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의 말에만 힘을 실어주고, 이를 뒷받침하는 지적 논거를 제공하는 일부 지식인에게만 귀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지식인의 역할은 세태에 영합하지 않고, 사회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다. 사회가 처한 현실이 야기할 결과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과거를 바탕으로 역사적 관점에서 이를 해석해 사회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주의 지식인에게는(물론 모든 이가 해당되는 것은 아니나), 양심의 소리를 일깨워,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이 기대된다. 또한 지식인층이 제시하는 사회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안은 시민과 사회운동, 정당은 물론 정부도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G20 정상회의, 필요치 않다”
- 당신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그런 시각을 찾을 수 없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서울에서 개최될 G20 정상회의가 국가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데, 과연 그러할 것이라고 보는가?
“유엔에 가입한 회원국 수는 192개국이다. 이는 G20 정상회의에서 제외된 국가가 172개국임을 뜻한다. G20 정상회의가 G8 정상회의보다는 대표성 측면에서 한결 낫다고 볼 수 있으나, 저개발도상국의 참여가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민주주의적 정당성 측면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국제사회의 의사결정기구 중 이러한 정당성을 확보한 기구는 유엔이 유일하다. G20 정상회의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데 G20 정상회의는 필요치 않다. 오히려 정상회의 개최 반대 시위나 시위 저지를 위한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경우,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 당신은 얼마 전 쓴 글에서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계획이 그리스를 구제하려는 목적과 거리가 멀고, 단지 유로존을 중심으로 한 유럽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고, 유럽연합(EU) 건설의 이념적 붕괴를 막기 위한 미봉책이라고 비난했다. 왜 그러한가?
“1957년 로마협약에서 비롯된 EU가 표방하는 기본 가치는 자유경쟁과 자본, 상품 및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이러한 원리는 회원국만이 아닌 역외 지역에도 적용된다. 즉 EU는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시스템이며, 상호호혜적 특성이 미약하다. 상호호혜 및 협조를 위한 정책 예산은 27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액수의 약 1%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16개 회원국이 통화로 채택한 유로화는 유럽중앙은행의 관리 아래 있으며, 회원국에 대한 일체의 구제금융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즉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에 차관을 제공할 수 없으며, 다만 인플레이션 억제가 주요 업무이다. 또한 회원국 정부로부터 완전 독립을 보장받는다. 신자유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이다. 다시 말해, 금융정책을 국민 여론의 영향에서 보호함으로써, 선거 실시에 따른 집권당 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의 일관성 있는 추진이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이야말로 곧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과 같으며, 중앙은행의 지나친 금융시장 의존도를 은폐하는 정책이다. 우리가 이를 반대하는 이유이다.”
- 그렇다면 EU 건설에 가장 이상적인 이념적 기반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지난 50여 년간 추진돼온 EU의 형태에 대해 대대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경쟁보다는 상호호혜의 연대의식을 중요시하고, 경제와 금융은 사회·경제권의 실현을 위한 적절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본 및 국제 통상의 흐름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사회·환경·조세 측면에서 덤핑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따라서 향후 유럽은 특혜무역협정을 통해 저개발도상국에 호혜 의식을 발휘하는 한편, 공적 개발 원조의 규모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MB, 파시즘 아니지만 비판은 마땅”
- 한국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와 독단적 성향으로 인해 일각에서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규탄받고 있다. 히틀러, 무솔리니 등 과거의 파시즘 정권에 견줘볼 때,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파시즘과 같이 역사적 암시를 담은 어휘 표현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현재 내가 응한 인터뷰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는 점과, 야당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보면, 한국이 파시스트 체제하에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현실의 성격에 따라 정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지, 정치 용어에 현실을 끼워 맞춰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독단적이고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띤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정부를 반박할 논거는 충분하다.”
-한국의 지방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주도 세력은 프랑스뿐 아니라 저 건너 한국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대안세계화나 반세계화 세력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이론과 실천을 접목하는 지식인의 실천적 사회운동도 중요하다.”

카상과 대화가 끝날 즈음, ‘메무아르 드 뤼트’의 조직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르 디플로>의 전 발행인 이나시오 라모네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르 디플로> 한국판이 안착하고 있어 무척 기쁘다. 한국 독자 여러분과 한국판 관계자에게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는 두 원로에게 어떻게 화답해야 할까?


[박스기사] 베르나르 카상은 누구인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아탁의 초대 의장과 세계사회포럼의 지도위원장을 맡아 두 단체를 강력한 반세계화 국제조직으로 발전시켰으며, 여전히 명예의장으로 저항이론과 운동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 좌파 이론의 본산 격인 파리8대학 유럽학 교수 출신인 그는 <아탁 vs IMF>(2000), <반세계화 선언>(2004), <비판사상 연구>(2009) 등 다양한 저서를 통해 반세계화 운동의 논리와 담론을 제시해왔다. 1973년 <르 디플로>에 합류해 2008년 1월까지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이나시오 라모네 전 발행인, 자크 사피르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등과 함께 반세계화 담론조직 ‘메무아르 드 뤼트’(www.medelu.org)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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