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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의 미래에 드리운 먹구름
지구환경의 미래에 드리운 먹구름
  • 홍대운/미국 로스쿨 재학
  • 승인 2010.04.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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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후에 질식할 지구’ 특집 기사를 읽고

 2009년은 환경, 특히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비교적 고무적인 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어울리지 않게 환경문제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선진국의 감축 의무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교토의정서가 1997년 체결되었지만, 미국은 환경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클린턴 행정부에 비협조적이던 의회의 거부로 비준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 친기업적인 조지 W. 부시 정권은 환경문제에 방관자 내지는 직무유기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지만, 2009년 오바마 정권이 출범한 후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걸고 입법화 작업을 서두르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6월에는 미국 하원에서 기후변화법이 통과되어 현재 상원의 최종 표결을 기다리는 상태다. 9월에는 연방 항소법원이 발전회사 등 거대 에너지 기업에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온실가스가 배출되어 기후변화를 초래했으니 손해액을 배상하라’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를 앞둔 12월에는 오바마 행정부가 온실가스 규제를 선언했다. 미국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모두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12월 ‘이상기후에 질식할 지구’ 특집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비교적 상황을 낙관한 것은 이런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잔치는 끝난 것일까. 지난해 12월 전세계의 기대를 모았지만 사실상 실패한 협상이라는 평가를 받은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가 끝난 후 올해 들어 기후변화 문제의 전망은 상당히 어두워졌다.
 먼저 기후변화 법안을 최종 처리해야 할 의회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아직까지 침체 국면이 지속되는 미국 경제문제가 큰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집권여당인 민주당 의원은 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지난 1월 상원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에 1석(메사추세츠주에서)을 내주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물론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안일 경우 미국 의원도 정당 노선과 압력에 굴복해 투표하는, 즉 ‘정당단합투표’(Party Unity Vote)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앙집중식 공천을 하지 않는 미국 의원은 선거구민의 여론을 의식해서 투표할 때가 많고, 투표에 대한 정당의 통제는 비교적 약한 편이다. 최근 의료보험 개혁안 투표에서 공화당 쪽 찬성 의원이 전무한 것에 비해 민주당 의원이 오바마와 의회 지도부의 독려에도 찬성 대열에서 대거 이탈한 것은 그러한 사례다. 오바마의 경우에도 이번 중간선거를 넘겨버리면 본인의 재선 도전이 얼마 남지 않기 때문에 환경문제 해결에만 주력할 수 없는 처지이다.
 이 와중에 기업의 반발이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일부 단체가 온실가스 규제에 대해 각종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아직 최종 통과되지 않은 기후변화 법안에 대한 소송까지 제기된 상태다.
 여론도 점차 식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믿는 과학자들끼리 주고받은 이메일이 해킹되어 공개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후게이트’(Climategate)라는 용어가 생겨났고, 지구온난화 문제가 마치 일부 정치세력과 친환경기술 기업들의 거짓말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겨울 기록적인 한파를 거치면서 곧 미니 빙하기가 닥칠 것이라는 등 일각의 회의론이 학계의 주류적 시각인 양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이는 1950년대 이후로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이 논의되기 시작하자 거대 담배회사에서 의학연구를 활발하게 지원하고 극소수 유리한 결과를 언론에 발표해, 사람들에게 흡연 위험성에 혼란을 주는  ‘물타기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연료 효율이 더 높은 기술과 대체에너지를 시급히 개발하고, 더욱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어떠한 의심의 여지가 없음에도 기후학계 일각의 주장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그 본질을 호도한다.
 오바마는 지난 2월 원전 건설을 30년 만에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물론 관련 산업이 활성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가 있지만 사실 더 큰 노림수는 태양열이나 풍력발전 등 순수 친환경기술의 개발이 아직 본격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거대 석유회사의 막대한 자본 영향력을 줄여보려는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바마의 승부수가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원전 건설 지원에 실망한 오바마의 핵심 지지 기반인 환경단체 등의 지지세가 상당 부분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고, 기존 에너지 기업의 조직적인 반대 로비도 치열할 것이다. 마치 고려시대 평양 천도가 좌절되었고, 현재 세종시 원안이 좌초 위기에 놓인 것처럼 개혁에는 언제나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소리소문 없이 국회에서 통과된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이 4월 시행될 예정이지만 행정, 입법, 사법부 그 어느 쪽도 진정으로 환경과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4대강 사업 같은 토목산업을 녹색산업으로 둔갑시키는 현 정부와 그 꼭두각시에 불과한 국회에는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사법부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이 정부와 자동차 회사는 호흡기 질환 배상 책임이 없다면서 호흡기 질환을 앓는 시민의 대기오염 배출 금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좋은 예이다.
 지난해의 반짝 설렘도 잠시, 올해 기후변화를 비롯한 전세계 환경문제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 없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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