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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대학인가?”
“이것도 대학인가?”
  • 김규종 | 경북대 인문대학장
  • 승인 2017.08.3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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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쟁취해야 할 대학의 자율성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헌법재판소가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것이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의원 234명의 찬성으로 정치적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헌법적 탄핵으로 퇴출됐다. 국회의 정치적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탄핵 사이에는 92일의 시간이 놓여 있다. 길고도 짧았던 그 시간 이 나라 민초들과 지식인들은 나라의 향배를 놓고 허다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은 “이것도 나라냐”는,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긴 아시아 신생국 중, 유일하게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나라로 찬양받았다.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자들의 파쇼적 억압을 뚫고 경제와 정치, 두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경제성장의 저변에 노동자와 농민의 처절한 헌신이 있었다면,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변화의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교수집단의 활동이 있었다. 

1960년 4·19혁명 발발 이후 4월 25일, 대학교수 258인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시위에 동참한다. 교수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과 3·15 부정선거 책임자에 대한 문책 등을 요구하고 거리를 행진한다. 그 이튿날인 4월 26일, 독재자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경무대를 나선다. 1987년 3월 28일 고려대 교수 28인이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 이후 5월 중순까지 29개 대학에서 785명의 교수들이 대학별로 시국선언을 이어가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대변했다. 그것은 6월 2일 자 <대학교수 연합시국 선언>의 단초가 된다.

요약하자면, 87년 6월 민중항쟁의 도화선 중 한 줄기는 대학교수들의 것이었던 셈이다. 고려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인 <우리의 견해>에는 4개 항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것의 핵심은 정치적 민주화와 직선제개헌, 학원문제의 자율적인 해결, 학생들의 의사표현 자유보장, 교수들의 적극적 대응과 비폭력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교수와 지식인의 적극적인 사회참여 촉구 제기였다. 

“교수와 지식인의 임무는 국가와 사회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며 그에 대한 공정한 견해를 표명하는 것을 포함한다. 자포자기적,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오늘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 관심을 표명하고 학생 지도의 문제에 임해 그 본연의 임무를 확인할 것을 촉구한다.”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서 발췌) 

<우리의 견해>에서 교수들은 당면한 국가와 사회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호소한다. 교수들은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인 집단의 관심과 견해표명을 의무사항으로 파악한다. 그것이 어쩌면 1987년 6월 민중항쟁이 민(民)의 승리로 귀결되는 주춧돌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도 교수집단을 중심으로 한 시국선언은 계속됐다. 1990년 이른바 3당 합당에 반대하는 시국선언과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시국선언, 2008년 광우병 파동과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한 시국선언, 그리고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응당 치러야 할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하여 2017년 역사적인 변곡점의 시기에 우리는 서 있다. 2016년 10월 29일 제1차 촛불시위로부터 2017년 3월 11일 제20차 촛불시위에 이르는 134일 동안 1천6백만이 넘는 민중의 함성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것은 박정희 부녀가 제작하고 확대 재생산한 ‘허구적인 신화’의 희극적인 종말을 선물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누적된 숱한 적폐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하고 있다. 누적된 폐습의 완전해소와 철폐가 전제되지 않는 한, 21세기 대한민국과 대학의 미래는 원천적으로 성립 불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21세기 대한민국대학의 문제점을 살피고, 그것에 기초해 대학의 자율과 지배구조 문제를 돌아보고자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구호가 널리 회자되는 21세기 지구촌 사회에서 낙후한 나라와 대학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의 면구(面垢)함과 우울한 수고로움으로부터 벗어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21세기 대학의 문제와 해결방안 

주지하듯이, 대학의 탄생과 더불어 중세유럽은 천년의 미몽으로부터 비로소 깨어난다. 세속의 정치권력이 종교권력과 대립-각축하면서 수도원이 전유(專有)했던 지식이 저잣거리로 나오기 시작한다. 교양 교과목인 ‘자유 7학예(Sept Ars Liberaux)’를 닦은 대학생들은 법학과 의학, 철학 등의 영역을 수학하면서 전문가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뿐 아니라, 기계 시계와 아르스 노바('새로운 기법, 예술'이라는 뜻으로 14세기 프랑스음악 전반의 경향), 복식부기와 인쇄술이 유럽중세의 기나긴 잠을 깨운다.(1) 그렇게 근대는 대학과 더불어 신기원을 맞이한다. 

초원과 내륙의 문명이 실크로드 3대 간선과 5대 지선으로 상호 교류하면서 간단(間斷)없이 진행되어온 유라시아 세계는 지리상의 발견으로 일대 전환을 맞는다. 그것은 훗날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정치혁명 그리고 독일의 정신혁명으로 완성된다. 일찍이 카를 야스퍼스가 지적한 ‘축의 시대(Achenzeit)’의 중심이 지중해 동쪽과 유라시아 서부와 남동부 및 동북 방면(2) 이었다면, 18~19세기 세계사적인 변혁은 유라시아 서쪽 끝에서 발생한다. 

19세기 정신혁명의 정점에는 1810년 프로이센의 교육부 장관이며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빌헬름 폰 훔볼트가 베를린에 설립한 ‘훔볼트 대학’이 자리한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를 지향한다는 훔볼트 대학은 근대대학의 효시로 자리매김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한 훔볼트 대학은 현대의 분과학문 체계에 기초하며, 헤겔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게오르크 짐멜, 막스 플랑크 등을 배출했다.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학문공동체 훔볼트 대학은 근대대학의 모범적인 표상으로 수용된다. 

훔볼트 대학을 필두로 한 근대대학이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함으로써 두 가지 문제가 대두한다. 그 하나는 분과학문이 추구하는 대상의 변화다. 자연과학은 가치와 무관한 진리추구를 대상으로 삼았고, 진리추구에서 밀려난 인문학은 선과 미 그리고 가치추구에 매진한다. 두 번째 문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자리한 사회과학의 모호한 경계와 혼란스러운 상황의 발생이다. 그 결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은 사회과학으로, 역사학, 인류학, 동양학은 인문학으로 분류됐다. 

훔볼트 대학이 창시한 근대대학의 표상은 유럽의 전인적(全人的)인 대학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학은 분화의 길로 부단히 매진해왔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공은 거듭해서 세분화됐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원자탄 발명으로 촉발된 자연과학의 상품화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괴리를 가속한다. ‘가치’를 배제한 진리의 결과물을 자연과학자들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한 것이다. 진리탐구 영역을 자연과학에게 빼앗긴 인문학의 지배영역은 날로 축소되어 오늘에 이른다. 

1968년 중부 유럽에서 시작해 서유럽을 거쳐 대서양을 지나 미국으로 건너간 68혁명은 그 이듬해 태평양을 지나 일본열도에 상륙한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68혁명의 본질과 발발원인을 해명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있었다. 그 결과 사회과학 역시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존재의 위기를 실감해야 했다. 이런 상황은 21세기 첨단과학과 공학의 시대에도 지속되고 있다. 70억 인류가 거주하는 지구촌에는 이제 70억 개 이상의 문제와 동일한 수의 해결방안이 떠도는 아수라의 공간으로 전환됐다. 

1980년대 이후 레이건과 대처가 앞장서서 구현한 신자유주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위상과 가치를 더욱 실추시킨다. 자연과학의 무한질주와 공학과 정보통신의 결합은 인간지성의 한계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들려오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드론과 로봇, 3D 출력기와 자율주행차 소식은 현란하기 그지없다.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21세기 세상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천착하는 인문학과 인간의 정치-경제-사회적 속성과 가능성을 다루는 사회과학은 여전히 좁아져 가는 영역을 확인할 따름이다.

예일대 석좌교수인 임마누엘 월러스틴은 이런 상황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21세기 대학의 재통합에 대한 것이다. 그는 유럽과 그 후예인 미국이 주장해온 ‘유럽적 보편주의’를 극복하고 ‘보편적 보편주의’를 주장한다. 지식인은 분석가로 진리를 추구하고, 윤리적 개인으로 선과 미를 추구하며, 정치가로 진선미를 통합해야 한다고 월러스틴은 역설한다. 상호 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세 가지 차원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거짓된 ‘가치중립성’의 족쇄를 벗어야 한다고 그는 충고한다. (3)

월러스틴은 전문가이자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서 지식인은 학문적인 분석을 역사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체계는 역사적이며, 모든 역사는 체계적이다”는 명제를 내세우면서 그는 구조분석이 가능해야 부분 이해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향후 25~50년 동안 전개될 이행기 세계체제 분석과 이해 및 대안선택을 위해 행동하는 지성을 강조한다. 그의 주장처럼 이런 명제가 성립한다면 21세기 대한민국 대학에도 출구는 마련될 것이라 믿는다. 

대학의 자율과 지배구조 문제 

대한민국의 대학은 오늘날 중병(重病)에 걸려 있다. 훔볼트가 선언한 “교수와 학생이 함께하는 자유로운 학문공동체”는 대한민국의 대학과 아무 관계가 없다. 교수는 학문연구와 교육을 존립기반으로 삼는다. 하지만 교수는 논문 제작에 진력하기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없다. 교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논문 편수에 집중돼 있다. 논문의 양적 확대에 집중하느라 교수는 연구와 교육은 뒷전이다. 더욱이 각종 프로젝트와 연구비 수주는 교수의 능력과 재량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어디 그뿐인가?! 

언론사와 교육부의 대학평가는 교수사회의 적극적인 사회-정치적인 참여와 의견개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대학의 인문학 관련 분야 신임교수 임용은 45세 전후로 늦춰진 지 오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수들은 거의 임노동자 수준으로 전락해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의 지적-정신적 수준의 마지막 보루이자 첨병이라는 교수들의 자의식과 자긍심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월급쟁이로 전락한 지식인집단의 전형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수사회다. 

신임교수들은 재임용 심사와 정년보장 심사에 주눅들어있다. 고약한 선임교수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재임용에서 그를 탈락시킬 수도 있다. 대학 내에서도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그로 인해 대학을 학문공동체로 인식하는 교수들의 숫자는 천연기념물 수준이다. 일부 대학교수들은 학내보직을 구하거나, 정치권에 줄을 대서 원하는 자리를 얻으려 한다. 대학에서 이른바 보직교수와 ‘폴리페서’ 논쟁이 사라지지 않음은 그 단면이다. 

이와 같은 현상적인 문제 이면(裏面)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대학에 자생적 학파나 이론체계나 학문적 전통이 완전히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학문은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 일본을 통해 뿌리내렸다. 오늘날 국공립대학은 경성제국대학에, 사립대학은 보성과 연희전문학교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해방이후 대한민국대학의 주류세력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지만, 학문의 자생력을 고뇌하는 흐름은 여전히 미미하다. 

일본 근대소설의 문을 연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자의식 확보를 위한 투쟁은 우리에겐 남의 나라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문학을 공부했던 소세키는 국비로 런던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추적망상과 위장출혈 등으로 불과 2년 만에 귀국한다. 그를 괴롭힌 것은 “나는 누구인가. 왜 일본인이 유럽의 미학과 문학을 공부해야만 하는가”하는 본원적인 문제였다. 일본의 불교와 유교, 하이쿠와 한시의 세계에서 성장한 그가 대면해야 했던 런던의 차가움과 살풍경과 낯섦이 어떠했을까.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정체성을 향한 소세키의 뿌리 깊은 문제의식은 중편소설 <풀베개(草枕)>에서 절정을 맞는다. 동양과 일본의 미학, 일본다움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편력이 서양과 서양미학, 그것에 뿌리를 둔 근대성과 상호 충돌하면서 치열하게 전개된다. 나는 일찍이 대한민국 소설과 지식인들에게서 소세키 같은 양상의 뜨겁고도 본질적인 고뇌와 근원적인 추구의 자세를 찾아내지 못했다(나의 천학비재(淺學菲才)한 학문과 경험이 원인일 것이다). 

우리 학문은 고대와 중세, 근세에는 중화의 학문을 모방 답습하는 것에 그쳤으며,(4)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는 일본과 미국 및 유럽의 학문을 베끼는 일에 몰두해 온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그럴진대, 그것을 근본적으로 괴로워하거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미미하다는 것이 문제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숙명이나 되는 것처럼 현재의 상황을 고요히 수용하거나, 아예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는 자들이 강단을 점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학문의 대외종속은 날이 갈수록 우심해져서 천석고황(泉石膏肓) 인양 고착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전체적인 조건 아래서 대한민국 대학의 자율성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부 논자들은 총장직선제가 대학 자율성 회복의 근간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국립대의 경우 대학 지배구조를 교수들이 장악하느냐, 아니면 교육부와 청와대가 소유하느냐는 문제가 대학의 자율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총장을 누가 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대학문제의 논의과정과 해결방안 모색에 교수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것인가의 문제가 핵심이다. 

1987년 6월 민중항쟁의 결과로 대학에 총장직선제가 도입됐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실제로 많은 교수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들의 면면은 직선제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자명한 사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총장직이라는 명예와 영광을 향해 진력한 부나방 같은 자들의 치열한 경연장으로 직선제가 타락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적어도 4년, 8년, 많게는 12년 동안 ‘총장당선’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 교수들이 어디 한둘인가?!  

총장 후보자들을 둘러싼 캠프 참여 교수들의 각축과 반목은 또 어떤가. 오로지 보직 하나만 바라보고 불철주야 매진했던 교수들의 면면은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이든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전교교수회 평의회에 등장해 이해관계를 관철하려 막무가내의 몽니와 행악질을 부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5) 그렇게 충성한 결과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총장선거 이후 크든 작든 보직을 얻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총장의 사적인 욕망 때문에 규정에도 없는 중임조항을 삽입하느라 학내가 난장판이 된 일도 있다. 교육부 장관이 될 것이라는 둥 정부요직에서 부를 것이라는 둥 허위사실을 유포해 교수들을 볼모로 삼은 자들의 사사로운 탐욕은 끝이 없다. 결과적으로 교육부와 최고 권력자가 총장직선제 폐지를 거론한 데에는 일부 교수들의 탐욕과 부패, 무능과 타락에도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교육부와 권력자의 횡포를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수집단이 총장직선제의 폐해를 줄여가면서 대학을 발전시킬 최적의 인물을 찾는 방안을 자율적으로 모색하지 않은 데 대한 반성적 사유라는 것을 밝혀둔다. 

경북대를 비롯한 몇몇 국립대 총장임용을 둘러싼 잡음이 터져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다. 권력의 농단과 개입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재발방지에 나서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정인물을 배제하고 제3의 인물을 위한 교육부와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작업도 필연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교수집단이 성찰해야 할 것이 있다. 대체 총장자리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교수들이 안달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왜 당 신은 총장이 되려고 하는지, 왜 나는 그를 총장으로 지지하는지, 그 문제부터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학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나는 당시 총장에게 경북대 발전을 위한 장기계획(마스터플랜) 유무를 물은 적이 있다. “없습니다!” 총장의 간명한 대답과 함께 별걸 다 물어본다는 떨떠름한 표정이 다가왔다. 8년이 넘는 세월 총장운동을 감행한 인물의 입에서 당연하다는 듯 튀어나온 대답,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총장으로 만들겠다고 불철주야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교수들의 행태를 떠올리면서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무엇을 위한 총장이며, 누구를 위한 직선제인가?! 

대학 자율성 회복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 제시한 문제를 정리해보면, 21세기 대한민국 대학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명확하다. 대학 자율성의 출발은 교수들의 자각에서 시작된다. 4.19혁명과 6월 민중항쟁의 기폭제가 된 선배교수들의 집단지성이 오늘날 거의 폐물(廢物), 또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까닭을 숙고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지식인 사회와 대학의 모든 영역을 집어삼키고 있는 현실에서 무력해지지 않으려면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스테판 에셀이 명저 <분노하라>(2011)를 통해 일갈한 대상은, 비단 프랑스의 젊은 대학생들만이 아니다. 세계 모든 대학과 지식인 사회를 향한 것이었다.  

나의 학문과 지식이 봉급으로 환산되는 우울한 현실에 저항하고 맞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교수사회를 급습해 일자리를 앗아갈 가능성도 농후한 21세기에 인간답게 지식인답게 당당하고 의연하게 부조리한 현실과 ‘맞짱’뜰 준비를 하자는 얘기다. 언론사의 대학평가와 프로젝트와 국책사업에 거리를 두고 자신의 내면과 역사적 책무를 사유하고 인식하는 능동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어차피 다가올 노년과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자아를 지켜줄 것은 자긍과 자의식과 역사적 사명과 소신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교수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학문적 종속성과 장벽을 보다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언제까지 남의 학문과 체계를 모방-답습할 것인가? 언제까지 자국(自國)의 역사를 공부하러 미국과 일본을 찾아다닐 것인가? 언제까지 사전 하나 온전히 만들지 못해 일본사전을 번역하고 있을 것인가! 이런 참담한 현실을 깊이 있고 뿌리까지 반성하고 돌이키는 추상(秋霜)같은 자세가 없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과 미래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대학교수로서 자유와 평등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가 기르고 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생각할 일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곧 그들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리라 믿는다. 우리 역시 학부생이었고 대학원생이었으며, 시간강사였음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시간제 교수진과 전일제 교수진 사이의 임금격차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대우의 차이가 극심해진 시기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생존권과 교육권을 배려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교수들은 대학 지배구조 문제를 총장직선제 쟁취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의 핵심을 먼저 포착했으면 한다. 직선제를 다시 도입한다고 해도 거기에 학부생과 대학원생, 조교와 시간강사들 그리고 교직원들의 몫을 얼마나 배분할 것인지 재삼재사 숙고해야 한다. 대학은 교수집단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이화여대가 당면하고 있는 직선제 배분비율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간선제를 유지한다 해도 교육부나 청와대가 대학의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만사휴의(萬事休矣)일 터. 따라서 우리는 교육부와 권부의 권력남용과 참척에 더 이상 눈감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자행한 권력남용과 직무유기의 폐해를 낱낱이 지적하고 공론의 마당으로 그 문제를 끌고 나와 단죄해야 한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교육부 폐지와 교육위원회 설치방안은 그동안 누적돼온 교육계의 온갖 폐해가 야기한 필연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 같은 과정에서 우리가 다시 대면하는 것은 보직교수와 폴리페서 문제다. 뛰어난 능력과 도덕성을 가진 교수가 국가 중대사나 학교의 중요 일자리에서 활동하는 것은 당연하고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무능하고 부패한, 타락하고 부도덕한 인사들이 대학총장과 교육부에 줄을 대고 자리를 탐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를 전제로, 우리는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명제에 대해 충실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찾는 것이야말로 실추된 대학 자율성 회복을 위한 첩경(捷徑)임을 확신한다. 

글을 마치면서 

1960년대 이후 급속도로 팽창한 우골탑 신화를 기억한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앞세운 사립대 양산논리로 오늘날 사립대와 국립대 비율이 8:2이라는 대학교육의 부실과 불균형적인 관계의 단초가 놓였던 1960년대. 그것도 모자라 1981년에 이른바 졸업정원제가 도입되어 대학의 하향평준화와 부실대학 양산이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1995년에 생긴 대학 설립준칙주의는 이런 양상을 극단적으로 악화시키는 첨병구실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런 몇 가지 과정을 거쳐 21세기 대한민국대학의 전체상이 형성됐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에는 광범한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대학 자율성 회복이라는 문제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자율성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과제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함을 일컫는다. 외부세력의 영향이나 입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고 실행해 나가는 것이 자율성이다. 결국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의 자유와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할 것이다. 자유와 자율은 대학을 움직이는 지극히 기본적인 동력원이다. 

자율과 자유는 누군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대학과 교수들은 무기력하기 이를 데 없다. 한낱 무력한 지식인이자 월급쟁이로 스스로를 각인(刻印)하는 교수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나름의 좁은 학문영역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교수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와 청와대 관료들에게 대학교수는 만만한 대상이기도 하다. 권부와 교육부 관료에게 빌붙는 교수들도 도처에 존재하는 놀라운 세상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대학의 자율성 회복은 지배구조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대학이 무엇을 위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어떻게 주인의식을 회복해 진정한 대학의 자치를 실현할 것이지 깊이 성찰하고 사유할 때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자는 시민들의 열화(熱火)와 같은 요구가 거리와 광장에 분출하는 시대 전환기 아닌가.

위대한 전환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는 대학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뜨거운 논쟁과 토론을 통해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담론과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글·김규종
경북대 인문대학장, 경북대 인문대학 교수. 민교협 공동의장, 대경 민교협 의장. 저서로는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극작가 체호프의 희곡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등이 있다.  


※ 이 글은 한국대학학회가 발행하는 <대학: 담론과 쟁점>(2017년 제1호 통권3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이다. 

(1) 이것에 대해서는 <수량화혁명>(알프레드 크로스비 지음, 김병화 옮김, 심산, 2005)을 참조할 것.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해 저술된 책이지만, 서책에 담긴 근대유럽의 형성과정은 음미할 만하다. 
(2) 유대교의 <구약>에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종교-정치-문화가 배어있다. 기원전 7세기 중엽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발흥한 조로아스터교는 선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의 신 앙그라 마이뉴의 최후의 대결과 최후의 심판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유대인의 바빌론유수를 이끌었던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키루스 2세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가 된다.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복수법(同害復讎法)’이 실행됐다. 그리고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레바논 삼나무 숲을 지키던 수호신 훔바바가 엔키두와 길가메시 손에 죽임을 당한 이후 발생한 대홍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바빌론 유수 이후 성립된 유대교의 <구약>은 조로아스터교와 <함무라비 법전>, <길가메시 서사시> 등이 혼융되고 응축된 것이다.
유대민족의 종교였던 유대교는 훗날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발전해 세계적인 종교로 승화한다. 기원전 10세기부터 6세기 무렵 인도에서는 인과율에 기초한 윤회와 업(業)에 바탕을 둔 우파니샤드 철학이 성립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불교와 자이나교가 생겨난다. 서융의 공격으로 낙읍으로 수도를 옮겨야 했던 동주시대 이후 성립한 춘추전국시대에 이른바 ‘제자백가’가 등장한다. 세계 사상사에서 가장 풍요롭고 다채로운 시간대로 불리는 이 시기에 공자와 노자, 맹자와 장자, 묵자, 한비자, 순자 등이 각축하면서 인간구원과 부국강병을 설파한다.
기원전 6세기,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한 탈레스가 등장한 이후, 그리스에는 피타고라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이 나타나 서양철학의 근간을 놓는다. 그것에 기초해 그리스 고전철학이 개화한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공간의 세계사>(이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오근영 옮김, 다산초당, 2016, 56-62쪽)을 참조할 것. 축의 시대에 성립한 철학과 사상과 종교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3) 이에 대해서는 <유럽적 보편주의 권력의 레토릭>(월러스틴 지음, 김재오 옮김, 창비, 2008)을 참조할 것. 오리엔탈리즘과 유럽 중심주의를 혁파하자는 그의 주장은 깊은 울림과 설득력을 가진다. 유럽과 그 후예인 미국은 지난 500년 동안 기독교, 문명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가지고 세계 곳곳에 개입해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21세기는 더 이상 유럽적 보편주의가 작동해서는 안 되며, 보편적 보편주의 혹은 세계적 보편주의가 득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전초기지로 월러스틴은 대학의 재편과 통합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4)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 강진에서 주고받은 서한에 잘 나타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지음, 박석무 옮김, 창비, 2009)를 참조할 것.
(5) 필자는 경북대학교 제17대 전교교수회 부의장으로 2008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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