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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카톡 세상의 앨리스
이상한 카톡 세상의 앨리스
  • 김건희 | ‘카톡' 이달의 에세이 당선
  • 승인 2017.08.31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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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답이라는 말이 있다. 카카오톡이나 SNS 메신저에 글을 올렸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이 빠르면 우리는 ‘칼답이다’라고 말한다. 잘 드는 칼로 음식 재료를 썰면, 세게 힘을 주지 않아도 부드럽고 빠르게 썰린다. 메신저로 소통할 때면 모두가 날이 잘 선 칼을 하나씩 쥐고 있는 것 같다. 날카로운 칼에 숭덩숭덩 썰리는 도마 위의 식재료들처럼 스마트폰 세계의 소통도 빠르고 경쾌하게 이뤄진다. 어디야, 지금 뭐 해, 나는 어디야, 만날까, 바쁘면 말고! 두 명, 세 명 아니 그 이상 사람들과의 소통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일류 요리사가 칼을 제 팔처럼 능수능란하게 다루듯이 우리 세대는 빠르고 즉각적인 소통에 능숙하다. 

스마트폰을 켜고 ‘Talk’이 새겨진 노란색 어플을 누르면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프렌즈들이 모인 광장에 입성한다.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상대의 메시지에는 빠른 대답을 하고,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은 상대의 메시지에는 최대한 느리게 답하며 바쁜 척을 하면 된다. 어차피 상대방은 나를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관계를 단절하고 싶으면 메시지를 영원히 읽지 않는 방법도 있다. 사라지지 않는 숫자 1을 보며 상대는 애가 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피하면 되는 것이다. 소통이 어렵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이다. 이렇게나 쉽고 간단한데!
그런데 말을 거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이뤄지는 카톡 세상 속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고 헤맨다. 탁구 게임처럼 빠르게 치고 빠지는 한마디, 한마디 틈에서 나의 말은 목적지를 잃고 머뭇거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머뭇거림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칼답은 카톡방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생활에서 이뤄지는 대화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도 단축되고 있다. 날이 무딘 칼을 사용하는 나는 사소한 말 하나를 전하는 것도 어려워 오래 칼질을 한다. 기다리다가 지친 손님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나의 식당을 떠난다. 손님은 떠나고 식어버린 요리만이 처량하게 곁에 남는다.   

작은 화면에 검지를 붙였다 떼기만 하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시대다. 아니, 검지 손가락 터치 한 번이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믿는 시대다. 다수의 믿음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톨이가 된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평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림보는 자주 이방인의 얼굴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카카오톡 세상의 프렌즈들은 메시지 왼쪽 숫자가 사라졌는데도 답이 없다면 그건 당신의 마음을 읽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칼처럼 날카로운 소통 수단을 제 몸처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상대가 느림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나는 당신의 글을 읽었지만 사실 아직 읽지 못했는데요. 카톡 채팅방을 열어 당신의 마음을 보았지만 실은 당신의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확인했지만 확인하지 못한 당신의 수많은 메시지들이 여기 아직 남아있어요.” 미처 전달되지 못한 편지는 어쩌면 이런 내용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읽음 표시를 읽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숨 가쁘게 말을 걸고, 만나고, 마음을 주고받고, 불리한 상황을 만나면 뱉은 말을 신속하게 지워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완벽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말이 훼손되지 않은 채 원래의 의미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카톡 세상에서 꿈을 꾸는 앨리스는 누구일까? 일 년 전에 도착한 메시지를 오늘에서야 받아본 나일까, 숫자 1이 사라진 메시지 아래 침묵을 완벽한 차단의 의미로 이해하는 카카오톡 프렌즈일까, 나의 말이 곧 내 마음의 전부라고 믿는 당신일까. 

칼은 무디고 칼질은 서툴러서 오늘도 나의 말이 완성되는 시간은 ‘카톡 시간’의 몇 곱절이 걸린다. 내 시간이 더디게 흘러서 놓쳤던 인연들과 상처로 남은 오해들이 머릿속을 스칠 때면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칼을 갈고 싶지는 않다. 확신에 찬 날카로운 말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3생채기를 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조금 느리고 어설프더라도 지금처럼 무딘 칼로 꾹꾹 눌러 썬 진심을 전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   


글·김건희
가장 진귀한 것을 보기 위해 눈을 감습니다. 참된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닫고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오랜 침묵의 시간을 견딥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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