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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성공 과잉’(아메리칸 메이드)과 ‘성공 부재’(어 퍼펙트 데이)에 관한 어른들의 우화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성공 과잉’(아메리칸 메이드)과 ‘성공 부재’(어 퍼펙트 데이)에 관한 어른들의 우화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17.09.1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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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할 <어 퍼펙트 데이>와 <아메리칸 메이드>에는 눈에 띄는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아메리칸 메이드>는 한 인간을 도구로 다루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고, <어 퍼펙트 데이>는 끝끝내 인간은 도구가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차이점에는 각각 그들이 ‘국가’의 도구였는지 아닌지의 경계가 놓여있다. 이 설정은 <아메리칸 메이드>를 우연이 국가의 도구가 된 인간의 ‘성공 과잉’으로 이해하게 하고, <어 퍼펙트 데이>를 국가를 거부한 인간의 ‘성공 부재’로 이해하게 한다.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두 영화 모두의 마지막 에피소드 때문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어 퍼펙트 데이>의 그 에피소드는 그들이 하루 내에 부단히 해결하고자 했던 일의 성공을 이상하게도 허무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아메리칸 메이드>의 그것은 거의 한 인간이 반평생 동안 수행했던 일의 성공을 이상하게도 영웅적 방식으로 ‘보여주려’ 한다.
물론 여기에는 ‘실화’인지 ‘우화’인지의 경계도 놓여 있다. <아메리칸 메이드>는 영화도입부터 ‘실화’임을 강조한다. <어 퍼펙트 데이>는 누가 봐도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묘하게도 ‘우화’의 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두 영화는 우리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넌지시 말한다. ‘성공의 과잉’과 ‘성공의 부재’는 모두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마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성공의 과잉’은 결코 성공이 아니며 ‘성공의 부재’ 역시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것. 
 
 
▲ <아메리칸 메이드>
 
<아메리칸 메이드>의 ‘성공 과잉’의 스토리는 거대하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이 발버둥 쳤던 국가적 위상의 회복이 한 사람, 그러니까 배리 씰(톰 크루즈)에 의해 좌우될 수 있었던 상황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CIA를 위해 일하기로 작정한 배리는 잘 다니던 TWA 항공사를 그만두고 국가의 도구가 된다. 당시 공산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미국은 배리의 위법행위를 빌미로 그의 비행능력을 활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반대로 <어 퍼펙트 데이>의 ‘성공의 부재’는 보스니아 내전 후, NGO 구호단체 소속의 맘브르(베니치오 델 토로)와 그의 동료들이 한 마을의 ‘우물’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여러 인물들을 통해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 <어 퍼펙트 데이>
 
물론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성공은 <아메리칸 메이드>가 보여준다. 바로 이 성공이 ‘과잉’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 퍼펙트 데이>는, 어쩌면 ‘실패’라고 볼 수 있는 그들의 좌절은 ‘성공의 부재’에 가깝다. 여기서 성공의 부재는 성공의 순간 그들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두 영화 모두에서 시도되는 ‘성공의 과잉’과 ‘성공의 부재’는 결코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규정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서투르게도, ‘성공은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 돼버린다. 어떤 것이 성공의 과잉이고 부재인지, 그리고 그 둘 중에 무엇이 더 나은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두 편의 서사 속에 숨어 있는 채로 관객을 기다릴 뿐이다. 
 
지금 우리가 목말라 하는 그 성공, 그것이 자본주의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두 영화를 비교해 볼 것을 권한다. 성공은 스스로 규정할 길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두 영화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러한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 퍼펙트 데이>의 힘이 크게 작동한다. 마치 <어 퍼펙트 데이>는 이론적 배경이고, <아메리칸 메이드>는 케이스 스터디와 같이 작동하므로. 
바로 그런 의미에서 두 영화의 ‘실화’와 ‘우화’의 관계는 적절하면서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밀고나갈 수도 있겠다. 두 영화의 성공과잉과 성공부재의 이야기는 나의 삶에서 계속된다고. 
 
단지 두 편의 영화가 보여주는 성공의 몇 가지 논법(과잉인가? 부재인가?)을 통해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는 것은 그래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 퍼펙트 데이>와 <아메리칸 메이드>의 관계는 묘하게도 성공을 과잉과 부재로 바라볼 때 묘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이 두 영화의 관계는 현실 속 인간들이 자신의 환경을 어떻게 자신의 삶과 동화시켜내면서 성공과 실패를 규정해 가는 지를 넌지시 물어보기 때문이다. 
 
미국적 신화를 우회적(迂廻的)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비판적 서사의 결을 두텁게 하는 <아메리칸 메이드>와 어른 동화식의 단편적인 일회성 에피소드를 홑겹 이불처럼 다루는 <어 퍼펙트 데이>의 우화적(寓話的) 속성을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리석을 수 있지만, 성공과 실패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그래서 어쩌면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소개하고자 하는 이 글 속에 어떤 비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훈적 우화로서,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윤리적 우화로서, ‘성공 과잉’을 무조건적인 ‘성공’으로, ‘성공 부재’를 그저 안타까운 ‘실패’로만 볼 수 없도록 한다는 점에서 지지하는 마음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한 편의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이러한 메시지를 두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매우 드문 경험을 보다 많은 관객과 공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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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영화평론가)
지승학(영화평론가) info@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