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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낭만과 아버지’
‘낙엽과 낭만과 아버지’
  • 박소연 | ‘낙엽' 이달의 에세이 당선
  • 승인 2017.12.0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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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 아침, 얇은 코트를 걸치고 아침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나간다. 그리곤 오늘따라 더 열정적으로 수업하시는 젊은 교수님의 강의를 열심히 따라 잡아본다. 강의실은 50명 남짓한 학생들의 숨으로 훈훈하다. 이윽고 마칠 시간이 되면 채 가방 안에 넣지 못한 두꺼운 전공서를 팔에 끼고 짐짓 대학생인 티를 내면서 단풍 물 든 캠퍼스를 거닐어 본다. 학교 내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본관을 지나칠 때다. 주황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낙엽수들의 가지 위로 까치와 참새들이 종종종 뜀을 뛰자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그들과 함께 나뭇잎들을 우수수수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참 풍경이다, 싶은 상념에 젖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차라라라 날리는 잎들을 바라본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되고 싶다던, 한때 이 캠퍼스를 거닐었을 그 시인처럼 아름다운 시 한 수 짓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다 문득, 주름진 아버지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며 이 낭만이 내게 사치가 아닌가, 부끄러워진다.

아버지는 오늘 무엇을 하고 계실까. 지금 시각이면 벌써 바다로 나가 굴 채취 작업을 하시고 계실 테다. 저번 달까진 벼를 말리고 거둬들이느라 고생하셨을 것이고. 생각해보면 가을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아버지는 풍경을 한 번도 제대로 감상해보지 못하셨다. 이른 봄에는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느라, 여름에는 모판을 논에 옮겨 심고 모내기를 하느라, 가을에는 벼를 거둬들이고 겨울에는 바다에 나가 굴을 따느라. 진주남강 아무리 맑다 해도 시장 나가 일하시던 어매는 오명가명 신새벽에나 보는 게 전부였더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박재삼 시인은 누이와 함께 골방에서 몸을 맞대고 별을 보면서 어매를 기다렸다지만, 농사는 온 식솔들이 다 나서야 하는 중노동인지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일을 도와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농사는 기계가 다 하고 사람 손은 조금 밖에 안 드는 줄 알지만 그건 농사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속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쌀 한 섬을 담기까지, 농부는 논 한 마지기를 빼곡히 채운 벼를 털어 넓은 마당에 널고 가을 햇볕에 반나절을 말렸다가 해넘이가 시작되면 그 식구들이 쪼그려 앉아 바가지를 들고 그 벼를 일일이 담아서 쌀 포대 하나하나에 넣어야 한다. 다섯 명이서 짧으면 두어 시간, 길면 서너 시간까지 걸리는 그 일을 하고 있노라면 온몸에 먼지가 붙어서 간지럽고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때는 벼를 담느라, 등을 긁느라 가을이 가을인지도 몰랐다. 낙엽이 낙엽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시골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다는 나이를, 모르고 보냈다. 지금도 내게 가을은 그저 가을걷이를 해야 하는, 그 벼를 팔아 내 학비를 보태고, 식구들 1년 벌이를 해야 하는 지독한 생의 계절일 뿐이다. 내 아버지는 오죽했으랴.

그러나 어린 시절엔 미처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때론 날 좋은 가을날 도시락을 싸 들고 소풍을 간다는 친구네 가족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일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교복을 벗으면서 괜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나도 낙엽을 와삭와삭 밟으면서 밤 냄새, 꽃 냄새 맡으며 놀고 싶었다. 그래서 심술도 많이 부렸다. 일부러 마당에 나가지 않고 늑장을 부리거나 아버지와 함께 볏짐을 트럭에 실을 때면 툴툴거리면서 엄살을 부렸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때는 그저 아버지가 원체 무뚝뚝하고 딸에게 관심이 없어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 날 오후 전까지는.

뒷정리를 하고 오신다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집에 온 나는 자매들과 함께 안방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1박 2일’이라는 예능에서 연예인들이 가을 경치가 좋은 산으로 나들이를 가는 내용이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를 사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우리 아빠는 순 일밖에 몰라. 어린 딸들을 고생시키기나 하고. 다른 집은 똑같이 농사지어도 이런 날엔 잘만 놀러 간다던데’하고 투덜거렸다. ‘소연아, 아빠 옷 좀 내와라.’ 마당에서 일복을 벗으시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한창 재밌는데!’ 귀찮음을 얼굴에 잔뜩 뒤집어쓰고 아버지의 속옷을 꺼내 방 안에 내놓으려 했다. 그리고 뒤돌아 나가려는데 내 귀에 들리는 노랫소리.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곱쁜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노래하는 걸 들은 것은. 그게 나훈아의 ‘고향역’이라는 노래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일을 하느라 마을잔치에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동네 폐교에서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동네 사람들이 놀고먹고 하는데도 아버지는 묵묵히 모를 심고 벼를 담고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오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놀 줄 모르는 아버지. 재미없는 아버지. 일밖에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날 아버지의 그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동네잔치를 하면 으레 노래방 기계를 크게 틀어놓고 마을 청년들이 한 곡조씩을 뽑곤 하는데 그 소리가 산 가까이 붙어 있는 우리 집까지 바람에 실려 건너온다. 그런데 아버지가 논에서 그것을 홀로 듣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그때 처음, 아버지도 ‘낭만’이 있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아버지도 나처럼 놀고 싶고, 낙엽을 와사삭 밟고 싶고, 코스모스로 시작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은 사람이었음을.
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한 딸인 나는 얼른 눈물을 훔쳤을 뿐, 그때 일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뒤부터 가을에 아버지를 생각하면 애처롭고 아련한 기분이 든다. 마당을 어지럽히는 낙엽을 한쪽에 소담하게 쌓아놓고 매년 그랬듯 깨끗해진 마당 위로 벼를 잔뜩 부려놓을 내 아버지. 딸들 앞에서도 차마 부르지 못하고 속으로만 가만히 노래를 흥얼거렸을 내 아버지. 

낯선 사투리를 쓰는 지역으로 대학을 가면서 나는 가을걷이에서 해방됐지만, 늘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아버지는 아마 고향에 남은 언니와 함께 아침 일찍 벼를 부리고 해넘이 끝에 그것을 담았을 것이다. 본관에서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처럼 이 감상을 사치라고 생각했을 가련한 내 아버지를.   


글·박소연
저는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다니고 있는 박소연입니다. 스물 세 살이고, 출판 편집자가 꿈입니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쓰려고 노력 합니다. 따뜻한 글,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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