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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박종철과 이한열의 1987년이 영화에서 만나면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박종철과 이한열의 1987년이 영화에서 만나면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18.02.2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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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When the Day Comes>가 잃어버린 ‘영화 너머’

 

 

한국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2017년 12월 27일 개봉되어 2018년 벽두를 장식했다. 2017년이 1987년 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영화 개봉이 그해의 말미에 살짝 걸리도록 했지 싶다. 상업영화이지만 역사적 사건의 30주년에 개봉일자를 맞췄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함께 지닌다. 영화에서 상업성과 역사성의 동행 자체는 큰 얘깃거리가 아니다. 상업성이 역사성을 훼손하거나, 역사성이 상업성을 제약할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감독이 균형감각 혹은 선호를 통해 적정한 또는 감내할 만한 포트폴리오를 찾아낸다면 대체로 용인된다.

 

상업성이 역사성을 훼손하는 것뿐 아니라 역사성이 상업성을 제약할 것을 걱정할 정도로 영화에서 상업성은 기본값이다. 영화가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 예술양식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라고 표현하든 다른 무엇으로 표현하든 현존 자본주의에서 상업화 기제에 편입되지 않은 영화는, 또는 동시에 사회체제인 거대 상업화 기제의 하위 구조로서 소규모 상업화 기제를 작동시키지 못한 영화는, 영화로 존재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근대화와 함께 확립된 국민국가 시대에서 특정 국가에 국민으로 소속되지 않은 인간이, 인권을 보장받는 보편적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게 된 상황과 비슷하다. 이제 이 지구 상에서 국경으로 휘감아지지 않은 땅은 한 쪼가리도 없다. 상업화 혹은 시장화의 손실이 닿지 않은 땅 또한 한 평도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국민국가의 국경과 시장화의 불일치 속에서 법인인 다국적기업은 국민국가 시대에도 국경과 무관하게 보편적 ‘인간’으로 권리를 보장받고 있으나 예외적 현상이다. 외형상 영화 또한 세계화의 현상으로 국민국가의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유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유통경로가 자본이 깔아놓은 길에 한정된다는 측면에서 보편적 현상은 아니다.

 

영화 <1987>은 2018년 2월 말을 기준으로 누적관객 700만 명을 돌파했는데 410만 명이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져 있다. 손익분기점은 예술의 용어가 아니라 자본의 용어다. 당연한 얘기를 다시 확인하자면 상업화의 논리가 영화 <1987>을 탄생케 했다.

 

결국 지금 어느 영화감독이 모종의 역사의식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역사성을 상업화에 버무려내게 된다. 과거 선배들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섬세한 ‘장인’ 정신인 셈이다. 1925년에 세르게이 M. 에이젠슈타인 감독이 <전함 포템킨>을 발표하며 발휘된 장인 정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러시아의 1905년 혁명 20주년을 기념하여 이 영화를 만들면서 에이젠슈타인 감독은 오로지 역사성을 마주 대했을 뿐이다. <전함 포템킨>이 영화적으로 성취해낸 역사성은 영화사의 한 장을 장식할 정도로 성공적이고, 당대의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이었으며, 어떠한 상업성도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지하듯 역사성이 꼭 상업성, 즉 자본에 의해서만 제약되지는 않는다. <전함 포템킨>의 주목할 만한 성취와는 무관하게, 흔히 국가권력이 자본을 대체했을 때 영화에서 역사성은 종종 현존 역사로부터 부여되는 과도한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곤 했다. 그렇다면 흥미롭게도 시장만이 유일한 승자로 결론 난 지금의 소위 암울한 세상에서 영화는 역설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활로를 얻은 셈이다. 역사성의 과잉으로 인한 영화 존재론의 폐기가 현존 자본주의에서는 폐기된다. 이에 따른 역사성의 결핍이 자주 문제로 지적되지만 역사성과 상업성의 변증법과 관련된 영화 존재론은 건재하다. 블랙홀과 같은 우주 현상에서 목격하듯 무게를 과다하게 쌓으면 압착돼 결국 주변을 무화(無化)한다. 반면 팽창은 무게를 계속 잃어버리면서 우리 우주에서 보듯 사실상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다. 영화에 있어서 참을 수 없는 건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무거움이다.

 

영화가 자본주의의 첨단양식이며 동시에 영화가 (대중)예술이라면, 구호가 아닌 시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시’에서는 최종적으로 탈(脫)역사성의 역사성이 모색될 가능성이 남는다. 반면 ‘구호’에서는 역사성의 과잉이 역사성을 압살한다. 바다에 표류하였다가 큰 물 위에서 갈증으로 죽어가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성을 추구하는 감독에게는 그것을 상업화에 잘 버물리는 과업이 숙명으로 제시된다. 이 말은, 감독의 숙명이 동시에 관객에게도 숙명이 된다는 논리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좋은’ 관객은 역사성으로 포장된 상업성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상업성에 탑재된 역사성을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가시 많은 생선을 먹을 때와 같다. 물론 전제는 있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역사성의 맥락에서 연결되어 있을 때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유적으로 그냥 어묵을 먹는 게 더 나은 처지라고 할 수도 있다.

 

픽션과 사실(史實)

 

앞서의 얘기는 시대극에서 상업성이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허망한 판단으로 귀결한다. 상업성과 역사성을 구분하는 일보다 픽션과 사실(史實)을 식별해내는 게 사회적으로는 더 쟁점이다. 상업성/역사성과 픽션/사실 사이에는 기계적 연관관계가 없다. 예컨대 <전함 포템킨>의 결말이 분명 픽션이지만 역사성을 구현했다는 사실은 부인되지 않는다.

 

<1987>은 관객의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당대의 역사를 영화화했기에 극영화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에 근접한 성격을 띤다. 사실(史實)적 장치는 영화 전편에 걸쳐 곳곳에서 확인된다. 내 기억 속의 이한열에 비해 영화 <1987>의 이한열이 더 잘 생기고 더 세련된 느낌이며 어쩔 수 없이 더 나이가 들어 보이긴 하지만, 극중에서 강동원은 이한열이 1987년 6월 9일 최루탄에 맞았을 때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세로 쓰러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한열과 연희의 풋풋한 사랑은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사실보다는 픽션에 가깝다. 실제로 이한열에게 그런 연애사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있을 법한 이야기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서 영화 속에 배치하는가는 감독의 권한이지 역량이다. 때로 픽션이 더 현실적이며 현실은 비현실적이 될 때가 많다. 그렇다면 탁월한 감독은, <전함 포템킨>의 결론처럼, 비현실적인 현실보다 현실적인 픽션을 택할 수 있다.

 

이한열의 연애사가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의견이 있다. 영화 <1987>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관점의 문제이긴 하나, 영화 <1987>을 너무 다큐적으로, 또는 자신에게 기록된 역사의 대조본으로 파악했기에 빚어진 현상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는 박종철과 이한열이 모티프이다. 현실 역사에서 ‘1987’을 요약하면 박종철로 시작해 이한열로 끝난다. 현실에서 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그렇다. 그러한 역사적 긴밀한 관련은 우연에 불과하고 사실은 역사성의 의한 필연성의 설정이다. 아마도 박종철과 이한열은 실제로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 것이며, 역사성의 종합에 의거하지 않는 한 두 사건은 역사에서 별 개의 사건이다.

 

별개인 두 사건을 의미연관 속에서 하나로 묶어낸 역할을 수행한 게 역사성이었다면 영화적으로는 두 사건을 어떻게 묶어낼 수 있었을까. 별 개의 사건을 나란히 극화해서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역사성을 발동시켜 묶어내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는 영화 <1987>처럼 연희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하나의 스토리로 묶을 수도 있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이 숨진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연희를 통해 이한열로 연결된다. 누군가는 이러한 연결이 작의적이라며 불편해 할 수 있지만, 영화 <1987>이 극영화라고 한다면 그러한 작의는 감독이 결행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속한다고 보이며, 아마도 누적 관객 410만 명을 넘기는 데도 기여했을 것이다. 모든 관객이 날 것의 역사를 메마른 상태로 스크린에서 보기를 원했다고 가정할 이유는 없다.

 

더불어 영화 <1987>은 당시의 학생운동을 서울대생과 연세대생의 전유물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를 불러일으켰으며 극중 연희란 인물이 상징하듯 여성을 주변화했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그러한 두 가지 불편한 풍경에 대한 지적은, 물론 합당한 것이지만 영화에서, 특히 극영화에선 전능한 앵글이 없다고 할 때 불편한 방식은 나름의 방식으로 부작의의 소극적 역사성을 드러낸다. 나아가 영화화하는 방식의 불편함에 앞서 현실의 불편함이 존재했다고 한다면 부작의로 드러내는 역사성이 소극적인 수준에 그친다고 단언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관건은 영화화하는 방식의 불편과 현실의 불편 사이에 얼마만큼의 불일치가 있느냐이다. 불일치가 적으면 불편한 진실이란 적극적 모멘텀을 획득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영화 <1987>에서 정말로 불편한 지점은 ‘연희’ 같은 소소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86세대와 ‘1987’을 경험하지 못한 관객들을 울린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는 큰 흠결 없이 상당한 완성도를 구현했지만 동시에 근본적이고 영화 외적인 불편함을 노정했다. 과도한 요청인지 모르겠지만 시대극의 깊이를 결정짓는 핵심요소는 ‘영화 너머’에서 발견되는 ‘영화적 성취’의 유무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대극을 만들 때는 사건을 그려내면서 불가피하게 전체적으로 역사의 해석을 담게 된다. 러시아의 1905년을 그려낸 <전함 포템킨>이나 한국의 1987년을 그려낸 영화 <1987>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나에게 ‘1987’의 역사적 의미는 부분적으론 성취이지만, 또 부분적으론 좌절이다. 둘을 비교하면 좌절이 성취보다 큰 크기다. 그러나 영화 <1987>을 보고 나오면서 든 석연치 않은 생각은 영화가 ‘1987’의 성취에만 경도돼 있다는 것이었다. 1987년 이후 ‘1987 체제’는 사회불평등과 양극화,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의 상대적 하락 등 거대한 좌절을 산출했다. 금권과두제로 요약되는 이러한 끔찍한 좌절은 1987년의 민주화운동에 상응하는 새로운 변혁을 요구한다. 한 마디로 그날이 오지 않은 것이다. 반면 영화에서는 불확실하지만 그날이 온 것 같은 느낌을 풍긴다.

 

<전함 포템킨>의 결말은 사실(史實)과 다르지만,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전망을 영화적으로 성취했다는 측면에서 시대극으로서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요는 역사의식이다. 시대극을 만드는 감독은 불가불 역사를 취급하기에 어느 정도는 역사학자가 된 듯 역사에 접근해야 한다. 410만 명의 관객 동원, 눈물샘 자극 등과 같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과제 말고도 역사의 좌절과 성취를 함께 조명하며 가치를 담아내는 과업이 영화감독에게는 주어진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시대적 사건을 영화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때 감독은 예민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채 마땅히 직접 투사가 돼야 한다. ‘영화 너머’에서의 영화 외적 성취까지를 바란다면 말이다. 영화 <1987>은 나쁜 영화는 아니다. 한 번쯤 봐도 좋은 영화에 포함시켜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당대의 역사이고, 역사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생존한 사건을 다루는 감독에게 응당 기대하게 되는 시대정신 같은 건 안타깝게도 찾아지지 않는다. 영화 <1987>은 역사성을 잃어버렸다. 앞서 말했듯 영화에 있어서 참을 수 없는 건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무거움이겠지만 감독은 시대 앞에서 충분히 무거워져야 하지 않을까.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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