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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디폴트, 긴 악몽 각오하는 새 전략
국가 디폴트, 긴 악몽 각오하는 새 전략
  • 권희준/회사원
  • 승인 2010.06.07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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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4월호 ‘불량 채무국가의 선량한 꿈’을 읽고

 

<독자모임 소식>
충북 지역 독자모임 결성
충북 지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자 모임인 ‘크리에이티브 배스터드’(Creative Bastard)가 결성돼 활동에 들어갔다. 크리에이티브 배스터드는 매주 일요일 충북대에서 모임을 열며, 한 주는 <르 디플로>를 놓고, 나머지 주는 <르 디플로> 읽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 선정해 토론을 벌인다. 이 모임에 참여하려는 독자는 www.club.cyworld.com/textholic로 문의하면 된다.

올가을엔 부산국제영화제로
부산·경남 지역 독자 모임인 ‘르 디플로 드 부산’(cafe.daum.net/le-diplo-de-busan)이 5월 28~29일 경북 경주 일원에서 봄 모꼬지 행사를 열었다. 서울·경기 독자 모임 ‘르 디플로 아고라’(cafe.naver.com/lemondeagora) 회원도 참가한 이 자리에서 김성수 독자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또 전국 독자 모임을 구성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오는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때 각 지역 독자들을 초청해 전국 연대를 다지기로 했다.

 개인과 기업, 국가는 명백히 다른 범주의 존재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부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래 채권-채무 관계는 개인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권력을 장악한 이들은 거래라는 복잡한 절차 대신 수탈과 착취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국가가 부채를 지게 된 것은 개인 권리의 신장과 연결된다.

그 결과, 법인 격을 지닌 기업(은행)에 대해서도 국가는 부채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덕목(재산권 존중) 앞에서 그 의무를 다해야 했다. 그런데 불량한 국가가 채무를 불이행하겠다니, 이는 북한·이란·이라크 못지않은 ‘악의 축’이 될 만한 행위가 분명하다.

국가가 부채를 무시하겠다는 근거는 의외로 단순하다. 국가는 기업의 범주와 다르기 때문에 애초에 개인과 개인, 혹은 법인과 법인 사이의 사적 채무 관계로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채무의 근원이 은행인데, 이들을 돕기 위해 발생한 빚을 은행에 갚아나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 논리는 상당히 타당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장애가 남아 있다.

먼저 세상에는 이해가 다른 여러 국가가 존재한다. 그리스 사례의 경우, 최초 위기의 징후를 본 은행의 합리적인 행동은 스페인·포르투갈 같은 주변국을 금융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과정은 1990년대 말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모습과 흡사하다. 일명 ‘썩은 사과’ 이론에서는, 위험의 징조가 개별 국가(혹은 자산)의 실제 위험 정도와 별개로 잘못된 인식과 무지에 의해서도 충분히 퍼져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1) 그리고 그 고통은 순전히 국민의 몫이다.

이로 인해 전 국가가 동일한 이해로 은행 앞에 서지 않는다면 불량국가의 선량한 꿈은 다른 선량한 국가의 불행한 악몽으로 바뀌기 쉽다. 한 예로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 그리스 국채를 소유한 다른 유럽연합 국가 중앙은행(혹은 민간은행)의 보유자산 평가 가치가 떨어지고, 바젤 협약(2)에 따라 이들 은행의 신용등급은 하락한다. 이를 위기로 받아들인 은행(혹은 자본)은 자금을 회수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환 불균형은 다시 위기를 심화시킨다.

모든 국가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혹은 천연자원 등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채무불이행의 대가는 크다. 은행의 도움 없이는 무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채무불이행은 불행한 역사를 낳기도 했다. 독일의 채무불이행 선언에 맞서 프랑스가 루르 지대 점령에 나서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씨앗은 싹텄다.

설사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수 있는 국가조차 대부분 그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 과거 IMF의 도움을 거부하고 재기에 성공한 국가가 대부분 자원부국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국가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 채권자는 국가의 자산(주권)으로 빚잔치를 시작한다. 국가는 특정 자원에 대한 이권을 판매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한다. 채권 은행의 모국(주로 미국이나 서방 선진국)이 강제 집행 압력을 넣음으로써 자본은 이득을 얻는다. 이 모습은 구한말 주권의 수탈 과정과 흡사하다. 채굴권·벌목권 같은 국가 자산은 국채 상환을 대신해 외세에 넘어간다.

이 과정은 마침내 국내 경제 붕괴라는 거대한 고통으로 이어진다. 자본의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경제는 대규모 실업과 생필품 부족으로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시기와 같은 대규모 해외 이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동유럽과 남미의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가 있는 서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

그럼 국가는 법인 격에 불과한 은행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까? 그렇다. 게임의 룰이 바뀌지 않는 한, 국가는 은행에 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애초 게임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 막대한 책임과 권한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동일한 위치에, 아니 오히려 국가를 더 불리한 위치에 놓는 게임 속에서 은행을 이길 수 없다. 이미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손실을 입은 것은 개인과 국가였음을 확인했다.

게다가 게임의 룰을 바꾸려면 한 국가의 도발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참여자가 동시에 룰을 거부하고 새로운 룰을 만들지 않는 이상 카르텔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국가 역시 자신의 채무에 대해서는 불이행을 선언하고 싶어하면서도, 자국 내 은행이 가진 채권에 대해서는 받아내기 원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양자 관계가 영구히 고착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불평등의 관계가 고착되고 약자가 벼랑 끝에 몰리게 되면, 분명 룰을 무시하는 자는 나타날 것이다. 쥐가 급하면 고양이를 물 듯, 생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룰을 거부하고 무기를 든다.

결국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다만 먼저 나서서 선공을 날리기에는 그 대가가 고통스럽다. 자신의 고통은 고양이가 아니라 같은 쥐들에 의해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우리는 이런 불안감 속에서 서로 경쟁하는 열등한 전략으로 게임에 임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연대와 정책 실현을 통해 개별 국가가 한 번에 들고 일어나 틀을 바꿔야 한다. 비록 그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불온한 꿈을 계속 이어갈 여지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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