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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라는 정부
은행이라는 정부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0.06.07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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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알리미 칼럼]

지난 5월 10일, 7500만 유로의 막대한 유동성이 제공되자 투기꾼들은 잔치를 벌였다. 소시에테제네랄은행 주주는 23.89%의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같은 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재정 긴축을 이유로 각 빈곤층 가정에 150유로씩 제공되던 특별지원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위기가 반복되면서 정치권력이 주주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고 있다. ‘시장’이 자신에게 무해한 정책을 선별하면 정치인은 주기적으로 민주주의적 요식행위로 대중의 지지를 동원한다.

정치인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 퍼지면서 공직자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가 자신의 금융규제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골드만삭스를 훈계하자, 공화당은 곧바로 오바마와 그 측근들이 2008년 선거 당시 기업에서 받은 찬조금 리스트를 공개하며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 450만 달러. 공화당: 150만 달러. 정치인은 금융산업을 공격하지만 월스트리트가 제공하는 수백만 달러의 돈은 거절하지 않는다.”

영국 보수당이 빈곤층 가정의 생계를 염려한다는 구실로 주류 가격 하한제에 반대하자 노동당은 처음부터 이 제도에 부정적이던 슈퍼마켓 주인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상인들은 지금까지 술을 유인상품으로 이용해 청소년층 고객을 끌어들여왔다. 술값이 심지어 물값보다 싸진 이유다.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공영채널에서 광고를 없애자 광고 수주 경쟁을 완화해 자신의 친구들인 뱅상 볼로레, 마르탱 부이그 같은 민영방송사 사장들의 배를 불려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종류의 의심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걸 지난 역사는 보여준다. 그러나 심각할 수도 있는 사건들이 “그런 일은 늘 있어왔다”는 식으로 조용히 넘어가버리는 일도 많았다. 예를 들어 1887년 프랑스 대통령 쥘 그레비의 사위는 장식품 사업을 위해 장인과의 관계를 이용했다. 20세기 초반에는 스탠더드오일사가 미국의 주지사들을 쥐락펴락했다. 금융인 독재와 관련해서는 이미 1924년부터 ‘채권자의 국민투표’라는 말이 떠돌았다. 당시 국채 소유자들의 행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자본과 정치 활동의 관계를 규제하는 법이 하나둘 도입됐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령 ‘진보의 시대’라고 일컫는 1880~1920년과 워터게이트 사건(1974) 직후에 새로운 법이 도입됐다. 두 경우 모두 정치적 투쟁을 통해 가능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독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금융을 정부 관리 아래 두었다. ‘늘 있어온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기 마련이다.

변화의 방향 역시 변한다. 1976년 1월 30일, 미국 최고법원은 이전에 의회에 의해 도입된 정치자금 제한 관련법의 주요 조항을 폐기했다(Buckley v. Valeo 판례). 이 판례에 동원된 논리는 “공공 토론에 참여하기 위한 각 개인의 재정적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돈의 지출을 제한하면 표현이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는 이 판례가 더욱 확대돼 각 기업은 특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혹은 반대하기 위해) 원하는 만큼 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국가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난 20년간 옛 소련 공산당 간부들이 기업주로 변신하고, 중국의 기업주들이 공산당 간부직을 차지하는 게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고위 공무원이나 장관, 유럽의회 의원이 미국인 ‘동료들’을 본받아 ‘민간 부문’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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