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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크리스찬 베일이 발견한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미 서부의 서사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크리스찬 베일이 발견한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미 서부의 서사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18.04.1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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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몬태나>
 
 
 
*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몬태나>(원제 : Hostiles)는 서부극이자 로드무비이다.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몬태나>는 죽음을 앞둔 적과 함께 1000마일의 여정을 떠나는 전설적인 대위의 마지막 임무를 그린 올해의 DON'T MISS 무비"라고 할 수 있다.(영화사 홍보자료 中) 가장 큰 분류로 서부극이자 로드무비이지만, 그리 단순한 구성은 아니며 전언의 깊이도 깊다.
 
메소드 연기의 신, 크리스찬 베일
 
 
 
미국 서부시대의 끝 무렵 전설적인 미군 대위 조셉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이 주인공이다. 영화사의 홍보 포인트는 크리스찬 베일이다. 그럴 만도 한 게 한국 개봉 전에 해외에서 받은 영화평은 베일에 대한 칭찬일색이다.
 
믿을 수 없는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Empire Magazine)
최고의 배우 크리스찬 베일은 <몬태나>에서 연기 최정점을 찍었다.(Rolling Stone)
크리스찬 베일의 엄청난 연기와 올해 가장 돋보이는 촬영을 선보이는 영화(Film School Rejects)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Laramie Movie Scope)
 
영화 속 베일의 비중이 너무 크고 연기 또한 압도적이어서 베일의 연기에 대한 극찬에 나 역시 이견은 없다. "크리스찬 베일은 '다크 나이트'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주인공이자 <파이터>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라는 홍보문구가 홍보가 아닌 사실의 기술처럼 느껴진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요즘의 우리 기준으로는 부적절해 보이지만, 19세기 말인 당시 기준으론 노병(老兵)인 조셉 대위가 일생의 적 옐로우 호크 추장(웨스 스투디)을 1000마일 떨어진 호크 추장의 고향 몬태나 주 곰의 계곡으로 후송한다. 군 전역 전 마지막 임무이다. 출발 지점은 뉴멕시코 주 베린저 기지(fort berringer). 평생 적으로 살아온 두 사람을 포함해, 인디언과 토벌군이란 두 적대 진영의 사람들이 광활한 미국 서부를 종단한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어마어마한 종단여정에 제 3의 존재 로잘리(로자먼드 파이크)가 가세해 원정대가 완성된다. 극중 로잘리는 남편과 세 자녀를 인디언에게 잃고 조셉 대위 일행의 도움으로 간신히 땅에 묻은 뒤 무덤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미국의 북쪽 주 몬태나로 떠난다.
 
이 영화를 베일이 주도할 수밖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지만 로잘리로 분한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굳이 메소드 연기 같은 거추장스런 수식어를 붙일 필요 없이 두 주연 배우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특히 가족을 묻는 장면에서 파이크가 표현해낸 슬픔의 크기는 관객을 지배하고도 남을 터였다.
 
파이크가 생생하게 그려낸 칼로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은 슬픔과 베일이 하나의 아우라로 그려낸 시대를 적분한 고통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공감대를 형성하다가 말미에 절망을 덮은 새로운 시작이란 소통으로 결합한다.    
 
 
옐로우 호크 추장 역의 웨스 스투디의 연기도 나쁘진 않았다. 잔잔한 존재감, 혹은 이 영화 전편에 펼쳐진 서부의 장엄한 풍광 같은 본질적 존재감은 그러나 천천히 살펴보겠지만 배우 개인의 연기로 극복할 수 없는 본원적 한계에 부딪힌다. 단적으로 이 로드무비는 뉴멕시코에서 몬태나에 이르는, 북 아메리카 전역에 걸친 위도를 종단하는 대륙 규모의 여정을 끌고 가는데, 호크 추장이 자신의 고향 몬태나에서 이곳 출발지인 뉴멕시코로 잡혀온 흑역사의 참혹한 여정이 괄호 쳐진 상태로 존재한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면 한계는 불가피해진다.
 
호크 추장은 그러고도 말 그대로 이역만리에서 7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죽을 시점이 되어서야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되면서 귀향한다. 만일 호크 추장의 개인사적 고통과 그 민족의 더할 나위 없이 불행한 역사를, 호크 추장 역을 통해 드러내려 했다면 조셉 대위는 영화 속에서 설 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서부시대의 적대들(Hostiles)은 미국 역사의 치명적 오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대 각각의 적대가 동등한 잘못을 지니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등가로 환원되어 화해와 승화라는 탈(脫)역사주의적 결말로 치달았다는 게 아마도 이 영화의 사회과학적 흠결로 지적될 법하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시대에 등장하기 마련인 다양한 개인을 전형성 아래 그려냄으로써 그것이 역사성이 되었든 휴머니즘이 되었든, 무엇인가를 형상화하였다면 좋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몬태나>는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미국의 진보적 사학자 하워드 진은 <미국 민중사> 앞부분에서 "이런 갈등의 세계, 희생자와 가해자의 세계에서 알베르 카뮈의 표현처럼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생각 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고 말했다.
 
스콧 쿠퍼 감독은 일단은 생각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전술한 대로 숨겨진 아쉬움이 아쉽다. 영화 <몬태나>는 가해자의 편에는 서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대체로 희생자의 편에 서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해자의 프레임으로 사태를 그려냈다는 한계를 노정한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거니와 영화는 사회과학이 아니다. <몬태나>는 이러한 의도하지 않는 리얼리즘의 각성까지 포함해 많은 볼거리와 생각을 담은 까닭에 충분히 좋은 영화, 혹은 DON'T MISS 무비라는 평을 받을 자격을 입증했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역사 시간에 역사적 사건의 발생연도 외우는 걸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취급한 시대에 학교를 다닌 나는 1492년을 처음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그의 본국인 이탈리아 발음으로는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의 신대륙 발견'으로 외웠다.
 
1492년 10월 12일, 스페인을 떠나 항해한 지 69일째에 선원 하나가 "육지다! 육지다!"라고 외친다. 회항을 요구하는 선원들의 목소리가 거세질 무렵에 기적적으로 '신대륙'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이 유명한 일화에서 간단히 드러나듯, '신대륙 발견'은 철저하게 유럽인의 시각을 반영한다. 인디언의 시각에 의하면, 또 유럽인도 아니고 인디언도 아닌 우리 시각에 근거해도, 그곳은 신대륙이 아니었고, 따라서 발견된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아메리카라고 명명될 어떤 대륙에 유럽인이 처음으로 상륙한 사건이다.
 
그러나 영화 <몬태나>가 다루는 시기까지 북아메리카의 역사는 '발견'의 역사로 통째로 분식되었다.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를 연구한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서구인의 식민화는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됐다. 현지에 성숙한 문명과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가 존재하는 아시아를 상대할 때는 상업기지를 건설했고, 문명발전 정도가 낮고 기존 인구가 많지 않을 때는 유럽인을 직접 이주시켰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가 마카오 홍콩이고, 후자의 사례가 미국과 호주이다.(세 번째는 독일의 예와 같은 대륙 내의 식민화이다.)
 
역사에서 목격하듯 후자에서는 수 천 년을 이어온 현지의 모든 역사가 전면 삭제된다. 영화 <몬태나>의 시대적 배경은 이러한 전면적 삭제의 막바지이다. 호크의 귀향과 고향의 장례식 장면이 나오는 영화의 끝부분, 느닷없이 등장한 일단의 카우보이들이 "인디언 시체를 가지고 내 땅에서 나가라"고 말하며, 미합중국 대통령의 명령서까지 무시하는 것에서 '삭제'의 영화적 표현을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호크 부족의 땅이 어느새 백인 아메리칸의 땅으로 바뀌어 있었다.
 
두 남녀 주인공-한 사람은 유명한 인디언 학살자이고, 또 다른 사람은 인디언으로부터 가족을 살해당했으나 그전에 (의도 혹은 의식 없이) 인디언 땅을 약탈한 사람-은 불우한 인디언 추장의 귀향과 장례를 방해한 같은 피부색의 카우보이들을 처단한다. 그 과정에서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숨진 추장의 장례를 진행하던 추장 일가가 몰살하고 상대편 카우보이 일당도 전멸한다. 주인공 남녀와 인디언 아이가 살아남아 이제 수직이 아닌 수평방향인 시카고 쪽으로 이동해 새로운 시작을 모색한다.
 
결말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식상해 보이고 할리우드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극의 완성도가 높고 연출과 연기의 절제미가 구현돼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앞서 지적한 대로 가해자의 프레임을 통한 희생자 편들기는 극복할 수 없는 불편함이다. 시작 또한 굳이 따지면 희생자가 아닌 가해자 진영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다음의 한나 아렌트의 인용문에 근거한다면, 영화 <몬태나>에서 호크 추장을 비롯한 인디언은 결국 인간이 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모든 종말은 반드시 새로운 시작을 포함하고 있다는 진리도 그대로 유효하다. 이 시작은 끝이 줄 수 있는 약속이며 유일한 '메시지'이다. 시작은,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 되기 전에 인간이 가진 최상의 능력이다. 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와 동일한 것이다. '시작이 있기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새로운 탄생이 이 시작을 보장한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아름다운 서부
 
<스포트라이트><실버라이닝 플레이북><더 그레이>의 타카야나기 마사노부 촬영감독이 영화 <몬태나>를 촬영했다. 광활한 서부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스크린에 담아낸 마사노부 감독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에드워드 커티스의 <북아메리카 인디언>을 참고하여 스크립트의 모든 지점과 장면을 구상했다. 주요 촬영지는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과 시각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뉴멕시코와 콜로라도.
 
리얼리티를 위해 인공조명을 자제하고 최대한 자연광을 이용해 촬영했다. 특히 영화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비 내리는 밤 장면에서도 자연광을 활용하여 사실감을 극대화했다고 한다. <몬태나>에서 배우의 연기 못지않게 볼 만한 것이 영상이었는데, 전체적인 영상뿐 아니라 조화로운 색감의 완성도도 높았다. 스콧 쿠퍼 감독은 "<몬태나>를 찍으면서 시간 순서대로 촬영을 했다. 연출을 하는 나에게도, 촬영에 임하는 배우들에게도 순서대로 찍는 것이 도움이 됐다. 정말로 몬태나로 여정을 떠나듯 계획대로 함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4월 19일 개봉.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 그리고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으로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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