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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가?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가?
  •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8.04.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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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성 상실과 회복의 엇갈림
▲ <파렴치한 사회>, 1890 - 카미유 파사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 이후,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에 이어 사상 세번째의 남북정상회담이 지난달 27일, 남과 북의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판문점에서 열리면서 역사적인 남북 화해의 초석이 마련됐으나, 감히 이를 부정하는 세력들의 반(反)사회적인 행태는 더욱 극렬해지고 있다. 

독재와 권위주의로 점철된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정치적 유산으로 삼는 정치세력은 6.13지방선거용으로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촛불혁명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권에 대해 행정, 사법, 언론, 교육 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국가사회주의로 넘어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폄하해 과연 공당의 정치구호인지 의심케 한다.    

여기에 부정부패 사슬의 정점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단체의 회원들이 성조기와 이스라엘기, 심지어 일장기를 들고 도심을 휘저으면서 현 정권을 친북좌파로 매도하며, 문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보수 우파 정권이나 전경련, 삼성 같은 재벌들이 그들에게 막대한 활동비를 노골적으로 지원했을 법하지만, 새 정권이 들어선 현재는 재벌의 눈치 보기로 인해 하느님 섬기기보다는 목사 개인의 우상화에 열중인 일부 대형교회들과 권력 금단현상을 앓고 있는 보수 정치 세력의 지지를 주로 받고 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성조기와 이스라엘국기, 일장기를 흔드는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나름대로 ‘성실하게만’ 살아온 그들로서는 지금과는 다른 성격의 정권과 사람들, 또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지지한 권력자들의 말대로, “경제건설에 집중해”(이승만),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신념을 갖고(박정희), “정의사회를 구현”하며(전두환), “보통사람”으로서(노태우), “정의롭고 공정하게” 살아(이명박), “창조경제를 달성”하면(박근혜), 선진사회의 자랑스러운 국민이 될 법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승만 정권의 부패에 항거한 4.19혁명을 비롯해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부채질한 부마항쟁, 군부독재에 맞선 광주민주화혁명, 군부독재 연장에 반대한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가까이는 촛불시민 혁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거대한 저항운동은 그들 자신의 영광스러운 삶에 위협을 가하는 불온한 사건일 뿐이다. 권력자들의 ‘약속’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고, 현실은 부정부패와 비리, 비위, 탐욕, 위선으로 넘쳐나지만 그들의 미몽(迷夢)은 도무지 깨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애국심과 충성심을 요구한 권력자들이 국민들의 삶을 통제하고, 재벌과 결탁해 온갖 특혜를 주고 뇌물을 뜯어내는 ‘허가받은’ 삼류 조폭으로 드러나, 마침내 법의 심판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그들에겐 촛불혁명의 부름을 안고서 권력과 자본의 추잡한 야합을 단죄한 집권세력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헤칠 반국가세력이고 빨갱이 정권이며 용공세력인 것이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 역시 월드컵 축구경기 때면 “대한민국!”을 외치는 한국인이다! 다만, 권력의 질서에 대해 ‘순응 거부(Non-conformisme)’를 감히 생각지 못한 이들이다. 권력의 부름대로 형성된 주체 탓이다.

권력의 부름에 따른 주체의식, 순응주의로 변질 
 
흔히 4월과 5월은 혁명의 달이라고 한다. 올해는 권력에 순응적인 억압의 삶을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선언한 68혁명의 50주년이자, 부패한 권력에 항거하고, 기본적 자유권을 주창한 4.19혁명의 58주년이 되는 해다. 지구반대편, 8년이라는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공간의 젊은이들은 일제히 학교와 일터를 벗어나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고 온몸으로 기성질서에 대한 순응을 거부하고 나섰다. 1960년 이승만 숭미(崇美) 독재정권의 부패만연에 항거한 4월의 청년 외침은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동참을 이끌었으며, 196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5월의 외침은 언어와 외양이 달라도 세계 각 지역의 청년들에게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1960년의 한국 청년저항과 68년의 프랑스 청년저항에서 투사들이 기성질서에 도발적인 선언들을 쏟아내고, 투석을 하고 스스로 혁명이라고 외쳤다고 해서 혁명으로 평가받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나 프랑스에서, 기존 권력질서가 오랫동안 4.19혁명과 68혁명을 굳이 4.19학생 시위와 68운동이라고 부르며, 애써 ‘혁명’을 뺀 것은 당시 학생들의 급진요구와 변혁 강령이 현실정치에 영향을 줄 것을 적지 않게 두려워한 까닭에서일 것이다. 

예컨대, 4.19혁명 당시에 이승만 정권이 기도한 분단 고착화에 맞선 학생들이 소리 높여 외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와 68혁명이 “금지한 것을 금지하라”는 구호는 금기시된 삶에 대한 갈망이면서 동시에 현존 질서에 대한 완강한 거부로 읽힌다.  

혁명이 당장에 기존 질서를 뒤엎을 순 없다. 특히 4.19혁명과 68혁명처럼, 젊은 청년들이 주도하는 혁명은 지배와 탐욕을 목표로 하는 기성세대의 ‘노회한 혁명’과는 달리, 조직적이지도 않으며, 권력 지향적이지도 않았다. 불꽃처럼 피었다가 바람결에 빨간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5월의 장미처럼 강렬하며 순간적이었다. 그러기에 모든 ‘순수한’ 혁명은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자들의 기억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혁명을 부정하는 기성세대와 그 권력은 막강한 자본과 네트워크를 동원해 몇 트럭이 됨직한 분량의 자서전과 집단 전기, 연구서들을 발간해 자신들의 ‘공간과 시간’을 영웅적으로 왜곡하고, 혁명의 이름 없는 주체들과 혁명의 본질을 지우고, 심지어 왜곡시키기까지 한다. 

과연 4.19혁명을 비롯한, 광주민주화혁명 등 이 땅의 크고 작은 많은 혁명들이 기억투쟁에서 승리했다면, 과연 도심에서 그들이 그토록 당당하게 성조기와 일장기, 이스라엘 국기를 휘날릴 수 있었을까? 혁명을 경원시한 권력집단이 제멋대로 왜곡시킨 굴절된 시각을 무의식 깊이까지 내면화함으로써 ‘혁명의 치열한 역사’를 ‘타자의 하찮은 역사’로 치부하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빠진 탓이다.
    
거짓과 위선의 혁명신화, ‘전과 14범’ 이명박  

혁명은 단순히 역사적 기억을 더듬고, 유실된 자료들을 찾아 꼼꼼히 정리하는 전문가들의 기록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혁명의 대의를 혁명 이후에도 계속해 우리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해석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이른바 혁명의 공동체화가 필요하다. 혁명의 공동체화 작업이 제대로 객관적이고 엄밀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 자칫 그것은 거짓과 위선으로 뒤범벅된 ‘신화’를 낳는다. 

근래에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4.19혁명 이후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권의 한일수교회담에 반대한 63학생 운동의 지도자로 둔갑해 대통령까지 지낸 ‘전과 14범’ 이명박의 탐욕을 말이다. 혁명은 정치적 야망이 가득한 소수의 사람들이 전유하려 할 때, 자칫 참여자들이 기성세대에 대해 그토록 경멸한 이른바 ‘노인 정치’의 오류에 스스로 빠지기 쉽다.  

지금, 왜 우리는 다시 혁명을 말해야 하는가? 무능과 부패로 점철된 두 전 대통령과 그 추종세력의 패퇴가 단순히 촛불혁명의 마무리가 될 순 없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인 정권 아래 일상화된 국가기관의 위압적 통치, 대학의 반지성적 행정, 가부장적 위계질서, 반공주의에 입각한 냉전억압과 불관용의 정치사회문화, 물신주의적 가치관의 팽배, 자본과 권력의 야합과 순응주의 강요, 남북 간의 오랜 대결과 갈등 등은 여전히 중단 없는 혁명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특히 인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구조 아래,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주체성을 훼손당해온 여성과 청소년, 아이들의 외침이 새로운 혁명의 대의를 제시한다. 

어쩌면 당장의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시대적 혁명의 대의는 여성들의 미투(#Metoo)운동과 더불어, 청소년들의 참정권 운동일 것이다.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의 가부장 질서와 남성 지배의 문화에 대한 항거의 목소리라면, 청소년들의 참정권 운동은 청소년들까지도 기본적 자유권수호를 위해 시위에 적극 참여한 4.19 혁명의 본질적 복원운동이며, 군사정권 이후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강압적으로 가둔 주체성을 해방시키려는 자유의 외침이다. 

자신들의 참정권을 주장하며, 정성 들여 기른 머리카락을 파릇한 민둥산처럼 삭발한 청소년들의 눈물 섞인 외침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면서 온갖 부패와 탈법으로 구속되고 감옥에 간 두 전직 대통령의 무죄 석방을 주장하며 ‘친북’정권의 타도를 열변하는 기성세대의 외침과 슬프게도 겹쳐진다.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연필을 꼭꼭 눌러, 자유와 주체의식의 소중함을 기록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돼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해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 시인의 ‘푸른 하늘을’ 전문)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박스기사

역사는 되풀이 된다 : 비극에서 희극으로

1850년대 초반 마르크스는 역사학자가 된다. 그는 어떻게 사회적인 투쟁이 루이 보나파르트처럼 볼품없고 기괴한 인물로 하여금 영웅 역할을 하게 하는 상황을 형성하는 가를 지적한다. 또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주역은 그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 하는가를 미처 인식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늘 주요 인물과 과거의 사상에 의해서 재평가 된다.

헤겔은 모든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고 어딘가에 메모했다. 그런데 그는 한번은 위대한 비극이 되지만 두 번째는 볼품없는 희극이 된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당통과 코시디에르, 로베스피에르와 루이 블랑, 1793-1795년의 1차 산악당과 1848-1851년의 2차 산악당, 장군들을 거느린 꼬마하사와 빚진 소위들을 끌고나온 런던 순경이 각각 만든(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루이 나폴레옹을 비유한 것-역주) 천재의 브뤼메르 18일과 백치의 브뤼메르 18일이 그것이다. 여기에 처음으로 도산 위기에 처한 프랑스, 빚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될 운명에 처해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예전에는 국경지역에서 강대국들의 연맹이 있었다면 이제는 영국에서는 루게-다라스, 미국에서는 킨켈-브렌타노의 동맹이 있다. 예전에 알프스 산맥의 셍-베흐노 고개를 넘어야 했다면 이제는 쥐라 지방의 반대편으로 일군의 헌병대를 파견해야 한다. (…)


인간은 그들 고유의 역사를 만들지만 자유롭게 선택한 상황에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여건은 주어지고 과거에서 물려받는다. 망자가 된 세대의 전통은 살아있는 이들의 머리를 악몽처럼 짓누른다. 그들 스스로가 변화하고 현실을 뒤엎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했던 그 순간은 혁명적인 위기의 시대로 그들이 걱정스럽게 떠올리며 도움을 받기 위해 조상들의 혼령에 호소하고, 그들에게서 이름과, 구호, 의복을 빌려와 옛것의 존엄함을 두르고 차용한 언어를 사용해 새로운 드라마를 만든다. 이렇게 마틴 루터는 사도 파울로스의 가면을 썼고 1789-1814년의 프랑스 혁명은 로마 공화국과 로마 왕국을 따랐으며 1848년의 혁명은 1789년 혁명과 1790-1795년의 혁명적인 전통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초보는 언제나 자신의 모국어로 다시 해석하곤 하며, 습득한 언어의 사고방식을 흡수하거나 새로운 언어로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점점 새 언어에 익숙해져 더 이상 모국어로 생각을 안 하게 되고 원래의 언어를 잃어버리게 된다.


(…) 19세기 사회 혁명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미신을 떨쳐 내야만 혁명은 시작할 수 있다. 예전의 혁명은 스스로의 목적을 잊게 만드는 보편적 역사에서 차용한 과거의 찬란함이 필요했다. 19세기의 혁명은 죽은 자는 땅에 묻고, 고유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처음엔 내용보다 수사학이 넘쳐나지만, 이제는 수사학보다 스토리가 넘쳐 난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1994)
번역·유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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