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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나를 찾다
루브르에서 나를 찾다
  • 전강옥 | 조각가
  • 승인 2010.07.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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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버토리얼]

 


미술사를 보면 80개가 넘는 미술사조가 나타난다. 20여 년 전, 미술을 공부하던 나는 이렇게 많은 미술사조가 도대체 어떤 필연성의 고리로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물론 그런 의문은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강의실과 책에서만 배우는 미술은 생생한 경험에 대한 갈증을 일으켰다.

현대 미술이 파리보다 더 발달한 뉴욕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현대 미술의 현란함보다는 수천 년 이어져온 미술의 뿌리를 확인해보고 싶어 파리로 향했다. 프랑스는 멀리 선사시대 화가들이 남겨놓은 라스코 동굴 벽화로부터 최근의 현대 미술까지 수많은 미술사조가 태동했던 곳이다.

프랑스로 떠난 이후 그곳의 문화적 매력에 이끌려 15년 동안 공부하고 창작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찾았던 곳 중에 하나가 루브르 박물관이다. 사진과 글로 배우고 익혔던 작품 하나하나를 직접 찾아보고 확인하는 것은 조각가인 나에게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작품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헬레니즘 시대의 걸작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은 그 압도적 규모로 단번에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계단의 맨 윗부분에 있는 이 여신은 그 높이와 사실적인 묘사 덕에 실제로 날아오를 것처럼 생생하다. <밀로의 비너스>는 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부드러운 곡선 때문에 절로 손을 뻗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게다가 모든 그림은 실제로 보았을 때 색, 크기, 형태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평면적으로 숨어 있던 형상이 미술관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3D 입체화면처럼 촉각적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진품을 직접 보는 것은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것 같은 생동감이 있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것이지만 원근법을 몰랐던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 원리를 찾으려고 고군분투했던 과정을 살피다 보면 창작이란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절로 실감하게 된다.

루브르에서 느낀 것은 또한 전통의 소중함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만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태도에 변화를 일으키고 과거의 풍부한 유산에서 창작의 샘물을 길어 올리려는 자세를 갖게 한 것은 루브르 미술관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창작 정신이지만 새로운 것이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움이란 전시대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려는 것뿐 아니라 전시대를 극복하려는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미국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미술은 무엇보다도 연속성이다. 과거가 없이 그리고 또한 과거의 탁월한 규준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구속력 없이 모더니스트 미술은 불가능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예술 작품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감동보다도 나에게 루브르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미술사에 있어서 나의 위치와 내가 누구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작가로서의 자기 발견의 장소이자 기회였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정신사적 인간 존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다. 족보가 혈통 관계의 근원을 밝혀주듯 미술관은 인류의 문화적 근원과 예술의 진화를 밝히며 미술이라고 하는 신비한 정신활동의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미술관은 단지 예술품을 모아둔 장소가 아니라 정신사의 근원을 밝히는 살아있는 미술사다. 뜨거운 이 여름, 이열치열의 자세로 자신의 문화적, 정신적 자아를 찾아 루브르로 떠나는 것만큼 가치 있는 여행도 없을 것이다.

글·전강옥

소르본대 조형예술학 박사. 프랑스미술협회 제니 드 바스티유 회원, 프랑스미술가협회 아르슈 회원, 죈 크레아퉤어 콩쿠르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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