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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마르크스, 사랑의 또 다른 이름
  • 손광모 | ‘마르크스' 이달의 에세이 가작
  • 승인 2018.04.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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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에게 부산은 아름다운 바다와 고층 빌딩, 성대한 영화제로 기억되는 도시다. 하지만 내가 사는 부산은 그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높은 고갯길에 자리한 까닭에, 바다보다는 달과 더 가까운 동네. 내가 살아온 부산은 참으로 가련했다. 보이는 불평등과 함께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크고 작은 상처들과 함께 자랐다. ‘학교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내가 사는 동네를 벽으로 쳐서 막아버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선생들. 어릴 적에는 나도 이런 어른들의 눈길로 우리 동네를 바라봤다. 바다가 보이는 부산에 살고 싶었고, 고개와 달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모든 단단한 것들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전국을 휩쓴 재개발 열기 속에도 이 가난한 동네는 소외됐다. 하지만 단단할 것만 같았던 내 어린 생각은 점점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어느새 이 가난한 동네의 공기가 내 몸의 일부가 돼 있었다. 골목골목에 삼삼오오 모인 할머니들, 도로에 그려진 아저씨들의 윷놀이 판, 슈퍼 앞쪽 평상에서 언제나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정겨우면서도 한이 서린 원미동 사람들의 모습이 이랬을까? 떨쳐버리고 싶어 했던 풍경에서 다정함을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렇듯 성숙을 자기로썬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말한다. 하지만 늘어가는 나이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을 때조차 한 가지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이상스레 어린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나는 공공연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비혼주의자임을 자청하고 다녔다. 비혼을 택한 건 내 나름의 숙고의 결과였다. 삶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지 않고서 살아남기 힘든, 가난한 ‘헬조선’의 일원으로서 현실과 또 다른 한편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길 원하는 나의 욕망 사이의 절충점이자 타협이었다. 내 욕망은 행복한 ‘가족’보다 행복한 ‘사람’이 먼저였다.  

이런 결정, 포기에 있어 나 스스로는 슬픔이나 좌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여유조차 없었던 걸까.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속에 있는 모든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떳떳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말이 구현하는 현실 속에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큰 폭력이자 권력이다. 

어머니와 설전을 벌였던 그 날 저녁을 너무나 후회한다. 어머니로서는 말할 수도, 듣기에도 괴로운 말을 무감각하게 저지른 것이다. 어쩌면 내 모든 역사를 부정하는 말이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결혼하지 않겠다. 어머니와 내가 공유했던 그 삶을 다시금 반복할 것 같아 두렵다.” 

그날 새벽, 이 동네의 공기를 같이 마시고 자란 내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다 그만한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형제’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친구들이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내가 뱉었던 말의 무게는 비워지는 술잔만큼 가벼워지고, 부끄러움은 무거워져만 갔다. 어째서 이 동네를 받아들이는 것. 그만큼만이라도 내 가족과 어머니의 역사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충분한 숙고를 거쳐 세상과의 타협안이라고 생각했던 ‘이상적인 내 삶’, 그 또한 단순히 지금 삶의 부정에 불과했다. 나는 여기, 지금의 내 가족이 아닌 행복한 가족을 누구보다 많이 바랐었다.

오래전 읽었던 이청준의 소설, 『눈길』이 생각났다. 나는 절대로 덜어낼 수 없는 ‘빚’을 애써 외면하려 한 게 아닐까. “그 노인에게 내가 진 빚은 없어. 아무렴. 빚이 있을 리 없어.” 비혼을 선언하고 다닐 때마다 이 한 줄을 스스로 되새겼다. 그렇게 어머니의 역사를 외면하고, 옹졸한 나의 윤리를 내세워 현실을 합리화했다.

그 일이 있곡 난 뒤 친근한 친구들은 종종 짓궂게 “아직도 비혼주의냐?”라고 묻곤 한다. 이젠 선뜻 아니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여전히 결혼제도에 대한 거부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감싼다. 확실한 정답은 사라지고, 모순이 나의 머릿속에 가득하다. 하지만 이상스레 마음은 홀가분하다. 혼란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분명하다. ‘모두의 행복’이라는 새로운 지침은 나를 환하게 밝혀준다. 

마르크스는 나를 혼자만의 비극에서 꺼내 ‘우리의 이야기’ 속으로 데려다줬다. 번번이 마르크스에게 빚을 진다. 내게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투쟁과 평등보다 ‘사랑’이다. 주어진 현실을 피하거나 혹은 부정하려 할 때면, 매번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여기 이 자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단지 냉혹한 현실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나의 욕망은 마르크스와 함께 뾰족한 창이 돼 현실에 꽂힌다. 마르크스라는 이름과 함께 내 삶은 사랑으로 가득한 투쟁이 된다. 현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러나 희망적으로 변한다.  

글·손광모
에디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는건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로 우리가 잊으려 했던 걸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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