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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선견지명, 보수를 재구성하라
노무현의 선견지명, 보수를 재구성하라
  • 김상봉/전남대 교수·철학
  • 승인 2010.07.12 15:5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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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으나 부결되었다. 세종시 법안 원안은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에는 원안에 찬성하고 사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약속했으나, 취임 후 표변해 이러저런 이유를 들어 세종시 원안을 공공연히 거부하기 시작했다.

통과 당시 한나라당이 찬성한 세종시 법안을 한나라당 출신 대통령이 거부한 속사정은 알 길 없지만, 한 가지 객관적 사실은 세종시 법 원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을 때 한나라당의 대표가 박근혜 의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이 법안을 반대하고 수정안을 제출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의 결정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뜻도 있으니, 한나라당 내 박근혜계 반발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된 수정안을 기어이 국회 본회의 표결로 가져갔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과 한나라당 내 박근혜계 의원의 합세로 수정안은 105 대 164로 부결되었다.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만은 예외적으로 단호한 태도를 밝혔다. 이번에도 표결에 앞서 굳이 발언을 자청해 수정안에 대한 자신의 반대 입장을 한 번 더 분명히 했다. 지난번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표현되었고, 박근혜계 반대로 통과되지 않을 것이 뻔한 표 대결을 이명박 대통령이 어쩌자고 끝까지 밀고 갔는지 그 의도를 헤아릴 수 없다.

▲ <데칼코마니>, 1966-르네 마그리트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로써 한나라당 내에서 누가 이 대통령 편이고 누가 박근혜 의원 편인지 확연히 드러났고,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2012년 총선 공천에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바로 이것을 위해 기어이 누가 누구의 편인지 확인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나라당 내에서 여전히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박근혜를 따르는 사람보다 배가 된다는 사실에만 만족해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그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직 모르는 것이니, 그에겐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1971년의 일이다. 당시 공화당은 크게 세 계파가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하나는 5·16 쿠데타에 참여한 군인 출신으로서 박정희 직계, 다른 하나는 같은 군인 출신이라도 김종필계, 그리고 민간인 출신의 정치인들이었다. 당시 총리는 김종필이었는데 야당인 신민당이 오치성 내무부 장관을 비롯해 몇몇 장관의 해임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적이 있다. 공화당은 국회 다수당이었으므로 해임동의안은 단지 정치적 공세일 뿐 실제로 통과되리라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다른 두 장관에 대한 해임동의안은 부결되었으나,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동의안은 통과되었다. 그와 경쟁관계에 있던 김성곤 재정위원장을 비롯한 민간인 출신 공화당 국회의원들이 집단적으로 해임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표결 결과를 보고받고 박정희 대통령은 불같이 노해 찬성표를 던진 20여 명을 중앙정보부에 연행해 죽지 않을 만큼 구타하고 고문한 뒤 당에서 제명하고 주동자들을 강제로 정치에서 은퇴시켰다. 쌍용 창업주 김성곤 재정위원장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구타와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멋있게 기른 카이저 콧수염이 뽑혀 나갈 정도로 건강하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나왔다. 그 후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몇 해 더 살지 못하고 1975년 62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 의원은 물론 친박계 국회의원이 아무리 대통령 뜻에 반대해 표결하더라도 박정희 시대처럼 국가정보원에 불려가 고문당할 것을 염려하지 않으니, 역사는 그렇게 조금씩 진보하는 것이다.

적과 아군이 선명해졌다

정치적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지만, 한국 정치에서 좀처럼 진보하지 않은 분야가 한국의 정당정치다.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말했듯이, 정치가 적과 동지의 구별에 기초한다면 모든 정당은 현실의 어떤 대립을 반영한다. 정당의 대립 구도가 현실 대립을 충실하게 반영할 때, 그렇게 대립하는 정당 역시 현실적 존재 이유를 얻게 된다. 그런데 현실의 대립은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고, 정당의 대립 구도 역시 그에 따라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당이 현실의 대립과 무관하게 서로 대립하게 되고, 이때 대립하는 정당은 현실의 대립을 조정하고 해결하지 못하면서 현실과 무관한 대립과 갈등을 재생산하게 된다. 지금 한국의 거대 정당 처지가 바로 그러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은 거슬러 올라가면 남한 사회의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대립이다. 이 대립 구도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온 까닭에 대다수 한국인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을 자명하고, 불변하며, 현실의 대립을 반영하는 객관적 대립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가나 학자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아서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대립 구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대립 구도가 2012년 총선과 2013년 대선까지 그대로 이어지리라 가정하고 선거의 승리를 위해 각자 당을 쇄신하고 연합 정치를 궁리한다.

6·2 지방선거를 전후해 범야권에서 논의되었고, 지금도 논의 중인 이른바 ‘진보의 재구성’이나 ‘진보 대연합론’ 같은 것도 동일한 고정관념에 따라 한나라당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한 뒤, 어떻게 하면 이번 선거의 승리를 더욱 중요한 다음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궁리하는 정치공학적 계산이다. 하지만 선량한 사람들에게서 비난 살 것을 각오하고 감히 묻노니, 도대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아직도 그렇게 물과 기름처럼 대립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본질적 모순은 군부독재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 땅의 우익 정당은 의회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 독재자들이 만든 정당이다. 한나라당 역시 뿌리에서 보자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그렇게 만들어진 독재자의 정당에 대항하는 정당으로 존속해왔다. 두 당의 대립은 독재자의 존재를 통해서만 현실 적합성을 얻는다. 하지만 누가 지금 독재자인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많은 사람이 그를 과거의 독재자들과 거의 다름없는 사람으로 취급해왔다. 그렇게 볼 만한 면이 많은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박정희나 전두환과 다르지 않은 최고권력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는 이미 집권 중반기에 레임덕에 빠져든 5년 단임 대통령에 지나지 않는다. 세종시 수정안의 표결에서 보듯 여당 의원의 3분의 1이 대놓고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표를 던져도 더 이상 그들을 국가정보원에 연행해 고문할 수 없다.

물론 아무리 과거의 독재정권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반민주적 행태를 들자면 얼마든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극우적 행태가 민주당과의 대립 구도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민주당이 지금에 와서는 있지도 않은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 진보 정당 행세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진보 정당 흉내를 내는 것이나, 한나라당이 극우 정당으로 기우는 것 모두 현실로부터 괴리된 ‘사이비 대립’을 현실적 대립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한 가면이다. 근본에서 보자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정치자금을 받아 재벌을 위한 정치를 하면서 노동자에게 적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었지만,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초반에 대북송금 특검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켜 대북관계를 냉각시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것처럼 박근혜 의원 역시 김 전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2002년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금 이명박 정부가 이어받고 있다.

한나라당-민주당의 과장된 대결

그렇다면 무엇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여전히 적대적 대립 속에 묶어두고 있는가? 그것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 대립이다. 두 보수 정당이 모두 이 지역 대립에 기생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두 보수 정당이 사이비 대립을 연출하는 것이다.

여러 해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비웃었으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나아갈 바른 길이었다. 이념적으로 차이 없는 정당들이 지역 기반이 다르다고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한, 한국 정치에 정상적인 이념적 대립 구도가 형성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한국 정치의 근본적 발전을 위해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은 진보의 재구성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보수 정당의 대통합이다. ‘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이제 물음을 바꾸어 ‘왜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자유선진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이 옳다.

이런 제안이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길 권한다. 첫째는 지난 6·2 지방선거의 결과다. 많은 이들이 지난 선거를 반MB와 민주당의 승리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일 뿐이다. 근본에서 보면 그 선거는 노무현의 승리였다. 그것은 강원도의 이광재 후보에서 경남의 김두관 후보까지 ‘노무현 사람’들이 선거에 승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무현이 추구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이번 선거를 통해 전반적 승인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그 가치란 고질적인 지역 구도의 타파다. 경남에서 김두관 후보가 당선되고, 부산에서 김정길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45%를 득표한 것은 적어도 부산·경남의 민심이 더 이상 이전처럼 맹목적 지역 구도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을 의미한다.

지역정당 틀 깨고 보수 대통합을

다른 하나는 이번 세종시 수정안 표결에서 보듯 한나라당의 박근혜계가 민주당과 연합해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는 것은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계속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통해 민주당과 한나라당 박근혜계 사이에 실질적인 연합이 진행될 것이다. 특히 현재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은 한나라당 내의 박근혜계와 이명박계를 다시 분열시키는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만의 고유 치적으로 여기는 중요한 역점 사업이지만 세종시 수정안 이상으로 국민의 반대가 강하다는 점에서 박근혜 의원으로서는 이명박 편을 들어 선뜻 지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야당과 한나라당 박근혜계가 연합해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켰듯이 다시 한번 둘이 연합해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2012년 총선과 다음해 대선에서 어떤 방식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누가 알겠는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박근혜계가 동서화합과 남북의 평화공존,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을 내걸고 합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몽상에 지나지 않지만 진심으로 한국 정치를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듯이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그리고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하는 국민참여당이 지역주의를 버리고 대승적으로 통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렇게 보수 색깔이 분명해져야 진보 역시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시적 전망을 접는다 하더라도 4대강 사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한다는 절박한 이유 때문에라도 그 사업에 반대하는 야당은 이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공조하기를 원한다.

글•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이사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학벌사회-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한길사·2004), <도덕교육의 파시즘>(길·2005), <서로주체성의 이념>(길·2007),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한울·2007),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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