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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혼란속에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아름다운 혼란속에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 서곡숙 | 영화평론가
  • 승인 2018.07.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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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펠리니를 찾아서>
▲ 영화 <펠리니를 찾아서> 중

1. 패러디 로맨스물 <펠리니를 찾아서>

 
패러디는 아이러니적 거리감과 차이를 가진 반복이다. 최근 개봉한 <펠리니를 찾아서>(In Search of Fellini, 2017)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나는 미국 여성 루시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길>을 비롯한 펠리니의 영화들을 패러디하고 있는 로맨스물이면서, 원텍스트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2. 친구가 있는 한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네
 
<펠리니를 찾아서>에서 루시는 엄마 클레어와 이모 케리와 함께 살고 있다. 루시는 꿈속에 살고 있는 클레어와 현실 속의 경험을 중시하는 케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클레어의 과도한 보호 때문에 루시가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케리는 클레어를 비난한다. 클레어의 불치병, 자신의 독립을 바라는 가족, 펠리니의 <길>(1954)에 대한 감동으로 루시는 펠리니를 찾아 이탈리아로 길을 떠난다.
 
현실을 외면하고 영화 속에 살고 있는 클레어와 루시는 서로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영화로 위로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클레어는 펠리니의 영화들을 계속 보면서 루시를 이해하게 된다. 루시는 커피잔과 영화관 옆자리에 엄마 사진을 올려놓음으로써, 클레어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한다. 클레어와 루시가 항상 보는 영화 <멋진 인생>(1946)에서 천사 클라렌스가 조지 베일리에게 말한다. “친구가 있는 한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네.” 클레어와 루시는 서로의 부재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클레어와 루시는 ‘엿듣는 시선’과 ‘공허한 독백’을 통해 서로를 위한 배려와 소통을 보여준다. 우선, 루시가 이탈리아로 간다는 전화 통화를 클레어가 엿듣고, 클레어가 불치병이라는 대화를 루시가 엿듣지만, 둘 다 서로 모른 척한다. 엿듣는 클레어의 얼굴 클로즈업, 루시의 눈 익스트림클로즈업을 통해 그들의 시선과 심리를 강조한다. 다음으로, 클레어가 “뭘 하고 싶은데?”라고 질문하고, 루시가 “난 뭔가 필요해요”라고 답변하지만, 이러한 질문과 답변은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화면의 오른쪽을 바라보는 클레어와 화면의 왼쪽을 바라보는 루시의 얼굴 클로즈업을 교대로 보여줌으로써, 영화적 컨벤션에 익숙한 관객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둘 다 각자 자신의 방에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독백으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클레어와 루시의 이러한 엿듣는 시선과 공허한 독백은 직접적인 대면과 대화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속의 배려와 소통을 보여준다.
 
▲ 영화 <펠리니를 찾아서> 중

3. 환상은 유일한 사실주의다

<펠리니를 찾아서>에서 루시는 펠리니의 영화 속 환상을 현실로 체험하게 된다. 루시는 <달콤한 인생>(1960)의 인물과 흡사한 로버트, 실비아와 <8과 1/2>(1963)의 귀도와 흡사한 영화감독 귀도를 만나 밤의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에 루시는 베로나의 줄리엣 생가를 방문하여 피에트로와 만나 <로미오와 줄리엣>(1968)처럼 짧지만 달콤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때 <카비리아의 밤>(1957)의 여주인공과 똑같은 카비리아가 나타나 충고한다. “남자랑 자도 남자를 믿으면 안 돼. 남자한텐 네가 필요해도 너한테는 남자가 필요 없어, 젤소미나.” 
 
루시가 환상적인 현실을 체험하는 모습을 교차편집, 악수, 시선 등으로 표현하면서, 극적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우선, 클레어가 보는 ‘펠리니의 영화 장면’과 루시가 경험하는 ‘펠리니의 영화 같은 장면’이 교차 편집되고, 이러한 반복과 차이를 통해 앞으로의 여정을 기대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루시와 피에트로의 마주 잡은 손과 은밀한 시선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면서, 두 사람 관계에 대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네오리얼리즘은 사실주의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물의 단순한 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인생의 내면적인 진리를 파악하려고 하는 예술의 경향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펠리니는 무의식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을 만들었다. “환상은 유일한 사실주의다”라는 펠리니의 말은 환상을 통해 보여주는 리얼리티의 양면적 속성을 나타낸다. 루시에게 있어서 펠리니를 찾아 떠난 여정은 펠리니의 영화에 대한 패러디를 통해 그 의미가 깊어진다. 펠리니의 인물들이 겪는 환상, 혼란 등을 직접 체험하게 되면서, 루시는 자신의 현실적 문제를 인식하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4. 세상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어
 
<펠리니를 찾아서>에서 루시는 <길>의 젤소미나와 비슷한 여정을 겪지만, 젤소미나와 달리 능동적인 자세로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나선다. 20세인 루시의 정신연령은 13세 정도이며, 세상 경험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점에서 젤소미나와 유사하다. 젤소미나처럼 사슬을 몸에 두른 잠파노와 같은 남자를 따라 얼떨결에 길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길>의 나자레노와 같은 피에트로의 격려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게 되면서, 젤소미나와 달리 루시는 잠파노 같은 인물인 플라시도에게서 떠난다. <길>에서 나자레노가 젤소미나에게 말한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어. 그 돌도. 너도.” 
 
<펠리니를 찾아서>는 교차편집과 공중촬영을 통해 관계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반면, 트래킹/핸드헬드, 소품 등을 통해 관계의 차이를 드러낸다. 우선, 루시의 얼굴 클로즈업을 젤소미나의 클로즈업과 교차편집하면서, 젤소미나와 루시를 동일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공중촬영을 통해 피에트로와 플라시도라는 이성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루시와 피에트로를 따라가는 트래킹, 검은 실루엣을 통해 설레는 여정을 보여주는 반면, 루시를 쫓는 플라시도를 따라가는 핸드헬드로 루시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또한 피에트로가 루시에게 선물하는 시계와 반지는 그녀와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과 사랑의 맹세인 데 반해, 루시를 강제로 겁탈하려는 플라시도의 파티에서의 가면은 위협과 이중성을 암시한다. 
 
5. 네가 나의 펠리니라고
 
<펠리니를 찾아서>에서 펠리니를 찾아 떠나는 루시에게 펠리니는 세 가지 의미, 즉 세상, 자아, 사랑으로 변화한다. 첫째, 펠리니는 두렵고 낯선 세상에의 경험이다. 루시는 베로나에서 술이 든 럼볼을 먹고 취하고, 카바레에서 밤새워 춤을 추고, 원형경기장과 탑에서 소리를 지른다. 둘째, 펠리니는 새로운 자아를 찾아 나서는 도전이다. 루시(=루치아=빛)는 자신의 이름이 펠리니의 별명(=등대)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게 된다. 셋째, 펠리니는 진정한 사랑과 그것을 대면하는 용기이다. 펠리니가 좋아하는 세 가지인 “사랑, 사랑, 사랑”처럼 루시는 자신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피에트로가 루시를 ‘펠리니’라고 부른 것처럼 루시도 자신에게 피에트로가 ‘펠리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펠리니는 영화에서 세상, 자아, 사랑이라는 다양한 의미를 구축하며, 매혹적인 대상으로 인물들 사이를 순환한다. 펠리니는 이름이 있지만 실체는 없고 오직 대리인의 전화나 TV 속 인터뷰 영상으로만 그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펠리니는 그 어떤 것이든 채울 수 있는 텅 빈 여백이자, 끊임없이 교환되고 갈구하는 목적이라는 점에서 매혹적 대상이다. 
 
<펠리니를 찾아서>에서 원텍스트에 대한 세 가지 시선을 통해 펠리니의 영화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첫째, 펠리니 영화제 관객들은 펠리니 영화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의상을 입고 그 환상에 동참한다. 둘째, 루시는 펠리니의 영화들에서 ‘인간애’와 ‘색다름’을 느끼고 그의 영화들과 같은 삶을 꿈꾸며 길을 떠난다. 셋째, 클레어는 패러디스트로서의 비평적 시각을 견지한다. 펠리니 영화가 추잡하고 가슴을 노출시키는 영화, 우울해서 암보다 영화보다 죽을 것 같은 영화, 앞뒤가 맞지 않아서 플롯을 이해하기 힘든 영화, 옷을 입다 말아서 보기 불편한 영화라며, 클레어는 펠리니 영화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마지막 영화인 <길>을 보면서 루시가 왜 펠리니를 좋아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원텍스트의 직접적인 인용은 펠리니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의 이해를 도와 활발한 상호작용의 즐거움을 창출한다.
 
6. 너가 원하는 건 실은 가까이에 있어
 
목요일의 아이는 길을 떠난다. ‘패러디’는 ‘길’과 연결된다. <펠리니를 찾아서>에서 루시는 자신을 규정짓는 단 하나의 의미를 거부하며, 이전의 자신과는 반대되는 여정을 떠난다. 루시는 펠리니를 찾아서, 자아를 찾아서, 그리고 사랑을 찾아서 떠난다. 루시가 떠나는 길은 바로 과거와의 단절이고 새로운 시작이다. 루시가 어리숙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겁쟁이, 세상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소녀, 환상과 아픔을 겪으며 성숙해져 가는 여인이라는 3단계 변신을 보여주는 것도 관객에게 쾌락을 선사한다. 결국 루시는 “네가 원하는 게 있을 때 아주 멀리 있는 듯하지만, 실은 가까이에 있어”라는 펠리니의 말을 깨닫게 된다.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르몽드 시네마 에디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펠리니를 찾아서> 
이봄영화제 : 2018년 8월 14일(화) 오후 7시 영화 관람 및 해설
장소 : 이봄씨어터 (신사역 가로수길_문의 : 070-8233-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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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 | 영화평론가
서곡숙 | 영화평론가 info@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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