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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그 후 음흉한 책략
  • 피에르 랭베르
  • 승인 2015.04.01 17:48

역사는 기록해 줄 것인가?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에 분노해서 지난 1월 11일, 4백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결집해 시위를 한 것이 마크롱(Macron) 법안에 찬성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이다. 얼핏 보아도 샤를리 에브도에서 발생한 살인과 이 법안과는 관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 법안이라는 것이 주일에도 일하는 것을 허용하고, 대량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공항을 민영화하고, 노조를 짓밟는 사장단들의 구속수감 형을 폐지한다는 내용 아닌가.

관련성을 찾지 못해 옹색해진 나머지 로비스트 집단의 대표자가 그 위대한 행진이 있던 바로 다음 날부터 베엠에프비지니스(BFM Business) 방송국의 초대 손님으로 나와서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발생한 사건들과 관련해서 전 국가적 단결심을 보여준 역량은 이 법안들에 대해 투표하는 일에까지 연장되어야 합니다. 경제를 자유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그 행진에서 이미 그 전조가 드러났습니다.”(1) 이는 분명, 모여든 군중이 너무 수줍어서 감히 마크롱 법안에 찬성하자고까지는 외치지 못했다는 뜻이란 말인가. 빌더버그 클럽의 니콜라 바베레즈(Nicolas Baverez)는 그 욕구가 행진을 가능하게 한 진짜 이유라고 은근슬쩍 주장했다. “2015년 1월 11일, 프랑스인들은 전 세계와 프랑스의 지도자들에게 용기와 존엄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 정신은 확실합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터부를 걷어내고 말보다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들은 (…) 경제와 사회 개혁에 적용될 때에만 신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르푸엥>, 2015년 2월 12일). 신보다 더한 천상의 투시력이다. 그렇다면 “나는 사를리다”는 현수막에는 “나는 마크롱이다”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는 말인가.

충격의 여파가 큰 사건을 인기가 없는 결정들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 편집자이자 기자인 피에르 앙투안드 델오메(Pierre-Antoine Delhommais)도 이 ‘충격전략’을 애용한다. 그는 벌써 다음 단계까지 예상하고 있다. “오늘날 마뉘엘 발스(Manuel Valls) 정부는 반대자들의 울부짖음과 규모의 경제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노조의 통곡을 무릅쓰고라도 강행할 유리한 위치에 있다. 프랑스는 예컨대 노동시장이나 35시간 노동을 재검토함으로써 막힌 경제를 풀어내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아빠진 습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마크롱 법에 영감을 준 이 자유의 숨결을 한층 더 강화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스 정부가 프랑스를 위해서라도 테러로 인해 제공된 소중하고도 유일한 경제적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르 푸엥, 2015년 2월 5일). 2001년 9월 11일, 당시 영국 교통부의 자문이었던 조 무어(Jo Moore)는 알카에다가 제공한 ‘기회’를 즐거워한 적이 있었다. “모처럼, 모든 나쁜 소식을 단번에 떨쳐버릴 멋진 하루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을 내부 통신망으로만 전달했다. 델오메와는 달리 감히 이런 ‘정치적 책략’의 교훈을 공개적으로 발설할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글․피에르 랭베르Pierre Rimbert 

번역․이진홍
파리 7대학 불어불문학 박사

 

(1) <라데크르와상스>, 116호, 리용, 2015년 2월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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