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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의 문화톡톡] 이 땅의 모든 탄실에게
[류수연의 문화톡톡] 이 땅의 모든 탄실에게
  • 류수연(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17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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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출생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처녀 아닌 탕녀!
처절한 낙인이 찍혀 내팽개쳐졌다.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타국에서
그녀는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조롱했다.
(……)
한국 여성 최초의 소설가, 처음으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
평론가, 기자, 5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는
일본 뒷골목에서 매를 맞으며 땅콩과 치약을 팔아 연명하다
해방된 조국을 멀리 두고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소설 25, 111, 수필 20, 희곡평론 등 170여 편에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를 처음 이 땅에 번역 소개한
그녀는 처참히 발가벗겨진 몸으로 매장되었다.
꿈 많고 재능 많은 그녀의 육체는 성폭행으로
그녀의 작품은 편견과 모욕의 스캔들로 유폐되었다.
그녀는 처참히 발가벗겨진 몸으로 매장되었다.
꿈 많고 재능 많은 그녀의 육체는 성폭행으로
그녀의 작품은 편견과 모욕의 스캔들로 유폐되었다.
이제, 이 땅이 모진 식민지를 벗어난 지도 칠십여 년
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
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다.
조선아, 이 사나운 곳아, 이담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피로 절규한 그녀의 유언은 오늘도 뉴스에서 튀어나온다.
탄실 김명순! 그녀 떠난 지 얼마인가.
이땅아! 짐승의 폭력, 미개한 편견과 관습 여전한
이 부끄럽고 사나운 땅아!
 
- 문정희, 곡시(哭詩)부분

 

 

탄실 김명순. 사실 그녀의 이름은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상당히 낯설다. 한국문학사에서 여성문인이 차지하는 지분이란 헤아릴 수도 없이 적지만, 그 안에서 김명순에게 주어진 자리는 가장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비난과 경멸 위에 놓여 있다. 따라서 그러한 김명순을 위해 쓴 문정희의 곡시는 결코 시가 아니다. 아니, 그저 시일 수 없다. 그것은 혈서이며, 고통 속에 토해낸 각혈이기 때문이다.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라고 부제를 덧붙였지만, 문정희의 시가 호명하는 탄실은 사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여성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자료 1] 탄실 김명순 *출처: 다음
[자료 1] 탄실 김명순 *출처: 다음

김명순은 나혜석·김원주와 함께 자유연애론을 주창한 1세대 신여성이었다. 1917년  의심의 소녀청춘의 현상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선 최초의 여성작가였다. 여성해방을 전제로 한 엘렌 케이 연애담론의 핵심적인 주창자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명사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전 생애에 걸쳐 온갖 추문에 시달리며 동시대 남성문인들과 그들이 주도한 각종 매체로부터 야만적인 험담과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던 비운의 문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의 이유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성폭행한 범죄자를 고발하였다는 이유로, 종국에 가서는 그녀가 서녀이며 기생의 딸이었다는 이유로, 당대를 대표한다는 남성문인들의 잔인한 펜대에 의해 조리돌림 당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부당하고 끔찍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글쓰기 안에서 탈 식민지적 여성해방과 여성주체의 자기결정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놀라운 작가이기도 했다.

 

2.

 

각성한 여성주체로서의 모습은 김명순의 초기작에서부터 나타난다. 등단작인 의심의 소녀는 수많은 등단작이 그러하듯 다분히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대동강 주변 마을로 이사 온 범네라는 미소녀의 지독한 외로움과 아이를 향한 이웃의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은, 작가 김명순이 일생 동안 감내해야 했던 대중의 호기심이라는 폭력적인 시선을 예언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본래 가희라는 이름을 지녔던 소녀 범네는 지독한 고독과 우울에 빠져 있다. 그 기원은 바로 어머니의 죽음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빼어난 미모를 지녔던 소녀의 어머니는, 일부다처 하는 남편에게 속아 첩이 되고 만다. 그녀에게는 사랑도 자유도 이별도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소녀 역시 아비를 피해 떠나고 만다. 그러나 범네라는 가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소녀의 현실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자기결정권은 주어지지 않았으며, 소녀는 자기 삶의 주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고 감춰져야 하는 타자로서 존재했다.

 

이 소녀의 삶은 그대로 작가 김명순에게 겹쳐진다. 실제로 김명순에게 그토록 야만적인 폭력이 가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녀의 신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녀라는 신분적 한계,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겪어야 했던 가난이 그것이다.

 

김명순은 의심의 소녀에서 주인공 범네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한다. 그러나 그것은 폭력에 대한 순응이나 체념이 아닌 격렬한 거부와 저항이었다. 1915년 일본군 소위 이응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학교에서마저 제적당한 채 귀국해야 했던 김명순에게 가해진 세상의 시선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녀는 피해자였지만, 오히려 지탄받아야 했다. 김명순에게 글쓰기는 자기를 손가락질하는 세상을 향한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며 고통스러운 몸부림이었다.

 

[자료2] 김동인의 [김연실전], 금룡도서, 1946 *출처: 네이버 블로그 북헌터
[자료2] 김동인의 [김연실전], 금룡도서, 1946 *출처: 네이버 블로그 북헌터

그러나 살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더욱 더 글쓰기에 매진했던 김명순에게 돌아온 것은 보다 가혹한 따돌림이었다. 그녀의 작품에 대해서는 언제나 악의적인 스캔들이 뒤따랐다. 당대의 유명 소설가였던 김동인은 그녀의 필명을 차용한 소설로 그녀를 조롱했다. 한국문학사에 그 이름을 높인 평론가 김기진은 외가의 어머니 편의 불순한 부정한 혈액이라는 말로 김명순의 작품에 대한 폄하뿐만 아니라 성폭행 피해자였던 그녀의 피해 사실마저 그녀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버렸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김명순은 결코 쉬운 길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사생아를 낳았으며,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끝까지 숨김으로써 세상의 비난에 맨몸으로 맞섰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으로 결코 들어서지 않고자 했던 그녀의 의지는 그녀를 향해 가해진 모든 비난과 멸시와 학대, 그리고 폭력의 이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탄실 김명순은 끝까지 한 명의 자유로운 인간이고자 했다. 그리고 1951년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쳤다.

 

3.

 

20191014. 우리는 자신에게 가해진 야만적인 폭력에 저항하던 또 다른 탄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그녀의 죽음은 명백히 사회적 타살이다. 온라인에서 가해진 온갖 루머와 가짜 뉴스, 성희롱으로 점철된 악플은 100년 전 탄실 김명순에게 가해졌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죽음 앞에서 여자로서 살아온 이 세상에서 짊어져야 했던 그 삶을 돌이켜본다.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가혹해진 세상에서 더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갈 내 딸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 그것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지금, 한 사람의 죽음이 주는 무게가 너무 아프다. 늘 안쓰러웠고, 못내 안타까웠고, 그래서 더 응원해주고 싶었던 그 사람. 그녀의 죽음에서 또 다른 탄실을 본다.

 

추신)
나는 그대의 얼굴을
지금은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보는 날엔
이 부끄럽고 사나운 땅
조금쯤 나아진 세상으로 만드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잘 자요.
최선을 다해 이 세상에 부딪쳤던 그대…….
안녕.

 

 

: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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