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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문화톡톡] 당신의 우울을 마주할 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송연주의 문화톡톡] 당신의 우울을 마주할 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 송연주(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21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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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의 우울을 마주할 때

정신건강의학계는 종종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의 상황을 번아웃 증후군이 우울증까지 진행된 예로 설명한다. 가족을 위한 ‘일벌레’였던 그레고르는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벌레로 변신해 있었고, 가족들에게 ‘밥벌레’로 전락했다. 그리고 가족과 회사로부터 의지가 없다며 비난을 받았고, 쓰레기 취급받으며 간단하게 죽었고 버림받았다. 우울증을 앓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그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봤거나, 그를 위로했고 위로한 시간이 오래되었다면, 그레고르의 가족과 회사의 대처에 대해서 마구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울증이라는 병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하고, 그것이 의지가 없고, 나약해서 걸리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들이 우울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다면 어떨까. 2년간 실직 상황에 놓여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편 베르트랑을 묵묵하게 기다려주고 있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2018)의 클레르처럼 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2. 동그라미의 세상 VS 네모의 세상

“미리 말하지만, 이 영화는 별거 없다. 서로 안 맞는 동그라미와 네모의 이야기일 뿐”

영화는 이렇게 한 남자(베르트랑)의 내래이션에 이은 몽타주로 시작된다. 화면 프레임 속에 동그란 프레임과 네모 프레임을 이용하여 둥근 것과 네모난 것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둥근 것은 자유로운 이미지로, 네모는 뻣뻣한 이미지로.

자전하는 둥근 지구, 태양과 주변을 도는 지구, 둥근 뱃속, 뱃속의 둥근 세포 분열, 태아, 둥근 눈동자, 그 눈동자로 보는 세상의 자유로운 둥근 것들... 소피의 둥근 점, 사만다의 가슴, 둥근 안경테, 자전거 바퀴, LP판, 드럼, 껌 씹고 부는 풍선, 담배꽁초들, 청룡열차의 둥근 회전, 불꽃 등 둥근 이미지의 나열이 이어진다. 이후, 네모는 규칙들이며 동그라미를 뭉개는 이미지로, 성경, 각진 도덕적 이야기, 융통성 없이 각진 교육, 각진 식판으로 먹는 맛없는 학교 식당 밥, 각지고 모진 말들, 네모난 안경테, 지루하고 네모난 게임, 각진 사무실 생활, 네모 안 아버지의 암세포, 네모난 비석까지 나열된다.

그리고 몽타주의 마지막에 어린아이가 동그란 틀에 네모난 나무를 집어넣지 못해서 우는 모습과 함께 내래이션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서도 확실한 것이 하나 있는데,

네모는 동그란 틀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거, 절대, 반대로도 마찬가지고.”

이제 영화가 전개되면서 동그라미와 네모가 어떤 의미로 표현되는지 주목하게 된다. 내래이션을 한 베르트랑을 소개하는 모습부터 그렇다. 카메라는 예쁜 조경에 평화롭고 한적한 주택가를 조망하면서 사각의 창이 보이는 이층집으로 향한다. 카메라가 2층의 사각 창에 가까이 다가가면. 베르트랑은 악몽에서 깨어난 듯 황망한 표정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각진 계단을 황급히 내려와 둥근 식탁에 모여앉은 자녀들에게 건조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 베르트랑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아내 클레르. 베르트랑은 서랍을 열어 약을 꺼내고 시리얼이 담긴 둥근 그릇에 동그란 약들을 수북이 넣고 섞어 먹는다. 클레르는 관절염약이 빠졌다고 지적한다. 얼굴이 부어서 그만 먹겠다는 베르트랑에게 클레르는 안 먹으면 종일 자버리니까 먹어야 한다며 관절염약을 직접 꺼내 준다. 오늘은 뭐 할 거냐는 클레르의 질문에 딸아이는 베르트랑이 소파에서 게임이나 할 것이라며 예언했고, 베르트랑은 게임을 하지 않을 거라고 오후에 면접이 있다고 한다. 클레르는 6개월 만에 있는 면접인데 왜 말을 안 했냐고 발끈한다. 베르트랑은 깜빡했다고, 생각하기 싫었다고 한다.

순간 베르트랑의 감정을 느낀 클레르는 베르트랑의 손을 살짝 잡아준다. 그리고 괜찮냐고 물어봐 준다. 베르트랑은 소파에 누워 게임을 좀 하다가 정장을 입고 힘껏 자전거를 타고 면접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실패. 밤. 사각의 창틀에 나란히 앉은 베르트랑과 클레르. 클레르는 낙담한 베르트랑만큼 속상해하면서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어떤 거 같냐고 질문도 해주고, 따뜻하게 키스도 해준다.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우며 그들은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

베르트랑은 실직만 한 것이 아니다. 지난 2년 동안 가장으로서의 당당함을 잃었고, 삶의 즐거움도 잃었다. 아이들도 주변 사람들도 그런 베르트랑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내인 클레르 만큼은 베르트랑이 어떻게든 살아나가기를 기다려주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3. 맞춰가는 과정

딸아이 픽업 겸 수영장에 간 베르트랑은 자유롭게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남자 수중발레 팀에 지원한다. 코치인 델핀과의 면접에서 베르트랑은 남자 수중발레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훈련을 하는 팀원들은 어쩌다 온 것이 아니라 의지가 있어서 온 것이라는 말과 함께 팀에 합류할 규칙을 듣는다.

“이 팀에 들어오려면 의지력, 우아함, 리듬감이 필요해요. 건강한 생활습관도.”

소파에 누워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했던 베르트랑에게는 어려운 규칙이지만, 베르트랑은 도전해보기로 한다. 그러나 이 도전 또한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각진 사람들의 눈에는 비웃음의 대상이다. 클레르의 언니 부부가 집에 찾아와 베르트랑이 2년간의 실직 중에 수중발레를 시작한 것에 대해 비아냥거린다. 이 상황에서 클레르는 언니에게 자신의 답답함을 하소연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베르트랑의 편에 서서 베르트랑을 지지한다.

우울증에 빠졌거나 우울한 상황에 놓여있는 중년 남성들의 수중발레 이야기를 다룬다는 이 영화는 사실 남성의 우울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코치인 델핀과 그와 수중발레 2인조였던 아만다의 관계를 통해 꿈을 잃고 우울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도 보여준다. 델핀이 베르트랑에게 이 팀을 처음 소개했을 때 의지를 가지고 모였다고 했지만, 실은 모두가 우울한 삶과 힘든 수중발레에 대한 의지를 점점 키워가는 이야기가 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베르트랑과 팀원들은 서로가 안 맞아 투덕이면서도 끊임없이 합을 맞추려 노력한다. 특히 공공의 적으로 등장한 코치 아만다와의 대결을 통해서 이들은 하나로 결합한다. 수중발레 과정에서 함께 이루는 동그라미 대형과 네모 대형을 부감으로 보여주는 쇼트는 마지막 대회에서 멋진 경기로 연출된다. 성취 끝에 모두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기만족을 얻었고, 결국 당신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며 이들을 비판하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까지 한다.

영화의 말미에서 한층 성장한 베르트랑은 양손을 놓고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며 말한다.

“동그라미도 네모 틀에 들어갈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거.”

시작에서 말했던 어렵다는 일을 해낸 사람이기에 정의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4. “힘내!” 말고 “당신 편이야.”

결과가 궁금한 영화가 있고, 결과가 뻔해도 과정이 궁금한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분명 뻔할 것이라는 예측과 그 예측을 받쳐주는 성장 플롯을 그대로 따른 내러티브로 뻔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 깔린 소소한 코미디와 캐릭터 각각의 디테일을 즐길만한 이유가 충분히 된다. 목표를 달성하고 일출을 보면서 환호하는 이들을 보면서 우울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의지를 돌이킬 기회를 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다만, 이 영화 전체가 의지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죽을 만큼 노력해서 동그라미도 네모의 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점은 우울을 앓고 있는 모두에게 해법은 아니다. 앞서 <변신>에서 말했듯 그레고르에게 의지가 없다며 비난하는 가족과 직장 상사의 시선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트랑은 우울증약을 먹고 있고 2년을 버텨온 상황이다. 그 정도의 시간을 버텨왔기에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이 나아갈 때였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곁에는 그의 치유를 기다려주는 클레르가 있었다. 가족이나 지인이 우울증을 치료해 줄 수 없고 피로감도 크다. 그러나 그것을 함께 견뎌준다는 데에 마음의 지지를 얻게 된다고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말이 “힘내!”라는 말이라고 한다. 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는 것이기에. 마땅한 대답 거리를 찾지 못하고 자신은 역시나 잘못된 사람이라며 자책하고 침잠하게 된다고 한다. 주변에서 우울을 앓게 되는 사람을 만난다면, “힘내”라는 말보다는 클레르처럼 “당신 편이야”라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 송연주

세종대학교 영상예술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화를 연구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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