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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김환기의 시정신 : 달항아리
[김시아의 문화톡톡] 김환기의 시정신 : 달항아리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8.0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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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과 서울관에서 열리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에서 김환기(1913~1974)의 작품은 다른 작품들보다 유독 시선을 끈다. 왜일까?

 

1. <정원>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우리나라가 그리우면 달을 보았다. 특히 한가위 보름달이 뜨면 그리움은 더욱더 둥글게 커졌다. 이 마음과 상응하는 작품을 전시회에서 보았다.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 두 번째 공간인 ‘맑고 바르고 우아하다’라는 ‘아(雅)’의 공간에서 김환기의 <정원>을 마주했을 때 달과 달항아리는 내가 간절히 가족과 조국을 그리워하던 마음과 닮아 있었다. 제작 연도를 살펴보니 1956년 화가 김환기가 프랑스에서 체류하는 초기에 그린 작품이다. 화가가 쓴 ‘이조 항아리’ 시처럼 산이 그려진 달항아리와 물고기가 그려진 고려청자 모양의 도자기가 나란히 놓여 있고, 푸른 치마와 붉은 치마를 입은 두 여인이 나란히 상단 부분에 작게 그려져 있다. 더불어 해와 달을 상징하는 붉은 원과 푸른 원과 구름이 도자기 그림 위에 “둥실 떠 있다”. 몸은 파리에 있으나 마음은 조국을 향한 화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김환기(1913-1974), 정원, 1956, 캔버스에 유채, 80.5x100cm, 개인소장ⓒ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1913-1974), <정원>, 1956, 캔버스에 유채, 80.5x100cm, 개인소장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한국적 상징으로 가득 찬 그림은 유화로 그려져 있다. 반 고흐의 꿈틀거리는 붓 자국 리듬과는 다른 절제와 단정함이 배어 있고 붓 자국이 거의 보이지 않는 평평한 면에 상징적인 오브제가 초현실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사람은 극도로 작고, 사물은 유난히 크다. 이는 인물들이 크게 그려진 50년대 초반의 작품들과 대조를 이룬다. 단순한 소재의 모양이 간결하게 배치되고 겹쳐 있으며 반추상의 리듬을 만든다. 유화로 그려졌지만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의 추상적 그림과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우리 문화의 상징이라는 게 바로 느껴진다. 상단에 있는 붉은 원과 하단에 있는 파란 원은 백자에 그려진 뾰족뾰족한 산의 모양을 중심에 두고 대치되어 있다. 이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나타내며 푸른 치마와 붉은 치마를 입을 두 여인이 사이좋게 서 있는 모습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詩)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1957.1)

김환기의 시 정신은 무엇일까? 통일의 염원을 담은 달항아리일까? 화가가 1951년 부산 피난 시절에 그린 <항아리와 여인들>을 보면 바닷가를 배경으로 항아리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멀리 있는 배와 피난소 천막은 작게 그린 반면 사람들은 유난히 크다. 하얀 항아리를 안은 여인들이 중심에 서 있으며 둥그런 얼굴과 눈, 가슴이 원의 반복적인 리듬을 만든다. 항아리에 든 것이 쌀일까 감자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그 옆에 커다란 물고기가 든 그릇을 머리에 이고 왼손에 다른 한 마리의 물고기를 든 여인의 모습 속에서 궁핍한 시절임에도 바다가 먹을 것을 주고 있다는 듯 사람들의 표정은 슬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한 쌍의 인물들은 표정이 없는 듯 이목구비가 그려져 있지 않다.

이 그림과 유사한 그림이 1950년대 그려진 <여인들과 항아리>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그림은 벽 한 면을 다 채우는 커다란 작품이다.

 

2. <여인들과 항아리>

“<여인들과 항아리>는 1950년대 조선방직을 인수하여 국내 최대의 방직 재벌 기업가가 된 삼호그룹의 정재호 회장이 퇴계로에 자택을 신축하면서 대형 벽화용으로 주문하여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그림들과는 다르게 아무리 찾아봐도 김환기의 서명 ‘whanki’와 작품 연도를 찾아볼 수 없는 그림이다. 일화를 찾아보니 세 여인의 가슴이 노출된 반 누드 그림을 보고 뭐라 하자 김환기는 서명하지 않고 주문자에게 그림을 보냈다고 한다.

먼저 그린 <항아리와 여인들>에서 김환기는 항아리를 어깨에 이고 두 가슴이 노출된 여인과 청자 모양의 항아리를 가슴에 안아 하나의 가슴만 노출된 전라의 사람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가장 크게 그려진 인물은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호한데 항아리를 좋아하는 김환기의 아니마(anima. 남성의 무의식적 여성성)라 볼 수도 있다. 김환기의 초기작인 <종달새 노래할 때>(1935)에서부터 화가에게 여인은 중요한 모티브였다. 머리에 새알이 담긴 바구니를 인 여인이 그려진 그림에서 김환기 작품의 주요한 모티프를 찾을 수 있다. 새알과 바구니가 달과 항아리, 점으로 변주되고 추상화된 것이 아닐까?

함께 무리를 지었던 여인들이 <여인들과 항아리>에서 달항아리를 머리에 인 여인, 달항아리를 왼쪽 어깨에 인 이목구비가 그려지지 않은 여인, 고려청자를 품에 안고 있어 한쪽 가슴이 가려진 여인은 요즘처럼 일정하게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앞쪽에 앉아 있는 한 쌍의 여인들과 뒤쪽에 서 있는 한 쌍의 여인들을 뺀, 세 명의 여인은 항아리와 함께 다양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반라의 세 여인은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세 여인과 대조적이다. 항아리를 가진 세 여인 사이로 가운데 고려청자 모양의 도자기와 달항아리, 하단에 매화를 입에 문 사슴이 있다. 무병과 장수를 상징하며 등장하는 사슴, 학, 소나무는 우리나라 십장생도에서 볼 수 있는 도상적 모티프다. 수사슴은 매화향에 취한 듯 보인다.

 

김환기(1913-1974),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81.5x567cm.ⓒ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1913-1974),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81.5x567cm.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수사슴은 도자기 애호가인 김환기가 자신을 우화적으로 표현했을 수 있다. 더불어 사슴은 백석의 시집 이름과 같다. 윤동주가 필사했다는 『사슴』. 사슴은 북에 있는 백석을 은유할 수도 있고 수화 김환기에게 시정신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가설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 재판 표지를 김환기가 그렸고, 『현대문학』 제2권 제2호 (1956.2) 표지도 김환기가 그렸는데 독자는 매화를 입에 문 수사슴이 향수에 젖은 듯 과거를 향해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슴 그림은 <여인들과 항아리>에서 그려진 매화를 입에 문 사슴과 거의 똑같고 단지 뿔의 모양만 다르다. 그러나 김환기가 파리에 있을 때 그린 <사슴>(1958)엔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 배경과 달을 상징하는 원 앞에서 사슴은 왼쪽을 향해 있다. 홀로 서 있는 고고한 사슴은 이상향을 그리며 홀로 작업하는 그의 시정신일 게다. 이러한 시정신은 이태준, 김용준과 함께 공유한 것이었다.

 

3. 『문장』 : 시정신의 원천

김환기는 1930년대 이태준이 이끈 『문장』 지에 시와 수필을 쓰기도 했는데, 『문장』은 동양주의적 세계관을 공유한 이태준, 정지용, 이병기를 비롯해 길진섭, 김용준, 김환기 등 전위예술가가 중심이 되어 문학작품과 미술평론을 실었다. 이태준은 미술 비평가로도 활동했는데 “선친의 연적을 받으며 도자기의 관계는 수집과 감상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1930년대 이태준은 성북동에서 김용준과 도자기 애호가들과 교류했는데, 1937년 도쿄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돌아와 1939년 여름 “문장사에 합류한 김환기는 『문장』에 권두화 1점과 삽화, 수필 3편, 미술비평 1편을 발표”했다고 한다.

“미에 대한 개안이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되어 조형과 미와 민족을 도자기에서 배웠다. 나의 교과서는 도자기일지도 모른다”

화가 김환기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김환기뿐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도 도자기에 심취했었고 직접 재밌고 특이한 도자기를 만들기까지 했다. 또한 엥그르의 작품 <샘 La Source> (1820~1856)에서 물을 쏟아내고 있는 항아리를 든 여인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그리스 신화를 재해석하는 게 유행이었는데 엥그르는 샘의 요정 에코(Écho)를 그렸다. 에코는 죽어서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었다는 신화의 주인공인데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에서 가장 왼쪽에 그려진 여인과 몸짓이 유사하다. 그러나 항아리의 모양은 다르다. 김환기는 ‘백자대호’로 불리었던 ‘달항아리’를 그렸다. 달항아리는 달과 얼굴의 도상과 유사하다. 도자기 수집광답게 김환기의 그림에서 다양한 도자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일상용인 듯 관상용인 듯 화가의 애착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달항아리의 울림이 더 크게 확장된다.

역사의 격변기를 지나오며 김환기에게 그림과 항아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만들어간 화가의 유토피아라 볼 수 있다. 미셸 푸코는 최초의 헤테로토피아가 정원이라고 하였는데 김환기의 작품 <정원>에서처럼 일맥상통한다. 이제 김환기의 작품들은 미술관, 즉 ‘시간의 헤테로토피아’ 안에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참고문헌]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2021:358~359. 참고 도판.

권행가,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국립현대미술관, 2021:46-47.

박영태, 「김환기의 백자 항아리 그림과 문장지의 상고주의. 야나기 무네요시와 이태준의 영향을 중심으로」, 『우리문학연구』 30, 2010:315-346.

배원정, 「달항아리에 담긴 ‘전통’과 ‘해석’의 미학」, 『DNA: 한국 미술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2021:328-332.

임창섭, 『꿈을 그린 추상화가』, 나무숲, 2006.

정민영, 「달항아리를 사랑한 두 화가」, 대한토목학회지 67, 2019.5:96-101.

정현주,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예경, 2015.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4.

 

 

글 · 김시아 KIM Sun nyeo

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의 이해’를 가르치고 연구하며,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8월15일 출간 예정)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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