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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상실의 자리를 채우는 과학기술의 매혹 : 드라마 스페셜 2021 <희수>(KBS)
[문선영의 문화톡톡] 상실의 자리를 채우는 과학기술의 매혹 : 드라마 스페셜 2021 <희수>(KBS)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1.11.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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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부모는 아이를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은 가슴에 묻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며 상실의 자리를 치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과학기술시대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할 과제 중 하나였고, 여전히 풀어가야 할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VR기술은 죽음과 관련된 인간의 불가능한 삶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VR기술을 통한 가상체험은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상현실 속에서 다양한 체험들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남긴 정보, 기록 등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여, 유사하게 복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2020년 방영한 MBC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VR기술을 통한 가상 만남을 실현시키며, 대중적 관심을 유도한 사례 중 하나였다. <너를 만났다> 시즌1의 가상체험 대상자는 병으로 어린 딸을 잃은 엄마였다. 가상공간에서 오랜만에 딸과 재회하는 엄마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를 울렸다. VR기술로 복원된 아이는 실제 인물과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지만, 아이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은 VR가상공간의 재회 장면을 통해 전달되었고, 엄마의 간절함은 기술의 미흡한 부분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이어졌다.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가족을 가상현실에서 재회하게 함으로써,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상실의 고통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VR기술의 가상체험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 TV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VR기술을 통한 죽은 사람과의 재회의 가능성은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존재하듯, 최근 이슈가 되는 VR가상체험 역시 풀어야 문제들이 존재한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중, 첫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TV 시네마 <희수>는 VR기술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가고 있다. <희수>는 교통사고로 여섯 살 난 딸 희수(김윤슬 분)를 잃은 엄마 황주은(전소민 분)이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VR기술에 의존하는 이야기이다. 주은은 딸 희수가 자신의 눈앞에서 트럭에 치여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이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아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죽음을 받아들일 용기조차 갖지 못한 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아이의 죽음으로 주은, 태훈(박성훈 분)부부는 서로를 원망하며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딸 희수의 죽음을 거부하며 하루 종일 죽은 아이의 동영상만을 보는 주은의 태도를 견디지 못한 태훈은 VR기술자인 친구 준범(김강현 분)이 개발한 VR가상현실 프로그램 ‘별들이 사는 마을’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다. 일명 ‘별사마’는 VR기술로 죽은 사람을 복원시켜 가상공간에서 재회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드라마는 딸 희수가 살아있을 때, ‘별사마’로 복원된 반려견과 가상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희수를 걱정하며, VR가상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가졌던 주은이 아이를 잃은 고통에서 결국 VR기술을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VR기술을 통한 가상 프로그램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순리를 거스르는 길이라고 여겼던 주은은 VR프로그램으로 복원된 AI 희수를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점점 집착하게 된다. VR가상공간과 AI 딸 희수에 대한 주은의 병적 집착은 불가능성을 해결하는 과학기술의 매혹에 휩싸인 인간의 나약함을 제시하는 듯하다.

 

출처: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홈페이지
출처: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홈페이지

죽은 딸을 한번만 만나보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한 주은의 욕망은 생존했던 아이와 동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확대된다. 그녀는 VR프로그램 이용자 입장으로 설정된 AI 희수에 대해 조금씩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즉 VR가상공간에서 AI로 복원된 아이는 생전의 정보에서 엄마 주은의 반응에 긍정적인 행동을 발신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AI 희수는 언제나 밝게 웃고 사랑스러운 표정과 행동을 하는,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 역할만 한다. 이용자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설정된 VR가상 프로그램에서 AI로 복원된 아이는 여섯 살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생전 정보와 기록을 활용하여 이용자 입장에서 설정되어 있는 AI 기술로 인한 이질감에 대한 문제는 영국 SF드라마 <블랙미러>시즌2 중, 에피소드 ‘Be right back’과 유사하다. <블랙미러>에서 마사는 남편 애쉬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애쉬의 정보를 이용해서 남편과 동일한 모습을 한, 로봇을 구매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반응만 하는 로봇 애쉬의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한다. <블랙미러>가 AI로 복원된 죽은 남편을 실제 인물로 받아들이지도, 남편의 모습을 한 로봇을 버리지도 못한 채 애매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면, <희수>는 여기서 조금 더 확장된 이야기를 구성한다.

결국 실제 딸 희수처럼 복원되기를 바라는 주은의 욕망은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적 시도를 감행하는 데까지 이른다. VR개발자 준범은 AI로 복원된 희수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주입하여, 이용자의 반응과 무관한 행동이나 말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를 시킨다. 주은은 가상현실에서도 자신의 말만 따르는 아이가 아닌, 고집을 피우고 떼도 쓰며 원하는 것을 말하는 희수를 만나게 된다. 업그레이드 된 VR프로그램을 통해 주은은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고 점점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죽은 딸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을 해결하는 치유의 수단이었던 VR 프로그램은 딸의 죽음을 수용하지 않으며 집착하는 병적 증상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되어간다. 드라마의 후반부는 죽은 딸 희수가 다시 돌아왔다고 믿는 주은의 확신이 점차 커지게 되어 부부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은은 남편 태훈도 자신처럼 가상공간의 희수를 생존하는 아이처럼 인정하기를 바라고, 심지어 강요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주은의 집착은 자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VR가상공간의 딸 희수를 대하지 않는 남편 태훈을 향한 불만과 공격으로 이어진다. 드라마 <희수>는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가상공간에 집착하는 엄마 주은의 욕망,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는 프로그램 개발자의 욕망이 뒤엉키며 비극적인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희수>에서 주은의 가정은 VR프로그램 개발자 준범의 시스템 설정 개입에 의해, 아이를 잃고 싶지 않은 엄마 주은의 공포심으로 인해 철저하게 무너진다.

과학기술을 활용한 가상공간은 불가능한 영역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며, 인간의 삶을 확장시키는 도전들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VR기술을 이용한 가상체험은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경험,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은 개인의 치유 또는 공감의 측면에서의 교육적 효과 등과 연결되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작 콘텐츠는 다양한 관점에서 과학기술의 변화를 감지하고, 풍부한 이야기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드라마 <희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학기술 관련 주제를 다루며, 대중에게 좀 더 가까운 SF드라마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 · 문선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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