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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승리호>와 <로그 인 벨지움>으로 본 2021년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승리호>와 <로그 인 벨지움>으로 본 2021년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1.12.31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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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영화와 관련된 상황을 되돌아보면, ‘변화’라는 키워드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고, 만들게 되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겠으나, 영화와 관련한 여러 관행과 경계가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개봉된 영화 두 편과 더불어 그 변화에 대해 생각해볼까 한다.

 

- <승리호>가 보여준 변화

 

승리호 스틸
<승리호> 스틸

2021년 2월 개봉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는 2021년 한국 영화계의 변화를 여러 방면에서 가장 명확하게 보여줬다.

먼저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가 기존 한국영화 속 세계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은 분명 의미있는 변화다. 시각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력과 더불어 미래를 배경으로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창조해낸 상상력과 구성력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아쉬움도 있지만, 기존에 몇 편 안 되는 한국 SF 영화 속에서 보이는 타자화 경향은 분명 벗어났다.

영화 외부적으로도 <승리호>는 변화의 중심에 자리한다.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건 아니지만, <승리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예정된 개봉 일정을 미루다가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공개되었다. 글로벌 OTT 서비스 방식에 따라 여러 언어로 제작된 더빙과 자막 버전으로 여러 국가에 동시 공개되면서, 수출 효과 혹은 문화 확산 효과도 기대하게 했다.

공개 당시, 넷플릭스 자체 집계 순위는 아니지만, 소위 ‘세계 넷플릭스 영화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순위와 상관없이, 한국영화의 해외 시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수십여 나라 관객(구독자)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건 분명 기회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계약과 매출 분배 방식 등에 대한 이슈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관객 입장에서 <승리호>의 OTT 독점 공개는 대형 스크린과 오디오 시스템에 압도되고 싶은 아쉬움을 느끼게 했지만, 일상 속에서 언제든,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는 편리함도 누리게 해주었다.

이후 9월에는 <승리호>를 비롯해 넷플릭스로만 공개되었던 한국영화 7편이 CGV에서 상영됐는데, ‘영화관 개봉 후 (TV나 비디오, 온라인 등) 부가시장 공개’라는 방식이 역전된 셈이었다. 이어서 10월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기도 했다.

 

<옥자> 포스터

한편,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국내 영화관 개봉을 시도했는데,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가 상영거부를 해 그 외 영화관에서만 상영을 했다. 영화관 개봉 후 부가시장 공개라는 순서와 관련된 관행, 약속 등이 모두 어긋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입장이 부딪히면서 발생한 갈등이었다.

그때만 해도 넷플릭스는 국내 서비스를 막 시작한 상황이었다. <옥자>가 넷플릭스에서만 공개가 되었어도, 화제가 되긴 했을 것이다. 한국 감독이 만든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였고, 그 영화를 보려면 낯선 OTT를 구독해야 했으니 말이다.

영화관 개봉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IPTV와 동시에 상영되는 방식이 이미 대세가 되어가던 중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닥치고, OTT 플랫폼이 부상하면서, ‘영화관 개봉 후 부가시장 공개’ 방식은 더더욱 느슨해지고 있다. OTT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에도 익숙해졌다.

영화만이 아니라 드라마 역시 기존 지상파나 케이블 TV를 건너뛰고, 다시 보기 차원이 아니라 처음 보기 차원으로 OTT 오리지널 제작고 공개가 늘어나고 있다. 소위 부가시장이라 불리던 플랫폼은 이제 더 이상 부가적으로 추가된 시장으로만 볼 수 없게 되었다.

 

- <로그 인 벨지움>이 보여준 변화

 

<로그 인 벨지움> 포스터

영화를 개봉하는 방식만 변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얼마 전에 개봉한 유태오 감독의 <로그 인 벨지움>을 보면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로그 인 벨지움>은 처음부터 개봉을 복표로 제작사가 기획해 제작한 영화가 아니다. 예상치 못하게 맞이한 상황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일상이 개봉용 영화로 마무리되었다. 기획하고,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고, 촬영을 준비하고, 촬영을 시작하는 식의 과정은 생략됐다. 연출, 촬영, 출연 모두 유태오 감독이 했다. 추가 촬영과 후반 작업에는 협업이 이뤄졌지만, 매우 작은 규모다.

그동안도 개인적인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한정된 공간이나 인물만 등장하는 극영화 등 작은 규모의 영화는 종종 만들어졌지만, <로그 인 벨지움>은 좀 더 특별한 면이 있다. 이 영화 속 일상도 매우 특이한 상황에서 맞게 된 일상이다.

유태오 배우는 해외 드라마 촬영 일정으로 벨기에로 출국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선포 상황을 맞고, 앤트워프의 한 호텔에 고립된다. 정해진 시간에만 생필품을 사러 나갈 수 있고, 그나마도 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 유태오 배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고, 그렇게 영화감독, 촬영감독이 되었다.

흔히 보는 브이로그 식의 영상도 아니다. 어디까지가 다큐멘터리인지 헛갈리는 상황도 등장한다. 본인과 본인 주변만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신선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스마트폰으로도 다양한 영상을 촬영이 가능해진 기술적 변화를 바탕으로 유태오 감독의 상상력과 실행력이 매우 매력적으로 발휘되었다.

 

- 모든 곳이 영화관, 모든 사람이 영화 감독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모든 곳이 영화관이고, 관련 기준들만 좀 달리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SNS 등에 영상을 공개한) 데뷔 감독일 수 있는 요즘이다.

소위 프로와 아마추어의 세계로 구분을 하기도 하지만, 이미 그 경계도 흐려졌다. 과연 예전처럼 자주 영화관에 가게 될지, 과연 OTT를 몇 개까지 구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있는 일상 곳곳과 순간순간이 언젠가 대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2021년은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실감 나는 해였다. 2022년의 변화도 기대해 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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