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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심플한 이야기의 강력한 힘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구선경의 문화톡톡] 심플한 이야기의 강력한 힘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2.01.17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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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가장 화제가 된 드라마는 단연코 <오징어 게임>이다. 9월 17일 넷플릭스 첫 공개 후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 전체 1위를 차지했고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83개국 모두에서 한 번씩 TV 프로그램 부문 정상을 찍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골든글로브 TV 시리즈 드라마 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세 부문에 후보로 올라 남우조연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주인공 ‘기훈’을 연기한 이정재가 미국 CBS 토크쇼에 출연하여 정중히 상체를 숙여 보이는 한국식 인사로 기품 있다는 평과 함께 기립박수를 받았다거나 극 중 탈북자 ‘새벽’을 연기한 정호연의 인스타 팔로워 수가 40만 명대에서 드라마 공개 이후 2주 만에 1120만대로 28배 증가했다는 뒷얘기들은 작품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즐거운 에피소드들이었다.

조금은 어리둥절하고,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다.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본 드라마가 우리나라 배우가 나오는 우리 드라마라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특히 기성세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 옛날 <600만 불의 사나이>와 <원더우먼>으로 시작해서 <맥가이버>와 주말을 보내고, 브룩 실즈와 소피 마르소가 코팅된 책받침을 들고 다니던 때에는 할리우드도 칸도 아카데미도 그저 먼 어떤 곳에 있는 미지의 세상이었다. 어둠의 경로로 미드 <위기의 주부들>을, <섹스 앤 더 시티>를 접하게 되고 일요일 밤 늦은 시간 mbc에 편성된 CSI 시리즈를 보게 되면서는 그 완성도와 소재의 다양함과 (여러 측면에서의) 표현의 수위에 부러웠고, 위축됐었다. 그들의 세계에서도 완성도가 높고 낮은 작품들이 있고 아마도 우리가 보게 되는 건 전자에 국한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화에는 ‘다름’이 있을 뿐 ‘순위’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은 쉬이 떨쳐 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전 세계가 우리가 만든, 우리 배우가 나오는 우리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 이는 당연하게도 갑자기 튀어나온 결과일 리는 없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드라마 제작 편수를 자랑할 만큼 우리의 드라마 사랑은 오래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드라마를 최선을 다해 만들어왔다. 덕분에 서구에는 없는 풋풋한 감성의 로맨스 드라마가 초기 한류를 이끌었고, 신선한 아이디어와 발상으로 <굿닥터>, <신의 선물> 등의 드라마 원작의 미국 진출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질과 양의 축적이 드디어는 전 세계인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대박’ 작품을 만들게 된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특히 <오징어 게임>이 독보적인 성과를 이룬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서 <오징어 게임>은 왜 이렇게까지 잘됐을까?

 

'오징어 게임' 포스터
'오징어 게임' 포스터

우선은 OTT라는 새로운 매체 환경의 등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넷플릭스는 2021년 10월 기준으로 2억 1400만 명의 가입자 수를 기록하고 있고 디즈니플러스,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 훌루, HBA 맥스 등등이 그 뒤를 쫓으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의 경우 진작에 케이블, 종편의 등장으로 위협을 받기 시작한 지상파는 드라마 왕좌의 자리를 내준지 이미 오래다.

전 세계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시간 아무 때나, 기다리지 않고 여러 회차의 드라마를 한꺼번에 원하는 만큼 이어서, 내가 가장 편한 자세로, 심지어 원하는 빠르기와 뛰어넘기를 해 가며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정말 꿈같은 얘기다. 그리고 심지어 그렇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국적을 초월하여 수십 수백 편이 터치 한 번으로 선택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이는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이라면 한국에서 작품이 완성되고 방영되고 이 작품이 외국에 수출이 되어 거기서 또 시청자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OTT 플랫폼에 올라가기만 하면 전 세계 시청자를 바로 만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제는 말하기도 입 아픈, 웹 덕분에 열린 실로 놀라운 콘텐츠 환경이다.

 

동시에 이것은 흥행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여러 OTT를 통해 방영되는 수백 수천 편에 이르는 상황에서 특히 <오징어 게임>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 많은 리뷰어의 앞선 분석이 있었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꼽게 되는 것은 ‘쉬운 이야기’이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는 심플하다. 각자의 이유로 너무나도 간절히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게임을 해서 이기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고 지면 죽는다. 그렇게 단계를 다 통과하면 마지막에 어마어마한 상금을 얻게 된다. 돈 없는 이혼남 백수인 성기훈이 이 게임에 참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구라도 서사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게임을 해서 이기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고 지면 죽는 얘기구나) 뒤가 궁금해지며 (그럼 마지막에 상금을 타는 건 누구지? 기훈이 탈 수 있을까?)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기가 쉽다(그런 큰돈이라면 나도 욕심나는데!).

소위 대박을 터뜨리려면 절대다수의 대중에게 어필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야기가 쉬워야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식의 수준과 취향의 다양함을 불문하고 일단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쉬운 구조와 보편적인 감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한류 초기에 드라마 <대장금>이 여러 나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도 요리 경연과 대결 구도라는 선명한 이야기 구조가 한몫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이런 덕목에 충실하다.

더불어 <오징어 게임>은 시청자를 많이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비밀이나 음모를 길게 가져가지 않고 빠르게 알려주고, 보여준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몇 회가 지나서야 비밀이나 이유 등을 알려주면서 시청자를 잡아두곤 했던 예전과 달리 최근의 드라마들은 시원하게 밝힐 걸 밝히고 대신 사건을 빠르게 전개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 한 편이 16부가 아니라 8부 10부 등으로 자유롭게 편성되고, 시청 패턴도 한 주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몰아보기가 가능한 최근의 달라진 시청 환경과 관련이 있다. <오징어 게임>도 총 9부작으로 편수가 짧고 한 회차의 러닝타임도 60분 내외, 8부는 30여 분 밖에 안되는 자유로운 편성방식을 가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에피소드도 심플하다. 사건의 기반이 되는 게임들이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친숙해서 재미있고 외국인에겐 아이들의 게임이라 단순하고 명료해서 이해가 쉽다. 마치 보드게임의 할리갈리나 텀블링몽키가 긴 설명 없이 우리를 바로 몰입시키고 금방 게임에 열광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심플한 이야기는 미술과 음악의 도움으로 시청각적으로도 선명도를 높였다. 파스텔톤의 세트, 네모와 동그라미가 그려진 원색의 유니폼, 거대한 인형, 리코더 배경음악 등으로 시청각적 만족을 주었고 실제 이 옷을 입고 코스프레를 하고 게임을 하며 이 작품을 즐기는 오락까지 가능하게 했다.

 

이태원 오겜월드
이태원 오겜월드

혹자는 이 드라마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민낯, 극심한 빈부 격차, 비인간적인 사회의 모습 등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런 문제들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때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기 위해 작품의 필수 요소인 ‘개연성’을 눈 딱 감고 외면한 순간도 종종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전체적인 틀 자체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 그걸 요구했다면 지금만큼 접근이 쉬웠을까? 하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막연한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지금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지 않았을까, 전 지구적 반응은 못 얻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그 모든 걸 다 충족시키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고, 다 얻을 수 없으니 포기해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이야기가 쉽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다. 제작진은 아마도 무엇을 더 넣고 무엇을 덜어낼지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의 비약을 감수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 결과물로써 선명하고 쉬운 전달력을 가진 흥미롭고 오락적인 지금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작품의 방향을 정하는 건 작가다. 그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시청자다. 그들의 접점이 잘 만난 행운이 따른 작품이 <오징어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즌 2, 3까지의 가능성이 꽤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지금, 다음 시즌은 어떤 영리한 이야기가 나올지 자못 궁금해진다.

 

 

글ㆍ구선경(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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