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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그래도 우영우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구선경의 문화톡톡] 그래도 우영우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2.07.18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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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신드롬이다. 그렇게 말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모든 기사며 SNS에 우영우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어딜 가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본다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우영우를 만난 건 방영 첫 주 넷플릭스에서였다.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뭘 볼까 고르느라 한 시간을 보낸 후 그냥 나오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는 사실이다. 귀한 휴식 시간을 최고의 효율로 즐기고자 서치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몇 번 거듭되고 작품의 후기를 찾아보는 노력도 귀찮아진 어느 날, 메인에 떠 있는 드라마를 무심코 그냥 클릭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제목과 동그랗게 자른 머리에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주인공의 섬네일을 보고 ‘뭔가 귀엽고 편안한 느낌의 드라마가 아닐까, 아마도 부담 없이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플레이 버튼을 누른 것이다. 주인공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톱스타도 없고 대단한 홍보도 없는, ENA라는 채널조차 생소한 드라마는 의외로 꽤 재미있었다. 그리고 불과 6회까지 방영한 지금, 드라마는 첫 회 시청률 0.9%에서 시작해 6회째에 9.5%로 10배가 뛰는 기록을 보여주며 단연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고, 드라마를 만든 제작사의 주식 가치까지 들었다 놨다 하며 해외 리메이크 또한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걸 잠시 망설였다. 모두가 입 아프게 얘기하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고 한편으로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작품에 관해서 얘기하는 게 성급한 감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의 관심사를 굳이 외면하는 것도 유별스러운 일일 것이고 현재의 시점에서도 언급해볼 의미는 있을 것이다. 고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금지당했지만 고래 이야기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고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영우처럼, 지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공식 포스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공식 포스터

이 드라마 흥행의 일등 공신은 역시 주연 배우다. 박은빈 배우가 연기하는 우영우를 빼고는 이 드라마를 말할 수 없다. 몸짓, 말투, 시선 등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특징을 재현해내는 것은 배우로서 연기의 기본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우영우를 만들어낸 것은 온전히 배우의 역량이었다. 배우가 자기 몸에 꼭 맞는 옷을 입듯 꼭 맞는 배역을 만나 소위 ‘포텐이 터지는’ 경우들이 있다. 박은빈의 우영우도 그런 예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두 번째 장점은 영리한 서사의 방식이다. 드라마는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초반에 장애에 관해 길게 설명하거나 장애인으로서의 애환을 보여주고 이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이미 변호사가 되어 출근하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려움과 이의 극복이라는 에피소드는 어쨌든 무거울 수밖에 없고 뻔한 클리셰가 되기도 쉬운데 이를 건너뜀으로써 시청자에게 진입장벽을 낮춰 주었다. 초반에 부담 없이 쉽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시청자를 붙잡아 앉힌 후 이 드라마는 곧 자폐 스펙트럼에 관해, 장애에 관해, 진지하고 차분하게 이야기 속에 녹여낸다. 영우처럼 서울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될 정도의 천재성을 가진 경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 지극히 소수다. 그래서 오히려 이 드라마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드라마는 그런 우려에 대해 드라마 안에서 답을 한다. 3화 “펭수로 하겠습니다”에서 영우와는 달리 단답형의 대답밖에는 못하고 의사소통도 어려운 중증도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남성이 등장한다. 자폐의 증상과 정도가 모두 영우와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형제간 살해라는 누명을 쓰고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인물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현실적인 실상을 보여준다. 그 남성의 보호자인 어머니는 같은 자폐 장애인이면서 자기 아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영우에게 “솔직히 변호사님을 뵙는 게 마음이 좀 힘들었다”고 복잡한 심경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 화에서 영우는 특유의 감정 없는 건조한 내레이션을 통해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백명의 사람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라는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덧붙인다. 목소리 높여 주장하거나 눈물로 호소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묵직하게 오래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었다.

작가의 따뜻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은 조연들의 설정과 활용에서도 느껴진다. 영우와 구별하여 ‘보통 변호사’라는 표현을 쓴 후에 미안하다고, 차별적인 언어였다고 반성하고 사과하는 상사 정명석(강기영 분)이라든지 첫 만남부터 편견 없이 ‘회전문에 들어갈 때는 왈츠를 추듯이 하라’고 알려주는 송무팀 직원 이준호(강태오 분), ‘봄날의 햇살’ 최수연(하윤경 분) 등 영우 주변에는 장애에 대해 편견이 없거나 혹은 없어야 함을 인지하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영우를 불편해하며 따돌리고자 하는 이기적인 동료 권민우(주종혁 분)도 있고, 영우와 함께 있는 준호를 보고 장애인 도움 봉사를 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오해해버리는 후배처럼 무심해서 폭력적인 시선도 보여준다. 현실의 실상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다.

더불어 이 드라마는 이야기로서의 재미에도 게으르지 않다.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들로 매회 독립된 에피소드를 구성해 흥미를 더하고 판결의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이끌고 가면서 재판의 승소 여부에 따라 이른바 ‘사이다’를 선사한다. 법정물의 흥미 요소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또 회차별 독립된 이야기는 긴 서사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언제든 중간에 시청자가 유입되는데 유리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가 사실 빈틈없이 노련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짝 어색해도 진심이 느껴진다. 결국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시청자의 마음에 와닿는 진정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컷 (출처:에이스토리 공식 인스타그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컷 (출처:에이스토리 공식 인스타그램)

이 드라마에 대해 실제 자폐를 비롯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나 혹은 그 가족들의 의견은 조금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을 잘 반영해서 그리고 있고 시선이 따뜻하다는 긍정 평가가 있는가 하면 영우와 같은 사례는 거의 전무할뿐더러 주변 환경도 판타지에 가깝다고 오히려 장애에 대해 안이한, 잘못된 인식을 양산한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이 장애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관한 작품을 만들 때 창작자의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느 만큼 사실을 반영하고 어디까지가 각색과 창작의 영역인지 누가 선을 긋듯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고 결국은 창작자의 가치관과 인식의 수준에 기댈 수밖에 없다. 창작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다.

동시에 덧붙이고 싶은 점은 드라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극적인 구성을 필요로 한다. 드라마가 평생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을 소재로 삼고 백 명 중의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이유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될 수는 있어도 드라마가 되지는 않는다.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주인공과 극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 드라마에서 선택한 것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에서도 딱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의 변호사였고 그런 인물이 심지어 대한민국 최고 로펌에 입사하는 특별한 사건이다. 그렇게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 드라마는 지금처럼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처음부터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의 수많은 짤이 돌아다니고 주인공의 귀여운 모습이 강조되면서 ‘장애’가 지나치게 미화되어 ‘콘텐츠’로만 소비되는 건 아닐까 잠시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갖는 이 우려를, 똑똑한 시청자들도 이미 다 감안하고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주인공 배우가 오래 숙고한 끝에 배역을 수락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마도 작가와 연출 또한 그만큼 누구보다 오래 많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했을 것이다. 적어도 6화까지 그 진정성은 느껴져 왔다. 앞으로 남은 이야기의 여정에서도 재미와 감동을 흠뻑 즐기는 사이, 제작진의 간곡한 의도가 시청자에게 온전히 가 닿기를 바란다.

 

 
 
글 · 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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