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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의 문화톡톡] 남성 연애 판타지 혹은 미연시 게임의 일상화
[이 호의 문화톡톡] 남성 연애 판타지 혹은 미연시 게임의 일상화
  • 이호(문화평론가)
  • 승인 2022.11.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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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캠퍼스 S 커플>

<엽기적인 그녀>를 비롯해 <동갑내기 과외하기>,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2000년 초반을 달구었던 여성 연애 판타지물들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출발하여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많은 이익을 일구어냈던 시절도 옛말이 되었다. 그를 뒤따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내러티브 문화 전반적인 영역에서 남성 판타지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이 후퇴했기 때문인가, 오늘 짧게 언급할 <캠퍼스 S 커플>이라는 B급 영화는 아주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랑 없이도 사랑할 수 있고, 연애 없이도 사랑할 수 있으며, 만남 없이도 연애할 수 있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혁신적인 시대에 젊은 청춘 남성의 연애 판타지는 빠르고 쉽게 스스로의 꿈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이고 본질적으로 직핍하게 도와주는 역설적 순기능을 갖는다.

 

찬승은 짐승 같은 남자들이 들끓는 군대에서 벗어나 여자들로 둘러싸인 대학 캠퍼스에 복학한다. 그러자 그의 여성 판타지 시뮬레이션 게임이 시작된다. 이 게임은 마치 한편의 쇼와 같아서 플레이어가 능동적인 동작을 취하지 않고 몇 가지 수동적인 반응만 취해도 알아서 게임이 진행된다. 미녀들은 밑도 끝도 없이 찬승을 좋아하거나 좋아할 예정인데, 찬승을 둘러싼 3명의 여자들은 남성의 입장에서 세상의 많은 여자들을 크게 분류해 넣을 수 있는 3가지 유형들이다. 귀엽고 섹시하고 청순한 여자. 이로써 여성의 3가지 전형성이 확보된다.

그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여자의 전형은 바로 귀여운 스타일의 유진(발발녀로 명명하겠다)이다. 교회 오빠-찬승을 졸졸 쫓아다니던 순정파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변함없이 그를 쫓아다녔을 정도로 찬승바라기다. 심지어 그녀는 찬승과 같은 학교에 같은 학과를 지원하고, 2년이라는 군대를 기다리기까지 하면서 그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그녀는 배알도 없는 것 같다는 말이 딱 맞아 보일 정도로 행동한다. 그래서 찬승에게 팽 당한다. 옷 벗기기 게임에서 옷을 다 벗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살짝 가린 몸보다 홀딱 벗은 몸이 매력 없는 것처럼, 옷 벗기기 게임에서의 룰을 지키지 않은 여자는 더 이상 매력이 없다. 아무것도 가린 것 없이 다 보여주는 발발녀는 찬승의 게임세계에서 아무런 끌림도 일으켜 낼 수 없는 캐릭터다.

그렇다면 도도하고 쉬크한 여자 아영(도도녀로 명명하겠다)은 어떠한가. 그녀는 역시 쿨했다. 그녀와 찬승은 첫 만남에 원나잇을 한다. 찬승은 어수룩한 자신의 모습을 좋아해 주는 도도녀의 모습에 놀라고, 그녀의 몸에 두 번 놀란다. 몸은 주되 마음은 주지 않는 도도녀. 우리는 그녀의 차갑고 시크한 매력이 과거의 어떤 상처에 의해 발생한 것, 그러니까 그녀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자신을 조금 더 차갑고 모질게 보이도록 했다는 점을 발견한다. 클럽에 가서도 부킹을 하지 않고, 자신의 번호를 따려는 남자에게도 쉽게 꺼져라고 말할 수 있는 도도녀가 남자친구를 만들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가 누구보다 여리고 상처를 쉽게 받는 인물이라는 사실, 도도녀는 그 누구와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찬승의 질문 넌 이상형이 뭐야?”라는 질문에 도도녀가 나를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을 때, 도도녀는 찬승에게 도도녀의 모습을 잃는다.

 

이로써 찬승과 도도녀의 관계도 뒤집혀 버린다. 도도녀에게 찬승은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도리어 찬승이 결정적으로 떠나는 이유가 된다. 어느 순간 찬승을 진심으로 대하는 도도녀에게 매력은 저만치 사라지고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기모노를 입고 있는 여인처럼, 손을 대자 탁하고 옷고름이 풀리듯 신비의 베일이 풀리는 여자, 도도녀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게 되면서 도도녀와의 게임도 끝나게 된다. 찬승의 눈앞에 도도녀는 온데간데없고 이것도 먹어봐하고 부끄럼을 타며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내어주는 친절한 여자, 그래서 더더욱 상처를 감싸주고 보듬어 주어야 할, 어떤 밋밋한 캐릭터만 남았다.

그렇다면 청순가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용과 민주(달달녀로 명명하겠다)는 어떠한가. 청순이라는 이미지는 찬승이 바라던 이상형의 여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 조건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청순함을 지니고 있을 것 같은 그녀의 외모는 찬승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가지고 싶은, 그러나 가질 수 없는 그녀 앞에 찬승은 마음 졸인다. 그래서 그녀는 이 게임의 승자다. 그녀는 찬승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원하는 것을 달성해 줄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다가갈 때마다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는 그녀, 줄 듯 말 듯, 알 수 없는 그녀. 옷 벗기기 게임에서 흥미진진함은 옷을 입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옷이 쉽게 벗어지는 것도 아니다. 옷을 벗길락 말락 하면서 옷이 벗겨지지 않을 때의 그 짜릿함이다. 이로써 플레이어가 게임에 완전히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게임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플레이어에게 그 장을 어떻게 공략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거리를 제공하는 캐릭터다. 그리고 달달녀만이 찬승에게 그러한 역할을 한다.

 

 

판타지가 늘 그렇듯 달달녀와 꿈같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를 이어가던 찬승은 얼마 뒤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부자집 아들인 선배에게 달달녀를 비극적(충격적)으로 빼앗기게 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눈 뜨게 되자,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일말의 진실들이 찬승의 눈앞에 드러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옥같은 명대사, “아 씨발 하늘 존나 파랗네.” 그렇게 게임이 끝나고, 자신의 판타지가 박살나 남루하고 비루한 현실로 돌아온 우리들의 히어로(내러티브 에이전시) 찬승은 또 어떤 판타지를 찾아 이 세상을 살아나갈까? 그러나 별로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람들은 모두 어떤 거대한 이야기’(meta-narrative) 안에서 산다. 거대서사가 붕괴하고 미시서사들이 그 이야기를 대체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표면의 현상만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넷플릭스를 비록한 수많은 OTT 채널들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처럼만 보인다. 진실을 말해보자면 거대서사가 붕괴한 것이 아니라, 거대 서사들이 원초적이고 나이브한 형태로, (문화-인류학이 아니라) 본능적인 동물-행동학 수준의 것으로 후퇴했을 뿐이다. 그래서 원시적인 서사들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캠퍼스 S 커플>은 젊은 남자 사람들의 판타지를 원형적이고 도식적으로 보여준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단순하게 패턴으로 음란한 판타지를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많고 많은, 잡다한 이야기들의 담론 분석을 수행해 보면, 각기 흩어진 원시부족들의 토템 수준으로 후퇴했고, 허섭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은 설화 수준으로 회귀한다. 그것이 나쁜가? 굳이 계몽적인 도덕적 판단을 수행할 필요는 없겠다. 사람들이 그것을 즐기고 누리고 그것으로 이득을 취하면(사회-경제적으로 동작하면) 그뿐인 시대, 따라서 우리 또한 그런 시대를 그저 총총거리며 따라가면 그만이다. 우리가 살면서 지나가는 시간대가 그럴 뿐이다.

 

 

 

글 · 이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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