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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헌트>: 역사적 감정이입의 이중화법에 대하여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헌트>: 역사적 감정이입의 이중화법에 대하여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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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헌트>에는 솜씨 좋은 연출 속에 어색하게 느껴지는 서투름이 담겨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취조실에서 등장하는 장철성(허성태)이 보여준 행동, 그가 가진 공포스러운 얼굴에 비해 어설픈 피의자 가격 장면을 특징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식의 전형적인 문법이 가세하여 너무나도 때깔 좋은 영화로 탄생했지만 간간히 보이는 이런 서투름으로 인해 영화를 꼼꼼하게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가 아니라 영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하려고 그랬던 것일까? 모르긴 해도 이 영화가 그런 옥에 티를 압도하는 것은, 유려한 만듦새 때문이 아니라 역사를 다루는 교묘함 덕분이다. 그런 느낌을 가진 이정재의 <헌트>는 누가 뭐라 해도 한국의 근대사를 겨냥한다.

 

한국 근대사의 역동성을 여기서 말해서 무엇 하랴. 하지만 한국의 근대사를 다루는 이 영화의 서사는 대체로 민주주의 제도 바깥에서 구축된 것들을 겨냥한다. 그리고 이내 그것들을 향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려는 듯 통한과 회한의 역사적 맥거핀을 곳곳에 숨겨 놓는다. 그렇다면 민주적 제도로는 도저히 어떤 제재도 가할 수 없어서 그대로 흘려보내고야 말았던 통한과 회한은 어떤 식으로 만회될 수 있을까? 그래. 영화적으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기가 직접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언뜻 보면 사적인 감정이 녹아든 느와르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 피해를 상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명분 찾기란 쉽지 않다. 당한 만큼 되돌려준다는 식의 속 시원한 복수극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헌트>는 여기에 ‘역사적 감정이입’을 동원하여 복수극의 양상을 부여한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는 정신현상 이른바 동일화하려는 경향을 역사적 피해자에게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때 <무간도> 혹은 <신세계> 식의 스파이 장르 문법을 차용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박평호(이정재)와 김종도(정우성)가 사실은 목적이 같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면 감정이입의 방식은 더욱 강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의심만이 무한 반복되는 두 사람의 영화적 상황은 한국 근대사의 피해자를 ‘우리’에서 ‘나’로 전환하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이 느와르가 시도하려는 복수는 실패한다. 언뜻 보면 역사적 실패를 답습하는 것 같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어차피 복수의 대상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폭발물에 의해 ‘그’의 몸이 산산조각이 난다 한들 무엇이 바뀔 수 있겠는가. 복수가 불가능한 역사적 상대의 부재. 그래서 김종도가 내뱉는 통한의 대사는 카타르시스를 줄 수는 있지만 남은 자들의 상처를 치료하진 못한다.

 

그러므로 <헌트>는 복수에 실패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복수를 포기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이 존재하지 않은 때에 결단을 한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복수의 이 실패가 영화의 실패라고 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애초부터 실패할 것을 상정해 놓았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 실패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직시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헌트>는 실패의 불가피함을 통해서 한국 근대사의 논리를 교묘하게 비판한다. 마침 그 회한이 또 다시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재의 <헌트>는 이런 비판의 기로에서 현명한 선택을 했다. 신인감독에게 용인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서투름을 활용하여 가장 예리한 방식으로 역사적 단죄를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모르지만 그의 이런 이중화법의 묘는 분명 중요한 재능이 될 것이다. 이정재가 감독으로의 첫 걸음을 뗀 것이 반가운 이유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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