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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문화예술계의 왜곡·편집·표절 논란
[김민정의 문화톡톡]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문화예술계의 왜곡·편집·표절 논란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2.12.05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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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수리남]포스터
드라마 [수리남]포스터

202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계가 떠들썩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영화 <기생충> 그리고, BTS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작년 한 해 대한민국이 즐거운 축제 한마당이었다면, 올해는 모든 축제가 끝난 뒤에 벌어지는 소란스러운 ‘뒤풀이’로 몸살을 세게 앓는 중이다. 드라마 <수리남> 사실 왜곡 논란과 드라마 <안나> 편집권 논란에 이어 작곡가 유희열의 표절 논란까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뒤풀이는 일종의 맺음의식이다. 본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거침으로써 판의 신명은 비로소 절정에 다다른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K-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2022년 대한민국은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 서 있다. 지금 여기 우리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을 것인가. 자, 세 건의 논란을 되짚어 보자. 현상은 복잡하지만, 본질은 의외로 단순하다.

 

드라마 <수리남> 사실 왜곡 논란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9일에 맞춰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넷플릭스 비영어권 부문 1위를 차지하며 국내외 많은 관심을 모았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 매체인 디사이더는 “<오징어게임> 이후 최고의 한국드라마”라고 극찬했고, 미국의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시청자 평점 93%이란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높은 관심만큼 논란도 뜨거웠다.

<수리남>은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을 배경으로 한국인 마약상과 그를 잡기 위해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 중 수리남은 인구 4분의 3이 마약 산업 관련자인 마약 생산국으로 묘사된다. 이에 대해 수리남 외교부 장관은 "드라마에 나온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자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야기한다"며 "제작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외교 마찰'로 비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수리남을 담당하는 주베네수엘라 한국 대사관에서 수리남 교민들에게 “조심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수리남> 사실 왜곡 논란을 둘러싼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창작품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리남>에 관한 언론보도 대부분은 드라마 모티프가 되는 실화와 드라마의 차이를 분석하는 내용으로 실제 이야기가 너무 극적이라서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져 보일까 봐 극적인 설정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윤종빈 감독이 실제 인물을 여러 번의 취재했다는 것과 실화 속 주요 인물인 마약왕 조봉행과 관련된 또 다른 사건이 영화 <집으로 가는 길>(2013)로 제작되었다는 것도 자주 언급된다.

다른 하나는 K-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지금, 드라마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국가와 종교, 지역 등 특정 집단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는 공적 책임감이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리남>은 특정 국가에 관한 사실 왜곡 논란뿐 아니라 극 중 마약왕의 직업이 목사로 설정된 것을 두고 왜곡된 종교관을 심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마약 거래의 주요 배경이 되는 차이나타운 또한 중국 이미지 왜곡에 대한 비판이 중국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수리남> 논란을 둘러싼 상반된 두 견해는 <수리남>이라는 특정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고, 대중예술로서 드라마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하나는 감독과 작가의 창작품으로서 드라마의 사적 영역에 토대를 두고 표현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다면, 다른 하나는 드라마의 공적 영역에 방점을 찍고 극에서 재현되는 사회 윤리에 주목한다.

문제의 본질은 사실 왜곡이 아니다. <수리남> 논란의 본질은 ‘픽션’인 드라마에 대한 인식이다. 다시 말해, 이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드라마란 무엇인가’에 관한 판단 기준이다. 그리고 이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의 영역에 속한다. 결국 <수리남> 논란은 그 어떤 가치판단의 절대적 승리나 일방적 수렴 없이 팽팽한 대립 구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수리남> 이후의 또 다른 <수리남>에서는 더 거세게 확장될 것이다.

K-드라마의 영향과 파급효과는 이제 전 지구적인 규모로 확장되었다. 과거에는 한국 국경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웠지만 나간다고 해도 남미의 수리남까지 도착했을 때는 한국에서 <수리남>은 이미 옛날 작품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수리남발 논란은 후일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업로드되면 전 세계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함께 시청한다. ‘디지털 실크로드’ 글로벌 플랫폼이 열어놓은 드라마의 신세계에서는 유통과 배급의 순차성이 사라졌다. 이슈의 단계적 분절과 순차적 지연도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공개되는 즉시 이슈와 논란도 실시간 전 지구적으로 공유되고 확산된다.

 

드라마 [안나] 포스터
드라마 [안나] 포스터

드라마 <안나> 편집권 논란


쿠팡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는 공개된 2022년 6월 첫 달에만 쿠팡플레이 이용자수가 60만 명이 증가할 만큼 OTT계의 후발주자인 쿠팡플레이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 편집권을 두고 쿠팡플레이와 이주영 드라마 감독이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이주영 감독은 쿠팡이 일방적으로 작품을 편집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됐다고 밝혔다. 기존에 8부작인 것을 6부작으로 줄이고, 쿠팡플레이가 자체적으로 분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서사·촬영·편집·내러티브의 의도 등이 모두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다.

쿠팡 측은 즉각 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드라마 공개에 앞서 이주영 감독과 논의를 시도했으나 원활히 진행되지 않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법적 분쟁으로 번지려는 가운데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쿠팡플레이의 사과 진위를 두고 양측의 ‘진실 공방’이 벌어지면서 <안나>를 둘러싼 갈등은 한층 심화하였다. 현재 양측은 서로 법적 조치에 들어갈 것을 예고한 상태다.

이번 논란의 쟁점은 얼핏 보면 편집권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계약서에 최종 편집 권한이 누구에게 있다고 적혀 있는가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쿠팡 측과 이주영 감독, 나아가 한국 콘텐츠 산업 관계자들까지 이번 논란의 결과에 이목을 집중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이번 논란에서 편집권이 가지는 의미는 편집권 그 이상이다.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콘텐츠 제작에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한국 콘텐츠 산업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콘텐츠를 창작자의 고유한 ‘작품’이 아닌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는 ‘상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확산이 자리한다. 쿠팡 측이 이주영 감독에게 ‘왜 모든 것에 의미를 담아 만들었느냐’고 질책하고 편집을 요구한 것과 그것을 관철하는 방식이 굉장히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던 것,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해서 드라마가 호평을 받은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드라마를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나>를 둘러싼 편집권 논란의 본질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드라마를 대체 불가능한 한 편의 고유한 작품으로 바라보는 창작자와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보는 영리 기업의 시각 차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작과 제작 과정의 지배권을 둘러싼 창작자와 기업의 ‘쟁투’다.

과거에도 투자자로서 기업은 ‘갑’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투자가 확정되고 슈팅에 들어가면 창·제작 과정을 지배하는 ‘갑’의 지위는 창작자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번 <안나>에서는 투자를 확정한 이후의 창·제작 과정을 기업이 지배하려고 시도하면서 갈등이 발생하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드라마란 콘텐츠를 창작자의 고유한 작품이 아닌 OEM, 즉 주문자 위탁 생산품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기업의 출현이다.

자본과 유통망을 확보한 기업이 생산능력을 가진 제조업체에 자사에서 요구하는 상품을 위탁 가공하여 자사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OEM의 시대가 문화예술계에서도 개막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드라마를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확신하고 투자에 나서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들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상품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자사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할 제조하청 업체를 찾을 것이다. 또한 발주, 검수 부서에 시장의 상품성뿐만 아니라 하청 제조업자인 창작자 못지않은 작품 감식안을 가진 인력을 보강하여 창·제작의 과정을 지배하려 들 것이다. 결국, 앞으로 창작자와 기업의 충돌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작곡가 유희열의 표절 논란


2022년 6월, 작곡가 유희열이 소속사 안테나의 브랜드 협업 프로젝트 '생활음악'을 통해 발표한 노래 <아주 사적인 밤>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유희열이 작곡한 다른 노래들에 대해 잇따라 표절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증폭되었다.

여러 뮤지션과 음악평론가 들이 표절 시비를 가리는 데 연이어 동참하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나의 의견과 그에 대한 반박, 그리고 반박의 반박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등장했다. 이런 격렬한 논쟁의 배경에는 제각각 다른 음악관과 그것에서 파생된 표절에 대한 상이한 평가 기준이 존재한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표절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관’과 ‘표절관’이 결합된 형태의 유희열 표절 논란은 명확한 대립 구도를 가진 <안나>의 편집권 논란과 <수리남>의 사실 왜곡 논란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결국 유희열 표절 논란은 표절에 관한 절대적 기준의 부재를 재확인하고, 저작권 침해 관련 강력한 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매년 예술계 저작권 논란은 지속되어 왔다. 이번 표절 논란만 하더라도 법적 기준이 개선되지 않아 문제가 반복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강력한 법 제정만으로 표절 문제를 해결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표절은 원작자가 고소해야 성립되는 친고죄다. 외국에선 표절 시비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해 표절 판정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당사자 간 협의로 마무리되거나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저작권 논란으로 법정까지 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번 유희열 표절 논란만 해도 원곡자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하였으나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왜 국내에선 유독 표절 논란으로 법정에 가는 경우가 드물까. 단순히 절대적 평가 기준의 부재 때문일까. 그동안 대중음악에 있어 관련 법규의 개정이 미진했던 배경에는 음악을 법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에 대해 정서적 불편함이 자리한다. 법적 평가의 대상이 아닌 양심의 문제, 윤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표절이든 아니든 유희열의 수치” “법보다 양심의 문제” “도덕적 해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양심과 윤리의 심판자는 법원이 아니라 작품의 향유자들인 대중의 여론이었다.

이번 유희열 표절 논란이 강력한 법 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은 대중의 인식이 변화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이 윤리의 문제에서 법률의 문제로 전환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바로 양심의 문제에서 ‘수익’의 문제로의 전환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가려져 있던 음악이란 작품(상품)을 생산하고 배급하는 기업이 가장 주요한 이해당사자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표절 의혹과 함께 저작권료 수입에 관한 기사들이 주목을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2022년 문화예술계의 현상과 본질


202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왜곡·편집·표절 논란. 흥미롭게도 문제의 본질은 왜곡도, 편집도, 표절도 아니다. 그렇다고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대립도 아니다. 예술관의 차이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예술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2022년 한국 문화예술계의 왜곡·편집·표절 논란의 근본적 배경은 바로 ‘예술 환경의 변화’다.

지금까지 문화예술의 생태계는 작품을 생산하는 창작자와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에 의해 형성되고 지탱되었다. 앞서 언급한 세 사건에서 논란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각 사건의 이해관계자였다. 하지만 그 논란을 사회적 이슈로 쟁점화하여 스스로 담론의 주체로 나선 것은 일반 대중이다.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대중의 영향력 강화는 20세기에 나타난 상대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창조주로서 창작자의 지위는 하락했고 대중은 작품을 감상하는 소극적 향유의 단계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의미를 재창조하는 적극적 향유의 단계에 도달하였다. 세상에는 작품에 대한 하나의 절대적인 참 해석이 없으며 하나의 절대적인 창작자도 없다. 예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 도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의 약진에 따라 창작자의 절대적 지위가 현저히 약화된 가운데 창작자를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도전자가 2022년 문화예술 생태계에 출현하였다. 바로 ‘자본과 기업’이다. 창작자와 향유자인 대중을 매개하는 자본과 기업의 존재는 예전에도 있었고 그 역할은 그때에도 굳건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동안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매개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그들이 전면에 등장하여 ‘작품보다 상품’이 지배하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주도하기 시작하였단 사실이다.

세계적인 성공 이후 202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는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 서 있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은 각양각색의 예술관이 혼재되어 무질서하고, 예술을 향한 모든 가치판단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술은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동시에 세상 그 모든 것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 심지어 예술이 더는 작품이 아닌 상품임을 선언하고 있는 자본과 기업까지도 변화하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움직이는 새로운 에너지임에는 분명하다. 2022년 ‘지금 여기’의 문화예술 생태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이성과 감성이 미치지 못하는 제3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대의 예술은 만들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홍보용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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