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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아이와 함께하는 역사문화기행 : 세계유산과 조선왕릉길Ⅱ
[김정희의 문화톡톡] 아이와 함께하는 역사문화기행 : 세계유산과 조선왕릉길Ⅱ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2.10.31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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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과 동구릉 그리고 헌인릉 이야기

        정릉

 

정릉    ⓒ김정희
정릉 ⓒ김정희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신의왕후 한 씨(1337~1391)는 방우‧ 방과(정종)‧ 방의‧ 방간‧ 방원(태종)‧ 방연 아들 여섯과 경신‧ 경선 두 명의 딸을 낳았다. 신의왕후 한 씨의 능인 제릉은 개성에 조성되었는데, 마찬가지로 북한에 있는 정종의 후릉과 함께 세계유산에서 제외되었다.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 씨(? ~1396년(태조 5))는 방번, 방석 두 아들과 딸 경순을 낳았다. 신덕왕후는 조선 최초의 왕비로 이성계는 그녀가 죽자 경복궁 가까이에 (현재 중구 정동) 정릉을 만들고 자신의 능자리도 그곳에 만들었다.

      흥천사

 

흥천사 ⓒ김정희
흥천사 ⓒ김정희

태조 이성계는 170여 칸의 큰 규모로 정릉의 원찰 흥천사도 세웠는데 흥천사 종소리를 들어야 수저를 들었다고 한다. 원찰이었던 흥천사는 왕실 사찰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510년(중종 5) 유생들이 일으킨 화재로 소실되었다. 정릉의 풍파와 함께 이어져 오다가 1865년(고종2) 흥선대원군 등의 시주를 받아 새롭게 절을 짓고 다시 흥천사가 되었다.

 

광통교 ⓒ김정희
광통교  ⓒ김정희

1408년(태종 8) 태조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태종은 아버지의 능을 현재의 건원릉에 모셨다. 다음 해에는 정릉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면서 정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옛 정릉에 남아 있던 석물을 광통교를 짓는 데 사용하고 사람들이 밟고 다니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 신덕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도 않았다. 정릉에는 병풍석, 난간석, 무석인 등의 석물은 없고,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친 돌만 옛 정릉의 석물이다. 나머지 석물은 현종 대에 다시 만든 것이다.

태조의 건원릉이 있는 동구릉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아홉기의 능’이라는 뜻이다. 태조의 건원릉을 시작으로 현릉, 목릉, 숭릉, 휘릉, 혜릉, 원릉, 경릉이 차례로 조성되었는데, 능이 조성될 때마다 동오릉, 동칠릉이라 불렸다가, 1855년(철종 6) 수릉이 마지막으로 조성되면서 현재의 동구릉이 되었다. 1408년(태종 8) 건원릉이 조성될 때부터 경릉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 효정왕후가 모셔진 1904년까지 500여년에 걸쳐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 최대 규모의 왕릉군이다.

   동구릉 외금천교

 

일부 복원된 동구릉 외금천교  ⓒ김정희
일부 복원된 동구릉 외금천교 ⓒ김정희

동구릉 입구에는 물길이 흐르고, 돌다리인 금천교와 물길이 흘러드는 연지가 있었다. 동구릉 내 각 왕릉 진입 공간의 금천교및 연지와 구별하여 외금천교, 외연지라고 하였다. 외금천교와 외연지의 모습은 1975년 촬영된 항공사진에서도 확인되고 있지만 동구릉 입구를 지나는 43번 국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철거되었다. 현재 도로가 지나고 있어서 다리를 복원할 수 없어 일부를 동구릉 입구 마당에 전시하고 있다.

건원릉 정자각

동구릉에서 건원릉 정자각은 목릉(선조와 의인왕후) 정자각, 숭릉(현종과 명성왕후) 정자각과 함께 가치가 인정되어 보물로 지정된 건물이다.

건원릉 억새풀 이야기

 

건원릉 억새 ⓒ김정희
건원릉 억새 ⓒ김정희

태조는 세상을 떠나기 전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함흥)의 억새를 사초(무덤에 잔디를 입히는 것)로 쓰게 해달라고 했고, 신덕왕후 강 씨와 함께 정릉에 묻히고 싶어했다. 태종은 봉분에 고향의 억새를 쓰게 해달라는 소원은 들어주었지만 신덕왕후 강 씨와 묻히고 싶어 했던 소원은 들어주지 않았다.

헌인릉

헌인릉은 태종(1367~1422, 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과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인 인릉을 말한다.

1420년(세종 2)에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가 세상을 떠나 광주 대모산에 능을 조성하였다. 이때 태종은 자신의 능자리를 미리 만들었고, 1422년(세종 4)에 태종이 죽자 원경왕후의 능 서쪽에 능을 조성하였는데 쌍릉 형식으로 조선왕릉 중에서 석물이 2배로 많이 배치된 능이다. 신도비가 임진왜란으로 손상되어 숙종 대에 기존 신도비 옆에 다시 만들어 세웠다.

효자였던 세종대왕은 부모님 옆에 묻히고 싶어 했다.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세상을 뜨자 헌릉 서쪽에 능을 만들었고, 세종이 돌아가시자 합장하였다. 세조 대에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1469년(예종 1)에야 여주로 영릉을 옮겼다. 원래 영릉 터에 있던 석물들은 그대로 묻혔고, 순조가 세상을 떠났을 때 파주 교하에 조성되었던 인릉이 옛 영릉 터로 옮기면서 땅에 묻혀있던 석물을 다시 꺼내 다듬어 사용했다고 한다. 1972년에는 인릉 근처에서 정인지가 글을 짓고, 안평대군이 글씨를 썼다는 세종대왕 신도비를 발굴했다고 한다.

 

헌인릉 ⓒ김정희
헌인릉 ⓒ김정희

조선왕릉 가을숲길

11월말까지 조선왕릉 숲길 열 곳을 개방하고 있으니

이 가을에 한 번쯤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구리 동구릉 휘릉~경릉~양묘장 숲길

남양주 광릉 복자기나무 숲길

남양주 사릉 홍살문~능침 북측 숲길

서울 태릉과 강릉 태릉~강릉 숲길

연산군묘 참나무 숲길

서울 의릉 천장산 숲길

파주 장릉 능침 둘레길

파주 삼릉 공릉 북쪽과 영릉~순릉 사이 작은 연못 숲길

화성 융릉과 건릉 융릉~ 건릉 숲길

여주 영릉과 영릉 영릉 외곽 숲길

        

ⓒ김정희
ⓒ김정희

건원릉 억새절정기 능침 특별개방

건원릉에서는 11월1일부터 11월20일까지 억새절정기 능침 특별개방이 진행될 예정이다.

안내해설과 함께 억새로 덮인 건원릉을 관람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기회이다.

 

 
·김정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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