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최양국의 문화톡톡] 금성인의 자기-4계 그리고 백자부
[최양국의 문화톡톡] 금성인의 자기-4계 그리고 백자부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3.03.06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자들은 화성에서 오고, 여자들은 금성에서 왔다고 상상해 보자.~(중략)~.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 출신이고, 따라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중략)~.여자는 파도와 같다. 물결이 솟아오를 때 그녀는 사랑이 충만하지만, 파도가 꺼지면서 마음의 공허를 느끼면서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이렇게 밑바닥이 드러나는 때가 바로 그녀가 감정의 대청소를 하는 시간이다.~(후략)~.“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2022년), 존 그레이(김경숙 옮김, 동녘라이프) -

 

겨울이 내려가고 봄은 올라온다. 금성인이 두 입술 사이에 봄잎을 물고 분다. 봄피리 소리는 마법이 되어 흘러가며 금성인의 시간을 주기화한다. 시간은 빛과 어둠으로 이어지고 상승과 하강을 하며 교차한다. 빛과 어둠은 낮과 밤을 가로지르는 24시간의 태양 마차 여행을 비춘다. 상승과 하강은 봄~여름과 가을~겨울을 교차하며 12번의 달 순환 여행을 낳는다. 빠른 주기는 하루가 되고, 느린 주기는 일년이 되어 흐른다. 금성인의 삶은 빠르고 느린 주기로 쌓여가며, 꽃 채움을 향한 청색과 눈 비움의 백색으로 지배된다. Allegro(빠르게)와 Andante(느리게)의 노래가 백자부 되어 흙의 신화로 퍼져 나간다.

 

금성인 / 청자 백자 / 채움 비움 / 시간 여행

금성인이 자기(瓷器)를 빚고 파도를 그린다. 금성인의 삶은 자기의 변화와 함께 흘러간다. 난길(밝고 환한 앞날을 향해 난 길)을 통해 끊임없는 재생을 하며 채움과 완성을 향해 하강을 위한 상승의 파도를 오른다. 청자의 시기다. 상승의 파도가 또 다른 상승을 위한 하강의 파도로 변한다. 비움과 미완성을 좇아 상승으로 이어지는 하강의 파도를 탄다. 백자의 시기다. 금성인의 제1막은 청자, 이어서 제2막은 백자의 삶으로 흐른다.

 

*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Google
*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Google

최순우(1916년~1984년)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2002년)에서,”~(전략)~.한국 도자공예의 아름다움은 고려시대 청자부터 시작된다. 비 개인 후 먼 하늘의 맑고 푸른 빛을 연상케 하는 이른바 비색의 해맑은 푸른빛은 훗날 백자 전성의 조선 자기에도, 그리고 우리네가 즐겨 입은 담담한 의상 빛깔에도 일관해서 나타나는 민족의 성깔이며 결곡하면서도 부드럽고 또 길고 긴 곡선의 아름다움은 고려 상류사회의 유연한 생활과 불교적인 감정이 깃들인 것이라고 흔히 설명을 하게 된다.~(중략)~.시작한 곳도 끝간 곳도 모르는 가늘고 긴 선 그리고 헤식은 듯하면서도 또 부드러운 곡선은 고려 청자의 청초하고 연연한 매무새의 아름다움은 이 곡선의 힘이 거의 지배하고 있다.~(후략)~.“ 라고 한다. 고려청자는 흙의 성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물, 불 그리고 바람과의 조화를 품에 안은 가마가 이룬, 인간 물질 욕구를 향한 자기의 결정체이다. 이는 자기 표면에 무늬를 조각하고 그 속에 백토와 자토를 채우는 상감기법으로 발전한다. 동식물 등 자연의 대상물을 문양의 형태로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물아일체의 불교적 이상 세계를 그리며 천하제일의 비색 청자를 남긴다. 푸른 비색은 하늘의 색으로 맞닿으며, 자기를 통한 치열한 채움과 완성을 향한 수직적 삶의 길을 나타낸다.

고려의 이규보(1168년-1241년)는 <동국이상국집,제8권>(1241년)에서 신비로운 청자에 대해 “푸른 자기 술잔을 구워내/ 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라고 하면서 그 제작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린 것 같다고 한다, 이는 당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천하제일 비색청자”로 평가되었던 것과 연결되며, 삶에 대해 인간이 추구하는 무엇(what)에 대한 욕망을 곡선과 색의 공간 미학으로 표출한다. 가문 중시의 귀족 관료 사회 특성과 화려함을 좇는 물질의 본질 추구는 자기를 통한 자연과의 합일 창조라는 역설을 담는다. 흙의 신화를 향한 금성인의 제1막은 청자의 비색 꿈처럼, 채움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상승 욕구 충족의 시공간을 향해 퍼져 나간다.

최순우(1916년~1984년)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2002년)에서 조선백자에 대해 다시 “~(전략)~.흰빛으로 빚어진 어리숙하게 둥근 뭇항아리의 군상들 그리고 선의와 치기가 깃들인 지지리 못생겨 이지러진 그릇들, 때때로 목화송이같이 따스하고 때로는 백옥같이 갓맑은 살결의 감촉, 조선시대 백자의 흰 빛은 그 아름다움에 참으로 변화가 많다. 조선 자기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건강하고 착실한 아름다움이다. 민중이 실용하는 그릇이요, 기교나 허식을 멀리 벗어난 숫배기의 아름다움이다. 젊을 때는 애틋한 애인같이 그리고 나이들어서는 잘생긴 며느리처럼 순박한 아름다움에 바치는 마음의 즐거움, 이것은 오히려 병적이라기보다는 낭만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까. 이제 조선의 아름다움은 이미 오백 년을 살아 왔다. 그리고 해묵은 조선의 그릇들은 오늘도 아예 늙을 줄을 모르고 있다.~(후략)~.”라고 한다. 조선백자는 흙의 성질을 다각적으로 확대 적용하고 물, 불 그리고 바람과의 조화를 품에 안고자 하는 도공이 이룬, 인간 정신 가치를 향한 자기의 의식체이다. 이는 당시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왕실에서 사용하던 은그릇의 대용으로 정착한다. 고려 시대의 화려한 물질문화를 벗어나 실용성을 강조하며 계층별 특성을 대변하는 다양한 형태의 얘기들을 전한다. 안료, 기법, 문양 및 용도에 따라 그들만의 정체성을 갖는다. 자기의 재질, 제작기법 및 시기, 문양과 종류 등은 그들의 이름을 남긴다.

곡선의 원형에서부터 직선의 사각형, 팔각형 등을 아우르며 시문 등의 인간 정신을 문양에 새기고 백자의 대중화를 향해 나아 간다. 실용과 자주의 유교적 민본 세계를 그리며 만인 공통의 흰색 백자를 남긴다. 삶에 대해 인간이 추구하는 왜(why)에 대한 욕망을, 선과 빛의 공간 미학으로 표출한다. 고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양반 중심의 사대부 사회 특성과 실용성을 좇는 물질의 본질 추구는 자기를 통한 자연과의 합일 창조와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얀 백색은 마음의 여백으로 맞닿으며, 자기를 통해 ‘달멍’(달을 멍하게 바라봄)을 좇는 수평적 삶의 길을 드러낸다. 흙의 신화를 향한 금성인의 제2막은 백자의 흰색 꿈처럼, 비움과 미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하강 욕구 극복의 시공간을 향해 퍼져 나간다.

 

백자의 / 4계절은 / 고유색의 / 반응 세계

금성인의 2막인 백자 시기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에 따른 고유한 색으로 찬란하다. 그 4계에는 흙~불~물~바람의 색들이 인간의 영혼에 따라 흔들리며 그 보색의 효과로 함께 한다.

 

* 4계절의 색, Google
* 4계절의 색, Google

백자의 봄은 아직은 연두로 온다. 하강하는 파도가 가져오는 마음의 변화에 주로 기인한다. 청자의 봄이 설렘이라면, 백자의 봄은 신경질과 우울감이다. 사소한 것에 흔들리는 짜증 섞인 마음과 육체의 피로, 수면 리듬의 불안정성과 함께 통증 발생의 빈도가 증가하며 심리적으로 흔들린다. 삶에서 느끼는 긍정과 부정의 감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부정의 감정으로 균형추가 기울어진다, 백자 탄생을 위한 기본 소재로써 흙의 성질과 그 다양한 용도에 따른 최적화된 변용 조건이 필요한 이유로써, 삶의 항상성을 나타낸다. 백자의 여름은 빨강으로 찾아온다. 금성인 2막 중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신체 변화의 하나로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나며, 목 및 가슴 상부에서 시작된 발열감이 전신으로 빠르게 확대된다. 주로 저녁 시간대에 나타나며, 청자 시기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더운 날씨나 매운 음식 및 스트레스 상황 등 다양한 자극적 요소에 기인하게 된다. 또한 안면 홍조와 더불어 피부 변화 및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져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백자의 빛깔과 특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인 불과 연관되며, 삶의 창조성을 대변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백자는 노랑으로 함께 한다. 금성인 백자의 시기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신호로써 우주 생명체로서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의 불안정성, 점~선~면의 인지 능력에 대한 저하 또는 시공간 부적응력이다. The Science Times(2018년 5월 28일)에 따르면, 눈 망막 속 ‘노란 점’(druzen)이 인지 능력 지속적 저하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고 한다. 청자 시기의 황금색 가을과 대비되며, 백자의 가을을 쓸쓸하게 한다. 이는 백자의 형체 형성 및 유지를 위한 기초 요소인 물로써, 삶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짧은 가을이 햇살을 닫으면 겨울의 백자는 흰색으로 서 있다. 백자의 겨울은 불면증의 하얀 밤과 함께 와서, 관절과 근육 및 뼈가 비어져 감을 느끼게 한다. 비어져가는 빈공간에 어지럼도 함께 한다. 청자 시기의 빠른 재생적 채움력은 차차 약해지고, 외부의 물질에 대한 규칙적 의존도를 점점 높여가게 한다. 이는 백자에 대해 유기체적 자유 영혼을 불어넣는 생성 요소인 바람을 상징하며, 삶의 순환성을 남긴다. 백자 시기의 금성인은 4계를 거치며 삶의 항상성~창조성~정체성~순환성을 향해 비틀거리며 걷는다. 봄~여름이 잎눈과 꽃눈의 술래가 되어 가을~겨울이 매달린 나뭇가지를 잡는다.

 

금성인 / 백자 시기를 / ‘백자부’로 / 예찬해

4계의 술래잡기가 이어지며, 또 다른 봄이 지금의 봄으로 다가온다. 금성인의 백자를 ‘백멍’(백자를 멍하게 바라봄)으로 바라보며 김상옥(1920년~2004년)이 풀피리를 분다.

 

* 달과 항아리(김환기,1954년), 국립중앙박물관
* 달과 항아리(김환기,1954년), 국립중앙박물관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 끝에 풍경(風磬)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不老草)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純朴)하도다“

- <백자부>(초적, 1947년), 김상옥 -

 

백자가 지닌 순박하고 진실한 아름다움을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역설적 긍정의 조어로 전통의 형식에 맞추어 선경후정으로 관조하며 예찬한다.

1연은 백자 문양을 통해 바라본 속성을 소나무의 절개에 빗대어 표현한다. ‘찬 서리 눈보라’와 ‘바람’으로 상징되는 외적 시련과 ‘소나무’의 절개를 대비시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백자의 꿋꿋한 기상을 나타낸다. 2연에서는 백자 용도의 다양성과 함께 그리운 대상과의 반가운 만남을 그리고 있으며, 3연에서는 전통적 이상향이 그려져 있는 불로초, 구름, 물 및 사슴의 문양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며 백자의 하얀 꿈을 묘사하고 있다. 4연에서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백자를 역설적 긍정으로 표현하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백자의 외면과 내면을 들여다보며 겨울~가을~여름~봄의 역순행적 구성을 통해, 바람~물~불~흙의 계절적 상징어를 연계하여 나타낸다. 이는 겨울에서 시작한 금성인의 백자 시기가 겨울에서 봄으로 다시 회귀하는 순환성을 문양의 밑그림으로 보여 주며, 정체성~창조성~항상성을 향하는 그들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금성인은 상승과 하강의 수직 운동을 하는 파도로써 백자의 시기를 맞는다. 백자의 4계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들은 그 고유의 색을 드러내며 인지 부조화적 감정과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수용하도록 한다. 금성인은 ‘부모와 자식’을 위해 깃을 접고 술을 담아 오던 청자의 시기를 뒤로 하고, 이제는 백자의 시기를 걷는다. 백자의 시기는 ‘나’를 위해 티 하나 없는 순박한 흙에서 뒹굴며, 사슴과 숲에서 뛰어놀아야 하는 때이다. 이를 위해 완전한 대칭형의 원을 버리고, 완전함을 놔 버리는 비움을 통해 미완성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백자와 동행하는 것이다. 금성인은 파도와 같은 수직 게임에 익숙하니, ‘나’를 위한 백자 시기에는 화성인의 자랑인 밀고 당기는 수평 게임을 접목해서, 하강의 파도를 받으며 지속적 상승의 파도로 만들어 가야 한다. 금성인의 곁에 영원의 단짝이 BFF로써 수직과 수평의 접점을 같이 찍어가며 선으로 이어가고 면으로 세워 간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금성인의 청자와 백자 시기는 갱년기 전후를 나타낸다. 채움과 완성을 향했던 치열한 청자의 시기는 뒤에 두고, 있는 것의 놔 버림을 통한 비움, 포용과 절제를 위한 백자의 시기를 만들어 가는 금성인의 갱년기.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1678년~1741년)의 <사계>와 피아졸라Ástor Pantaleón Piazzolla, 1921년~1992년)의 <사계>가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의 <8계>(Eight Seasons)로 재탄생 되듯, 삶의 항상성~창조성~정체성~순환성을 향해 걷는 백자 시기 금성인의 8계를 향한 두 번째 봄이 오늘의 봄으로 피어난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중이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