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서곡숙의 문화톡톡] <밀양 아리랑>: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과 국가 폭력의 잔혹성
[서곡숙의 문화톡톡] <밀양 아리랑>: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과 국가 폭력의 잔혹성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3.06.12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밀양 아리랑>: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투쟁
 

<밀양 아리랑>(박배일, 2015)은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투쟁 일지이다. 이 영화는 12회 서울 국제환경영화제 수상작품이다. 박배일 감독은 옆집 할머니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크리스마스>(2007)로 연출을 시작하였으며, 장애인, 노동자, 여성 등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에 대해 관심을 보여준다. <밀양 아리랑>에서 고향 땅에서 눈을 감고 싶었던 밀양 할머니들은 765kV의 송전탑을 막기 위해서 투쟁하지만, 3천명이 넘는 경찰들을 비롯한 공권력으로 전쟁터로 변한 마을로 울화병이 생긴다. 이 영화는 ‘ 따뜻한 볕의 마을 밀양’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밀양 주민들이 신고리 3, 4호기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울 수도권까지 송전하기 위해 밀양에 765kV 100미터가 넘은 69기의 송전탑을 세우고자 하는 한국전력공사의 계획에 저항하는 내용이다.
 

2. 농사에 대한 사랑에서 송전탑 반대 단식으로
 

<밀양 아리랑>의 전반부는 농사에 대한 사랑에서 송전탑 반대 단식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주민들은 농사에 대한 만족,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충족된 삶을 살아가지만,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면서 새벽에 산을 올라 거점을 지키고 목에 쇠사슬을 걸고 경찰과 대치하게 된다. 김영자는 과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며 여자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던 시절을 비판하며, 경운기 몰기 등 여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면서 남녀의 성역할에서 벗어난 삶을 보여준다. 또한 그녀는 나무에 이름을 지으면 열매가 잘 되며, 고추 농사에서 고추꽃이 예쁘며 만나서 반갑고 다 따면 다음에 또 만나자고 인사하는 등 힘들지만 농사에 대한 보람, 식물에 대한 사랑 등 자연친화적 면모를 보여준다. 박은숙은 농사를 짓고 싶은 남편을 따라 귀농을 했지만, 살라고 농사를 짓는데 농사를 짓기 위해 살게 된다는 점에서 전도된 삶을 말한다. 그녀는 송전탑 반대 투쟁으로 체포된 남편에 대해서 힘이 없어 당하는 것에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말하며, 이후 농사를 포기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가서 남편과 함께 단식 투쟁을 벌인다. 주민들은 2013년 10월 1일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면서 조를 짜서 새벽에 산을 올라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며 쇠사슬로 목을 묶은 채 길을 막지만, 경찰에 의해서 끌려가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는 자연과 농사에 대한 사랑과 보람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농민들을 먼저 보여준 후, 송전탑 공사 이후 경찰의 공권력에 의해 생존권을 위협하는 처참한 국가 폭력의 현장을 나중에 보여줌으로써 두 삶을 대비시킨다.

 

<밀양 아리랑>의 전반부 스타일은 영상/사운드의 부조화, 미소/눈물, 익스트림롱숏 등을 통해 고달픈 투쟁, 낙관/비관의 대비, 비판적 시선을 표현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밀양의 송전탑 사건에 대한 자막의 어두운 화면과 주민들이 산을 올라가는 사운드를 결합시킴으로써 영상/사운드의 부조화를 통해 험난한 투쟁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김영자가 농사의 기쁨을 말하는 장면은 예쁜 고추꽃, 반가운 고추 등 농사의 기쁨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과 갑자기 터진 눈물을 손으로 가리는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낙관적 가치관과 비관적 현실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전력공사의 송전탑 공사 장면에서 크레인이 땅을 파는 작업, 철조망 등을 익스트림롱숏으로 보여줌으로써 비판적 거리두기를 보여준다.

 

 

3. 평화적 시위에서 처절한 곡소리로

 

<밀양 아리랑>의 중반부는 평화적 시위에서 처절한 곡소리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주민들은 언론과 정부를 비판하며 희망버스를 통한 연대에 고마워하며, 경찰에 맞서며 시위-욕설-곡소리의 변화를 보여주며, 울화병, 답답함, 골병 등을 호소한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은 편파적 언론보도, 국가의 폭력, 충돌의 스펙터클을 비판하며, 에너지정의행동의 정수희는 신고리 원전과 밀양 송전탑 건설을 통한 국가의 핵시설 확산을 비판하며, 의사협회는 밀양 주민들의 우울증 고위험군과 강한 자살 충동 실태를 고발하며, 희망버스는 주민들의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 공연 등과 시위를 통해 연대를 보여준다. 주민들은 논밭, 집을 갈 수 없게 길을 막는 경찰에게 “길을 막으면 삼족이 멸한다”며 항의하고, 경찰 앞에서 절을 하는 시위로 다리를 다치고, 웃으면서 즐겁게 싸우자며 희망을 말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경찰의 계속되는 강경한 육체적, 물리적 진압에 직면하게 되면서, 평화적 시위, 항의와 욕설, 눈물의 곡소리 등으로 점차 변화하며, 일제시대와 6·25전쟁에서도 겪지 못한 참담한 현실에 울화병, 답답함, 골병 등을 호소한다. 이 영화는 과거 중매 결혼과 보도연맹 체포로 과부가 된 할머니, 시댁식구들이 먼저 먹어 먹을 밥이 없어 굶은 할머니, 월남 배를 탄 아들이 죽은 할머니의 삶을 들려주면서, 현재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더 참담함과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송전탑 저항 투쟁으로 고통 받는 할머니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과거/현재를 대비시킨다.

 

<밀양 아리랑>의 중반부 스타일은 미디엄숏과 눈물, 익스트림롱숏-롱숏, 현수막과 송전탑을 통해 슬픔, 대립, 위압감, 절망감을 표현한다. 김영자가 경찰 앞에서 절 시위를 하는 장면은 절을 끝낸 후 우는 김영자와 다리병신 돼서 들어앉으려고 하냐며 걱정하는 주민을 미디엄숏으로 보여줌으로써 슬픔에 대한 감정이입을 표현한다. 경찰 앞에서 ‘내 나이가 어때서’를 노래하는 장면은 지나가려는 주민과 막아서는 경찰의 모습을 익스트림롱숏과 롱숏으로 보여줌으로써 대립의 상황을 보여준다. 높이 세워진 송전탑, 산 위에 세워진 송전탑, 송전탑 반대 현수막 뒤의 송전탑 등을 익스트림롱숏으로 보여줌으로써 마을을 위협하는 송전탑의 위압감을 보여준다. 육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에게 항의하고 욕설하던 할머니가 돌아서는 장면은 뒷모습을 미디엄숏, 롱숏 등 점점 멀어지는 카메라로 보여줌으로써 절망감을 보여준다.

 

 

4. 극단적 선택에서 끝없는 투쟁으로
 

<밀양 아리랑>의 후반부는 극단적 선택에서 끝없는 투쟁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며 자살하거나, 오랜 투쟁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강경진압으로 부상을 입게 되며, 불면증, 가위 눌리기 등 정신적 고통에 직면한다. 유한숙 어르신은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며 자살하지만, 경찰은 복합적 요인으로 자살했다며 사실을 왜곡한다. 지자체가 분향소 설치를 불허하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하지만, 경찰이 분향소를 파괴하고 유족과 주민들을 강제로 끌고 간다. 주민들은 촛불집회에서 어르신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국가 폭력에 의한 타살이라고 선언하고, 한국전력공사와 경찰이 사과하지 않은 점에 분노하면서 경찰과 첨예한 대립을 보여준다. 이계삼은 발전소와 송전탑의 추가 건설로 인한 핵시설물의 악순환을 비판하며, 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은 송전탑 아래 폐형광에 불이 오는 실험으로 열악한 생활환경을 비판한다. 주민들은 오랜 농성으로 농사를 짓지 못해 생계에 위협을 겪게 되고, 농성장 시설을 교대로 지키는 임무로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기며,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부상을 당해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공권력은 경찰 2,500명과 공무원 250명을 투입하여, 할머니들의 상의탈의, 저항, 고함, 통곡에도 불구하고 4개의 농성장을 하루 만에 철거하고, 19명의 응급후송, 3명의 골절상 등 주민이 크게 다치게 만든다. 국가는 2013년 10월 1일부터 2014년 6월 11일까지 38만 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숙박비·식비 99억의 경비를 사용한다. 국가는 주민들을 위한 보상금 대책이나 건설적인 대화보다는 강제 진압을 위해 100억에 가까운 경비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보여준다. 이에 밀양 주민들은 목에 쇠사슬을 걸고 죽음을 각오한 결전의 저항을 벌이지만 공권력의 강경진압에 육체적,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겪게 된다. 주민들은 가위에 눌려 맨정신으로 잠을 못 자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보상금을 타기 위해 주민번호를 넘긴 동네 주민과 싸움을 벌이고, 사람을 위한 전기가 아니라 사람은 안 보이고 돈만 중요시하는 국가·공기업을 비판한다. 주민들은 국가 공권력의 강경 진압에 맞서 점차적으로 강인한 투쟁 의지를 보여주며,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대립에 직면하여 끝없는 투쟁으로 나아간다.

 

<밀양 아리랑>의 후반부 스타일은 미디엄숏과 익스트림롱숏, 뒷모습, 영상/사운드의 부조화를 통해 거리두기와 비판, 결연한 의지, 평화/폭력의 대비를 표현한다. 밭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 뒤에 높이 솟은 송전탑 장면은 주민의 삶에 대한 위협을 보여주며, 밑에서 올려다본 송전탑에서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는 장면은 거리두기를 통한 비판을 보여준다. 김영자가 헬리콥터를 띄운 것에 대해 항의 전화를 하고 배짱으로 견디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뒷모습을 통해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다. 주민들이 철거물에 모여서 도란도란 밥을 함께 먹는 평화로운 영상과 경찰들이 농성장을 강제철거하면서 들려오는 주민들의 고함·통곡의 사운드를 결합시킴으로써 영상과 사운드의 대조를 통해 마을의 평화와 국가의 폭력을 대비시킨다. “2-14년 6월 11일 경찰 2500명, 공무원 250명이 동원되어 4개의 농성장이 하루 만에 철거됐다.”(자막)과 “밀양 주민들의 대승적인 협조로 충돌 없이 행정대집행을 완료했다.”(한국전력 보도자료 자막)을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주민들의 고함·통곡의 사운드를 들려줌으로써 언론의 허위와 주민의 고통을 대비시킨다.

 

 

5. 밀양 주민들: 순박한 농민에서 강인한 투사로
 

<밀양 아리랑>은 밀양 주민들이 순박한 농민에서 강인한 투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농사에 대한 사랑과 강경한 투쟁의지의 대비(전반부), 과거 일제시대·전쟁시기의 고통과 현재 송전탑 반대 투쟁의 고통의 대비(중반부), 주민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과 공권력 폭력의 잔혹성의 대비(후반부) 등 대비를 통해 힘겨운 저항을 강조한다. 이 영화는 노래와 춤을 통한 평화적 시위(전반부), 고함·욕설과 강인한 시위(중반부), 죽음을 각오한 투쟁과 처절한 곡소리(후반부) 등 주민들의 변화를 강조한다. 특히 김영자는 성역할의 구분에서 벗어나고자 하며 농사와 자연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지만, 송전탑 반대 투쟁 이후 순박한 농민에서 강인한 투사로의 변모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만주일대에서 활동한 독립군의 노래 중 대표적인 독립군가는 밀양아리랑의 곡조에 실어 불려졌다. 독립군은 밀양아리랑의 경쾌한 가락 때문에 힘찬 가사를 붙여 이를 군가로 불렀던 것이다. 영화 <밀양 아리랑>도 공권력에 대한 강한 투쟁의 의지, 저항의 처절한 고통을 통해 할머니들의 한 맺힌 ‘밀양 아리랑’을 들려준다.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총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