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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영의 와인 에세이] "멋진 숙소가 있는 와이너리에서의 특별한 휴가"
[나보영의 와인 에세이] "멋진 숙소가 있는 와이너리에서의 특별한 휴가"
  • 나보영 | 작가
  • 승인 2023.10.19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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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매거진 <NARA>(나라 셀라) 여행 에세이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부터 프랑스 남부 '루시용'까지.... "다채로운 와인 여행"
와인에 담긴 스토리와 함께 즐기는 아름다운 풍경

 

 

일상을 훌훌 털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요즘, 와인 애호가들에 권하고 싶은 숙소가 있다. 중세 시대의 성이나 저택으로 된 와이너리들에서 며칠 머물러 보면 어떨까? 레스토랑과 와인숍은 기본이고, 호텔, 수영장, 공연장, 박물관, 스파, 골프 코스까지 갖춘 곳들도 있다. 그야말로 와인 애호가에겐 완벽한 휴양지다. 나만의 버킷 리스트에 넣어두었다가 언젠가 떠나도 좋으리라. 온전한 휴식을 꿈꾸며!

 

 

몬테쿠코, 토스카나의 전통이 깃든 와이너리 

토스카나 몬테쿠코의 언덕에 있는 성

와인 여행지라면 먼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루종일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 올리브 나무들과 포도밭, 오래된 성과 저택 등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좋은 고요한 매력이 가득하니까.

토스카나의 언덕인 몬테쿠코(Montecucco)에는 중세 시대의 성과 함께 네 가지 종류의 숙소를 보유한 와이너리가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호스피탈리티 디렉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라 크라사드 카버네-시라(왼), 루피노 리제르바 두칼레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오) / 일러스트_박이수

“보통 사람들은 와인을 좋아하면 몇 병 사서 먹지만 부자들은 아예 와이너리를 삽니다. 호텔을 좋아하면 호텔을 짓고, 문화를 사랑하면 공연장을 짓죠.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에요. 무려 1200헥타르(363만 평)에 성, 와이너리, 네 개의 호스피탈리티, 예배당, 공연장까지 있죠. 소유주는 꼭대기에 있는 성에 살고 있어요. 가끔 와이너리에 손님이 오면 차를 타고 내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죠.”


보통은 성을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활용하는데 그 큰 성에 실제로 거주하다니! 진정한 부호들이라는 생각에 문득 부러움이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흘간 머물며 와이너리 투어와 시음, 두툼한 스테이크를 곁들인 토스카나식 디너, 포도밭 산책과 시원한 수영, 그리고 오너 가족과의 대화까지 그야말로 꿈만 같은 경험이었다.

 

 

루시용, 피레네산맥과 지중해…세련된 그르나슈 

프랑스 남부 지방의 루시용(Roussillon) 은 그르나슈 품종의 향토적인 레드 와인이나, 뱅 두 나튀렐(Vin Doux Naturel)이라는 주정강화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대체로 토속적인 느낌의 와인을 만드는 곳인데, 한 와이너리에서 신기할 정도로 세련된 그르나슈를 접한 적이 있다. 외관부터 남달랐는데 1888년에 지은 성이 하얗게 빛나며 서 있고, 그 주변을 해안과 포도밭이 감싸고 있었다. 그곳에도 역시 여러 개의 레스토랑은 물론 호텔까지 있었는데, 피레네산맥과 지중해가 내다보이는 전망과 근사한 화강암 수영장까지 갖춰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근사한 테이스팅 룸에서 시음을 할 때 마케팅 디렉터가 말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 포스터 

“저희 와인이 세련됐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70%의 그르나슈와 30%의 시라를 따로 양조하면서 탄소 침용 방식으로 발효시켜 블렌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탄닌이 덜 두드러지고, 풍미가 부드러워지면서 우아하게 완성되죠.”

‘시골스럽다’는 평을 자주 듣는 그르나슈를 탄소 침용과 개별 양조로 그렇게 변신시키다니, 어쩐지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떠올랐다. 가난한 아가씨를 상류층 여성으로 변신시킨다는 내용의 영화 말이다.

저녁에는 레스토랑의 테라스로 나가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디저트 와인으로 뱅두 나튀렐을 마셨다. 아카시아, 무화과, 꿀 향이 기분 좋게 피어올랐다. 문득 같이 간 친구가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마치 감미로운 달콤함에 취하기라도 한 듯이.

 

 

 

 

도우루, 16세기 궁전 정원에서 짜릿한 포트 와인을 

 
도우루 밸리의 성에 있는 정원

포르투갈의 도우루(Douro)지역에도 유명한 성으로 된 호텔이 있는데, 도우루 지역의 다양한 와인을 시음하는 투어 코스가 있다.

다우 10년 숙성 토니 포트
일러스트_박이수

도우루의 포도밭은 쏟아질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가팔랐는데, 고도가 올라갈수록 험준하고 황량해졌다. 날은 어두워지고, 인적은 줄어만 가는데, 목적지를 찾지 못해 불안했다. 한참 헤맨 끝에 고목뒤에 숨어 있던 통로를 간신히 발견! 너무 협소해서 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16세기의 궁전이 ‘짠’하고 등장했다. “와 멋지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궁전 안내인을 따라 저택, 호텔, 도서관 등을 둘러봤는데, 와인 시음회나 음악회가 열리는 정원이 유난히 예뻤다. 마지막에 궁전의 위쪽 방에서 창 너머를 보니 그야말로 모든 지붕들이 발아래에 있었다. 그때 마신 포트 와인과 드라이 레드 와인의 맛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곤 한다. 바르셀로나를 감싼 카탈루냐에 본거지를 두고, 페네데스(Penedes)를 비롯한 여러 산지에서 와인을 만드는 곳이 있다. 와인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성터에 성, 호텔, 스파, 카지노, 공연장까지 갖추어서 일주일쯤 머물러도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다.

 

 

 

 

카바 와인, 카탈루냐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카탈루냐의 중세시대 수도원

친구들과 함께 다시 간다면, 먼저 짐을 풀자마자 와인 스파로 비행의 피로를 살살 녹이고 싶다. 그러고 나서 테라스가 있는 비스트로에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는 거다. 다음 날부터는 다 같이 고풍스러운 13세기의 성과 14세기부터 와인을 만들어온 수도원 탐험에 나설 것이다. 또 다른 날엔 각자 흩어져 누군가는 라벤더가 핀 골프 코스에서 골프공을 날리고, 누군가는 수영장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또 누군가는 화려한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이곳의 공연장에선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뛰어난 수준의 공연이 열리니 그것도 놓칠 수 없다. 가까운 코스타 브라바(Costa Brava) 해변으로 가서 시원하게 발을 담그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카스텔블랑 카바 브뤼
일러스트_박이수

가끔 일상의 피로를 느끼거나 과로가 심해질 때면, 나는 습관처럼 카탈루냐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 지역 대표 와인인 카바(Cava)를 딴다. 프랑스의 샴페인처럼 병에서 2차 발효를 시켜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오늘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카스텔블랑(Castellblanc)’의 ‘카스텔블랑 카바 브뤼 레세르바(Castellblanc D.O. Cava Brut Reserva)’를 땄다. 카바의 정석대로 빠레야다, 마카베오, 사렐로 품종이 블렌딩 됐다. 잔에 따르니 풍성한 효모가 코끝을 감싸며 오븐에서 방금 꺼낸 크루아상을 떠오르게 한다. 입에 머금으니 레몬, 라임, 청사과의 풍미와 함께 부드러운 버블이 오랜 잔상을 남긴다. 이 청량한 맛을 다시 현지에 가서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머지않아 숙소가 있는 와이너리에서 온전한 휴식을 보낼 수 있기를!

 

 

 

글&사진·나보영

잡지사 기자로 6년간 와인, 음식, 여행을 담당했었으며, <매경 프리미엄>과 <한국경제신문>에 3년간 와인 여행기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유럽 와이너리 여행 - 어른에게도 방학이 있다면, 와인이 시작된 곳으로』가 있다.

 

* 해당 기사는 와인 수입·유통 업체 나라셀라가 기획하고 르몽드 코리아가 편집·제작한 와인 매거진 <나라(NARA)> 5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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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영 | 작가
나보영 | 작가 kimyura@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