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무한한 예술세계로의 초대-<힐마 아프 클린트>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무한한 예술세계로의 초대-<힐마 아프 클린트>
  • 김희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18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의 호흡은 다른 영화들의 호흡과 약간 다르다. 보다 천천히, 세밀하고 정교한 시선과 호흡으로 전개된다. 예술가의 인생 전반은 물론 그가 품었던 거대하고 무한한 예술 세계를 표현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할리나 디르스츠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웨덴 출신의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클린트는 칸딘스키, 몬드리안처럼 추상화를 그렸던 화가이다. 하지만 클린트의 이름은 유독 알려지지 않았다. 사후 20년간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고 한 유언의 탓도 있지만, 그가 여성 화가였기에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더욱 밀려난 영향이 크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 예술 세계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엔 개관 이후 가장 많은 60만명의 관객이 몰리기도 했다.

영화는 이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로 구성됐다. 클린트가 남긴 1500여점의 그림 중 대표작 다수에 대한 소개, 전문가 인터뷰, 유족 인터뷰 등으로 빼곡이 채워졌다. 카메라에 담긴 클린트 작품의 종류와 수는 다른 예술 영화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클린트의 세계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역시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한다라는 과감한 주장을 통해 클린트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다.

 

여기에 클린트의 대표작을 따라 그리는 작업 과정도 촬영해, 클린트가 어떤 호흡으로 어떻게 작업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과거에 박제된 미술이 아닌, 현재 생동하는 미술을 체험하게 된다.

영화에 담긴 클린트의 삶도 흥미롭다. 클린트의 해군 집안에서 풍요롭게 자랐지만, 그 삶에 안주하지 않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여성 화가로서의 길을 걸었으며, 당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영적 세계에 대한 학문 신지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자연주의 화풍을 따르던 그는 점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만 영화의 극대화된 세밀함이 예술가를 다룬 영화가 익숙지 않은 관객들에겐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클린트라는 낯선 예술가의 삶, 그 예술가의 새롭고 무한한 예술 세계를 느끼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이 또한 필요충분하게 다가올 수 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희경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학회 이사, 은평문화재단 이사,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예술경영 석사, 영상학 박사.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대상 수상.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