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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또 다른 책읽기 (2)
[김정희의 문화톡톡] 또 다른 책읽기 (2)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27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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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당 허물어져 동호의 옛일 잊혀져 버렸네.

영허계엔 물소리 졸졸 들리고 햇빛 받아 주춧돌 반짝반짝 빛나네.

빼어난 이 경치에 주인은 없지만 독서하는 사람은 왜 없으랴.

폐허가 된 정자 홀로 좋아하노라. 학사들 부지런히 공부했으니.

 

유금 (1741~1788) 말똥구슬(양환집)』 「독서당

 

창덕궁   규장각                              © 김정희
 규장각 (고궁박물관)   © 김정희

 

못 말리는 독서광들

세종 때 젊은 문신들에게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사가독서제를 실시하였는데, 이것이 이어져 동호독서당이 되었다. 대제학은 반드시 독서당을 거친 사람 중에서 임명되었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곳이다. 학사당은 독서당의 별칭으로 현재는 표지석과 독서당로라는 도로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태블릿 PC 하나만 들고 학교에 가야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첫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학교 앞 복사 집에 달려가야 했던 때가 있었다. 강의 교재로 쓰던 책들은 소위 말하는 원서였는데, 저작권 개념도 없었고, 서점에서 살 수도 없어서 단체로 제본까지 맡겨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책을 읽기 위해서는 손수 베껴야 했고, 베끼려면 어디선가 빌려야 했을 텐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책을 구해 읽고, 책 읽기를 일생의 목표로 삼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책을 위한 책읽기

유만주 (1755~1788)는 스무살이 되던 해부터 병으로 죽기 한 달 전까지 「흠영」이라 이름을붙인 일기를 썼다. 과거시험 공부를 준비하던 성균관 유생이었고, 아버지 유한준(1732-1811)과 손자의 손자가 되는 유길준(1856-1914)을 잇는 존재로 「흠영」이 아니었다면 아무런 이름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34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아버지 유한준은 아들에 대해서 “아주 많이 아플 때나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순간도 책을 놓은 적이 없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읽은 책은 경전, 역사책, 제자백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 지리서, 패관 잡설, 온 세상 구석구석 숨어있는 괴이한 일들에 대한 기록까지 5천권이 넘었다.

마치 어마어마한 부자가 창고 안에다 재물을 산처럼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척척 꺼내 쓰는 것 같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780728

 

을유년(1765) 이래 읽은 책들을 계산해 보니 아직도 1천 권을 채우지 못했다. 박식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178168

 

나니와(오사카)의 승려 잇산의 전가보호백두 책을 보았다. 보력(일본 연호1751~1763)

신사년(1761)에 쓴 자서에서 청나라 사람 석 씨의 머리말을 교정했다고 하고 있다.

1784813

 

서울의 사대부 집안에 소장된 서적을 집집마다 조사해서 모은다면 마땅히 몇만권을 밑돌지 않을 테니 없는 책이 거의 없을 것이다.

1784125

 

세상만사 생각해도 아무 미련 없건만 오직 책만은 버릇처럼 남았네.

어찌하면 1년 같은 긴 하루 얻어 아직 못 본 세상의 책들 다 읽을 수 있을까?

1781929

 

벗과 책은 내가 나의 가능성을 펼쳐 나가는 데 바탕이 된다.

유만주의 소원은 1년 같은 긴 하루를 얻어 아직 못 본 세상의 책들을 읽는 것이었으나

평생 과거시험 공부를 위해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벗과 책"이 있어 가능성을

펼쳐나갈 힘을 얻었다.

 

과정을 정해 책 읽기

효전 심노숭(1762년 영조38-1837년 헌종3)은 『자저실기』에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독서 과정을 기록한 부분이다.

 

몇 년 동안 사략소학을 다 읽고 나서 차례대로 사마천의 사기』「열전수십 편을 읽었다. 사군(四君)의 열전과 범저채택열전, 유협열전, 화식열전등은 거의 400~500번쯤 읽었으며 곁가지로 이소경좌전까지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외운 적도 많았다. 또한 시작품 가운데 유향의 장편도 외웠다. 이는 모두 계사년(1773)과 갑오년(1774) 두 해 사이의 일이다. 과정을 정해 읽는 것 외에도 당· · 명의 작가들 저작들과 우리나라의 문집을 닥치는 대로 읽었으며, 시는 근체시와 고체시, 문장은 서(((()를 쓰면서 대가를 모방해 그들의 뜻과 문장법을 탐구하였다.

 

전쟁 중에 책 읽기

임진왜란 당시 오희문은 난을 피해 옮겨 다니며 살고 있었는데 전쟁 중에도 책을 읽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하긴 전쟁 중에도 자녀들의 혼례를 올렸고,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니 책을 읽었다는 것이 특별히 새삼스럽지 않을 수 있다.

 

자경편을 읽었다. 송나라 어진 재상들의 언행과 공업을 이루고 이치를 궁구한 자취를 분명하게 상상해 볼 수 있으니 몸소 본받고 경계할 만하다. , 이제 늙어서 여기에 미칠 수가 없구나. 아무리 스스로 성찰하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 탄식한들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늘그막에 지킬 규범은 될 수 있을 거다.

오희문(1539~1613) 쇄미록』 「갑오일록1594419

 

독서왕과 책에 미친 바보

우리에게 알려진 ‘독서왕’은 김득신(1604-1684)이고 ‘책에 미친 바보’는 이덕무(1741~1793)이다. 2019년 12월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독서왕 김득신문학관>이 개관하여 「백이전」을 ‘1억1만3천 번’ 읽은 김득신 이야기는 앞으로도 더 많이 알려질 것 같다.

이덕무에 관해서는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이라는 직관적인 제목의 책도 나와 있고,

유득공과 함께, 『맹자』와 『좌씨전』을 팔아 밥과 막걸리를 먹었던 이야기 등 이미 전설이 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진정한 독서왕

 

창덕궁 개유와  중국책을 보관하던 도서실 『고금도서집성』을 들여와 이곳에 보관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창덕궁 개유와 
『고금도서집성』을 들여와 이곳에 보관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진정한 독서왕은 바로 정조다.

 

홍재전서161 일득록 1 문학 1
 

임금이 일찍이 규장각의 장서 목록을 보다가 하교하기를, “내가 춘저(세손)에 있을 적에 책을 모으는 데에 취미가 있어 중국에서 사 왔다거나 고가(故家)에 소장된 것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사오게 해서 보곤 하였다. 지금 모두 장소를 마련하여 소장해 둔 것이 경(((() 없는 것이 없고, 또 모두 한두 번은 본 것이다. 그러나 근년 이래로는 정무가 많아 시간이 없어서 전혀 책을 대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애당초 책상에 한 질의 책도 두지 않고, 오직 생각하는 것은 전곡(錢穀:재정)이나 갑병(甲兵:군사)등에 대한 등록(謄錄:문서) 책자에 불과하다. 매양 책을 모으던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지 않은 적이 없다.” 하였다.

‘1년 같은 긴 하루’를 얻어 책을 읽고 싶지만 행정적인 일처리에 바빠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과거 시험준비를 하는 유생이나 임금이나 마찬가지 입장이다. 정조의 아쉬운 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미 그 많은 책을 모두 한 두 번은 보았다는 얘기다.

영조 말년에 청나라로부터의 서적 수입을 금지하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책을 좋아하던 정조가 즉위한 후 사정이 달라졌다. 정조1년 『임원경제지』를 지은 서유구의 아버지 서호수가 사행단으로 청나라에 갔을때 정조가 주문한 책은 『사고전서』였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아 대신 출간된지 거의 50년이나 된 『고금도서집성』 5천 20권을 사왔다. 서호수를 따라 청나라에 갔던 유금(1741~1788)이 이 책을 구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고금도서집성』은 1728년(청 옹정 6)에 중국에서 출간된 방대한 규모의 백과전서이다. 『고금도서집성』이 도착한 뒤 질 좋은 우리나라 종이로 다시 제본 해서 5천22권이 되었다.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었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규장각 각신들만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열심히 봤겠는가. 바로 이덕무이다.

결국 독서왕 정조를 이긴 독서광은 책에 미친 바보가 될 수밖에.

 

 
글·김정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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